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더 모리스의 아우슈비츠의 문신가

  • 450호
  • 기사입력 2020.08.27
  • 취재 김지현 기자
  • 편집 김민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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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5일은 대한민국 광복절이자 세계 각국의 세계 제2차 대전 종전일이었다. 전쟁이 막바지로 향해 가던 1945년 8월, 지구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했던 전쟁의 광기 어린 소용돌이 속에서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고 매 순간이 학살의 현장이었던 2차대전은 오늘날까지 현대인들에게 평화의 소중함과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1938년 전쟁 시작부터 원자폭탄 투하와 함께 이뤄진 종전까지 급박하지 않았던 순간이 없었기 때문일까, 세계 제2차 대전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관심도는 비교적 높다. 이에 힘입어, 오늘은 세계 제2차 대전에 관한 역사를 다룰 때 잔인함의 대명사로 빠지지 않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의 한 남자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책을 소개해 볼까 한다.


# 아우슈비츠의 테토비러, 문신 새기는 남자


세계에 파시즘과 나치즘의 광풍이 몰아치며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어느 날, 책의 주인공이자 실화의 주인공 당시 24세 랄레 소콜로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로 강제 이주된다. 다행히 여러 나라 언어를 할 정도로 머리 좋고 눈치 있고 붙임성 있는 청년이었던 랄레는, ‘테토비러’라는 직책을 맡게 되어 어린 아이부터 노인들까지 그곳에 온 모든 사람들의 팔에 그들의 이름 대신 불릴 번호를 문신으로 새기게 된다. 처음 제안 받았을 때는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생활을 한다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어차피 누군가 해야 한다면’이라는 생각으로 유대인 동포들의 팔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낙인을 새기던 랄레, 그의 앞에 그의 인생을 바꾼 한 여자 수용자가 나타난다.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 랄레는 수용소의 실상을 좀 더 밀접하게 실감하고, 유대인 동포들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 책에는 랄레가 유대인 동포들을 구하고자 했던 비밀스럽고 용감하다는 말로는 담을 수 없는 모든 일들, 그리고 ‘그녀’와의 은밀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전쟁이 끝나기 직전이었던 1945년 여름, 나치의 증거 인멸을 위해 수용자였던 그녀는 나치를 따라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으로 끌려가며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랄레에게 간절히 외친다. 내 이름은 기타 푸르만이야!’ 랄레는 종전 후 기타를 찾을 수 있었을까? 아니, 우선 기타와 랄레는 1945년 여름의 광기 속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아침에 깨어나면 그것만으로 그날은 좋은 날이다’


예비 독자들을 위해 책의 결말을 논하지 않고 이야기하더라도, 랄레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충분하다. 앞에서는 나치에게 굴복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뒤에서는 유대인들의 식량 조달을 위해 그가 했던 모든 선택은 그를 위기의 한가운데로 던져놓았다. 그러나 평소 사람들에게 다정하고 도움을 주기 좋아했던 그가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하는 때에 베풀었던 수많은 온정과 도움들은, 그가 마주한 생(生)과 사(死)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어떻게든 그를 생(生)의 방향으로 떠밀어주는 힘이 되었다. 어떤 환경에서도 인간과 인류애의 절대적인 기적의 가치는 변하지 않음을, 랄레는 말하고 있다.


우리 나이 또래인 청춘의 유대인들은 가장 행복해야 할 시기에 매 순간의 선택이 생사를 가르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때까지 너무나 많은 희생과 아픔을 치루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지 않고 매순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많다. “아침에 깨어나면 그것만으로 그날은 좋은 날이다.” 책 속 랄레의 이 한마디는 지금 우리의 하루하루를 조금이라도 더 빛내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기타 푸르만(좌)과 랄레 소콜로프(우)


사실 책의 주인공인 랄레 소콜로프 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아우슈비츠 뿐만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의 숫자만큼의 많은 사연과 고뇌가 존재했을 것이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유명한 오스카 쉰들러, 비슷한 시기 아시아에서 자신의 직권을 이용해 중국인들을 보호한 욘 라베와 같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의인의 일생. 인간의 존엄성이 가장 경시되던 시기에 인간 존엄성이 왜 당연한 가치인지를 몸소 보여준 사람들이 조금 더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물러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괴롭고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많더라도 과거에 둔해지지 않고, 아픔의 시대를 망각하지 않는 것, 이것이 랄레 소콜로프의 이야기가 70여년이 지나서야 빛을 본 의미가 아닐까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