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리듬을 따라’, 『소설 보다: 봄 2023』

  • 529호
  • 기사입력 2023.12.13
  • 취재 송유진 기자
  • 편집 김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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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고 개성 넘치는 한국문학을 만나고 싶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추워서 움츠러드는 겨울이 다시 돌아올 봄의 도약을 위한 준비기간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여름보다 뜨거운 계절일 수도 있다. 여기 누군가에게 성찰의 시간, 누군가에게는 잘할 수 있다는 위로, 누군가에게는 불행하고도 아름다운 계절인 2023년 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있다. 자신을 마주하기 위해 발리의 우붓으로 떠난 40대 여성은 도리어 자신의 모순을 마주하고, 매일 식탁에 마주앉아 ‘투 두 리스트 (to do list)’를 적는 신혼부부가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은 ‘바닐라라테’를 마시는 것뿐이다. 고모가 자신에게 주는 사랑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던 조카는 그녀의 우울감과 외로움을 스스로 체화하기에 이른다. 봄의 향기가 느껴지는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흠뻑 취하고 싶다면 『소설 보다: 봄 2023』을 추천한다.


‘소설 보다’ 시리즈는 문학과지성사가 분기마다 선정한 ‘이 계절의 소설’을 엮어 출간하는 단행본 프로젝트이다. 2018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의 소설과 그들의 인터뷰를 담아 5년째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선정된 작품은 문지문학상 후보작으로 삼는다. 지난 12월 7일, 『소설 보다: 겨울 2023』이 출간되어 2023년 ‘소설 보다’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젊은 작가들이 그려내는 봄의 소설적 풍경에 주목해보자.



| 강보라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강보라 작가는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티니안에서」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패션 잡지의 피처 에디터로 일하던 작가가 사표를 내고 두 달 동안 창덕궁이 보이는 카페에서 쓴 글이다. 그녀는 피처 에디터로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를 오가며 목격한 다양한 선민의식과 문화 자본이 만든 보이지 않는 상하 관계에 주목했다. 저자의 위기의식과 고민이 그대로 담겨있는 이 소설로 2023년 이효석문학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에서는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취향에 대해 ‘급 나누기’를 하던 ‘나’가 발리 우붓 여행을 계기로 모순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현오’와 타인을 평가하고 분류하는 놀이를 즐기던 ‘나’는 여행에서 다양한 인간상을 만나고 자신이 꿈꾸던 세상과 반대되는 어떠한 ‘미지의 세계’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 존재를 인지한 후,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그녀의 확신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여행을 함께 했던 ‘호경’에게 뱀과 양배추가 그려져 있는 그림을 받은 ‘나’가 그림을 들여다보며 여행을 회상하는 것을 끝으로 소설이 마무리된다. 이 책이 그리는 낯선 공간과 모순된 개인의 심리에 주목해 보길 바란다.


“앞으로는 ‘나’가 컬러풀한 세상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나와 다른 타인을 수용하고 환대하는 것이 그의 새로운 놀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강보라 × 최선교」에서 -




| 김나현 「오늘 할 일」

김나현 작가는 2021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휴먼의 근사치』, 단편 「미동」, 「앙배의 이야기」를 발표했다. “계획을 세우는 일이란 통제되지 않는 삶을 손에 쥐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는 그녀는, 이 소설에 ‘삶은 통제되지 않는 것’ 혹은 ‘삶은 우연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는 개인적인 믿음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오늘 할 일」에서는 신혼부부인 ‘나’와 ‘선일’이 식탁에 마주 앉아 하루의 계획을 정리하는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새해에 대한 열망이 가득 차 있던 ‘선일’은 연말부터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직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부서에 배치되지 않자, 회사를 그만두고 1년 동안 웹소설 작가라는 새로운 꿈을 좇는다. 그 후로 ‘나’는 퇴근하면 ‘선일’과 함께 서로의 다이어리를 점검한다. 그때마다 ‘나’는 할 일 중에 ‘바닐라라테 마시기’만 성공했고, ‘선일’은 글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선일’이 전혀 계획에 없던 비행기 소음에 대한 보상금을 받는 절차를 밟으면서 소설에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한 요소들이 드러난다. 식탁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어떻게 식탁에서 마무리되는지 지켜보길 바란다.


“돌이켜보면, 모서리가 긁혀 상처 난 식탁이 여전히 식탁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듯이, 사람도 삶의 방향이 틀어진다 해도 자기답게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긍정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소설 속 ‘나’의 입장에서 당장은 그게 잘 안 되었고, 쓰고 있는 저도 인물과 함께 그 자리에서 같이 망설이게 되었어요.”

-「인터뷰 김나현 × 소유정」에서 -


강보라 작가의 날카로운 풍자가 담긴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김나현 작가의 탁월한 유머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오늘 할 일」 외 사랑의 한계와 본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예소연 작가의 「사랑과 결함」과 젊은 작가들이 그리는 다른 계절의 소설적 풍경이 궁금한 당신에게 이 한권의 책을 추천한다.  


“소설이 해답은 될 수 없지만, 문답問答의 가능성을 만들어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편의 엮인 글이 누구에게 가 닿으면 그 누군가는 그 엮인 글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거죠. 물론 질문은 스스로 하는 것이지만, 좋은 질문을 해내는 데 이야기가 좋은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다.”

-「인터뷰 예소연 × 이희우」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