‘인간 사용 설명서’, 카밀라 팡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 523호
  • 기사입력 2023.09.12
  • 취재 송유진 기자
  • 편집 김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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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산 지, 5년째 되던 해에, 나는 엉뚱한 행성에 착륙했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정거장을 지나친 게 틀림없었다.”


과학의 언어로 인간을 이해하고 싶다면

우리는 어떻게 타인과 연결되는가? 사랑, 공감, 신뢰 같은 감정이 무엇인지 어떻게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가?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우주의 원리보다 어려운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녀는 지구를 ‘발 딛고 살아가는 곳인데도 마치 궤도 밖에 있는 것처럼 평생 닿을 수 없을 것만 같던 곳’으로 묘사했다. 인간은 모호한 존재이며 종종 모순적이고 이해하기 힘들지만, 과학은 그 반대이다. 거짓말을 하지도, 의도를 숨기지도, 뒷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인간을 설명하는 과학적 안내서’를 만들기로 했다. 인간관계, 개인의 딜레마, 사회현상을 다르게, 편견 없이 이해하고자 한다면 카밀라 팡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을 추천한다.  


저자 카밀라 팡은 여덟 살 때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스물여섯 살에 ADHD를 진단받았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에서 생물화학 박사 과정을 마치고, 광범위한 과학기술을 활용해 생물학을 해석하고 질병의 영향을 조사하는 생물정보학 분야에서 과학자로 일하고 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은 2020년 출간된 그녀의 첫 책이다. 이 저서로 아이작 뉴턴, 스티븐 호킹 등이 거쳐간 영국왕립학회에서 최고의 과학책 상을 받았다. 최근 ‘완벽하게 나다워지는 법’을 담은 책 『남달라도 괜찮아』를 출간했다. 잠겨있던 세상의 문을 연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카밀라 팡에게 들어보자.




대중에 휩쓸리지 않는 법집단과 순응

“나는 항상 사람들의 움직임에 매료되었다. 다섯 살 때는 침실 창을 통해 비쳐 드는 햇빛 사이를 떠도는 먼지 입자들을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곤 했다. 많은 먼지와 먼지 입자가 움직이는 모습에 나는 넋을 잃었다. 먼지들은 대부분 함께 움직였지만 몇몇 입자는 항상 길을 잃은 듯 보였다.”


‘인간의 행동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인가, 아니면 순응적인가?’, ‘자신만의 리듬을 따라 움직이는가, 아니면 군중의 리듬을 따라가는가?’, ‘우리는 구름을 이루는 먼지 입자 중 하나인가, 아니면 무리에서 벗어난 이상치인가?’ 저자는 이 근본적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자폐스펙트럼장애로 인해 사람들 속에서 안전함을 느끼지 못했던 그녀는 자신을 돌보고 안심시키기 위해, 군중을 통과해 나갈 용기를 가지기 위해, 타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과 사회가 기대하는 것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이 둘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잡아당길 때, 우리는 어디로 끌려갈까. 저자는 화학자의 입장에서, 분자 수준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과정처럼 각 개인의 예측된 궤도를 모델화하여 인간 수준으로 규모를 확장해 갔다. 사람은 무생물, 기후, 사회적 관습에 이르기까지 유형 또는 무형의 구성 요소로 이루어진 환경의 일부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완벽하게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군중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힘든 이유이다. 저자는 예측 불가능한 군중 속에서 자신의 불안함을 조절하는 방법을 ‘브라운 운동’에서 찾았다.


유체(流體)에 떠 있는 입자는 유체 속 다른 분자와 부딪치면서 무작위로 움직이는데, 이 움직임을 설명하는 것이 ‘브라운 운동’이다. 미시적으로 모든 입자는 각자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무작위성이 일정한 패턴을 그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다차원적 척도법을 이용해 경로를 모델화하여 군중이 어떻게 행동할지 확신할 수 있었고, 군중에 느끼는 공포를 해소할 수 있었다.




공감하는 법: 베이즈 정리

“우산은 나를 그저 비에서만 보호한 게 아니었다.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을 슬쩍 밀어낼 수도 있었고, 계단 난간을 잡을 수 없는 나를 지탱해 주었다. 그런데 지금 그 우산이 부러졌다. 그리고 나와 데이트하던 소년은 이게 그저 나일론 비닐과 나무 조각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애가 무심해서 나는 울고 싶었다.”


아스퍼거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누군가를 만날 때 전제 조건이나 선입견이 없으며, 모든 사람을 완벽하게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저자는 들은 대로 모두 믿어버리는 성향과, 신호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추론하지 못하는 능력을 극복하기 위해 ‘베이즈 정리’를 활용했다. 베이즈 정리는 확률론의 한 갈래로, 다양한 상황이 각각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 평가할 때 수집한 증거를 어떻게 활용할지 다룬다. 다시 말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이용해서 확률을 계산하는 것이다.


저자는 삶에서 새로운 것을 만날 때마다 베이즈 정리를 이용해서 새로운 불확실성을 탐색하고 낯선 문화와 규칙에 자신을 맞추려 한다고 고백했다. 그녀를 힘들게 하는 소음, 냄새 등에 그저 반응하기보다는 이전의 가설을 이용해 벼랑 끝에 선 자신을 끌어올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공감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타인이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의 문제에 우리가 아는 것을 적용하는 확률론을 이용해야만 ‘잿빛 안개’가 낀 모든 관계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음을 저자는 과학적으로, 통계적으로 설명한다.                                                    

세상이 보여주기를 거부했던 확실성을 찾고 싶은 당신에게 이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



“공감, 사랑, 신뢰와 같은 감정을 불가사의한 존재로 느끼던 그는 과학이라는 다리를 건너 기어코 닿을 수 없던 곳에 가 닿을 수 있었다. 관찰과 계산, 실험으로 얻은 연결감이다. 저자는 말한다. 누구나 자기 자신으로서 타인과 연결될 권리가 있다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결코 사과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