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작, 일상 정원-이명희 저

  • 486호
  • 기사입력 2022.02.28
  • 취재 임찬수 기자
  • 편집 김윤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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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주부로 살던 저자는 평소에 워낙 꽃과 나무를 좋아해 아파트를 마다하고 서울 한복판 단독 주택에서 정원을 가꾸고 즐겼다. 그러다 막내까지 대학에 입학한 후, 아내와 엄마의 책임에서 벗어나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조경에 대한 공부를 하고자 성균관대 대학원 조경학과에 입학했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직접 정원을 가꾸며 겪었던 경험과 전공 공부를 하며 얻은 지식을 합친 결과물로, 정원을 통해 얻은 경험을 한 권에 담았다. 정성이 담긴 아름다운 정원은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나아가 사회를 더 살 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다는 강한 믿음으로 이 책이 쓰이게 되었다.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만의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게 저자의 바람이다. 저자가 가꾼 정원은 개인의 집에서 시작되었지만, 동네를 바꾸게 되었고, 나아가 도시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까지 갖고 있다. 이 책은 아름다운 정원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 시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의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는 화분 하나, 가로수 하나도 자세히 보면 단순하지 않다고 말한다. 유심히 관찰하면 꽃과 그 꽃이  담긴 화분이 어울리는지, 길가에 심은 저 나무 종류가 그 주변 환경에 적합한지 등 여러 가지를 고민해 볼 수 있다. 우리가 느끼는 편안함과 멋은 사소한 차이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냥 기계적으로 심고 전시하는 게 아니라, 과연 이게 주변과 어울리는지 한번 차분히 고민한 그 사소한 애정에 따라 결과물은 크게 달라지는 법이다. 작가는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식물을 배치하고 정원을 가꿨다. 저자의 정원 식물은 무엇 하나 허투루 놓인 것이 없다.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저자의 정원 속 식물들에 담긴 몇 가지 이야기를 통해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  수련과 아이들

정원에는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애증의 감정으로 가꿔온 수련이 있다. 저자는 수련의 꽃망울을 보고, 편히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도와주려 주변 연잎을 잘라버렸지만, 오히려 지지대 역할을 해줄 연잎이 사라지자 꽃망울들은 모두 쓰러지고 만다. 하지만 오히려 완전히 포기하고 마음을 비우고 나니, 원하던 아름다운 꽃망울들을 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자신의 욕심만큼 꽃을 못 피우는 수련이 원망스러워졌다. 인연을 끊기 위해 겨우내 수련을 방치해두었다. 하지만 새로운 봄날에 본 것은 메마른 수련들이 아닌, 연통 맑은 물속 연둣빛 어린잎들이었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다시 소생하는 생명의 신비로움이다. 고운 꽃을 보려고 애착을 가지면서 힘들게 키워왔던 수련이, 욕심과 집착을 버리자 아름답게 꽃피웠고, 인연을 끊으려 방치했음에도 또다시 새 생명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수련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설픈 생각과 지식으로 판단하고 확신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 일로 다른 이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무지의 잘못을 참 많이 저질렀겠지. 가장 가까이 있는 자녀들에게 당연히 옳은 일이라고 강요하면서 엄마의 사랑이라는 그 마음으로 힘들게 하였을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며 아직도 마음에 심어 둔 욕심들을 하나둘씩 털어낸다. 


▲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


  • 철쭉과 그리운 아버지

어느 날 집에 찾아온 저자의 아버지가 철쭉 가지치기를 하다가 가지를 몽땅 잘라 버리고 말았다. 잘린 모습이 애석해서, 무서운 아버지가 바로 옆에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저자의 입에서 서운한 마음이 흘러나왔다. 그때 아버지가 머쓱해하며 무안해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다. 그 후로는 한 번도 아버지는 집 꽃밭에서 가위질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유난히도 꽃을 좋아해 정원이 있는 저자의 집에 오길 좋아했다. 다른 자식들 집은 아파트라 답답하다고 밥도 한 끼 잘 먹지 않고 잠깐 머물다 갔지만, 저자 집에서는 며칠 머물다 가고, 손주들이 보고 싶다면서 자주 찾아왔다. 그땐 한편 반갑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무서워 어렵기도 했다. 철쭉을 볼 때마다 그렇게 엄하고 무서웠던 아버지가 난생처음 무안해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가지치기했던 철쭉나무는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멋스러운 수형으로 고풍스럽게 살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무서웠던 아버지는 다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났고, 그 빈자리에는 사랑과 그리움만 남았다. 


▲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


  • 천리향과 나 

주변에서 참 영특하다고 입방아에 오르며 저자에게 큰 희망을 준 막내아들이, 원하는 대학 진학에는 실패했다. 그동안 저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온 꿈과 희망이 다 무너진 것 같았다. 방황의 끝에서 탈출하기 위해 저자는 간절히 소원하던 꿈의 공간, 정원과 온실을 만들었다. 꽃과 나무 모두 어우러져 건강하고 예쁘게 살았다. 천리향도 그중 하나였다. 저자는 천리향의 아담한 수형이 좋아 멋진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한 해에 세 번이나 자리를 옮겨줬다. 하지만 과한 욕심에 천리향은 그만 힘없이 약해져 버렸다. 그제야 무모한 행동을 후회하고 자책했지만, 결국 그해 겨울 천리향은 죽고 말았다. 흔히 식물도 사랑해 주면 잘 자란다고 하지만, 우리네 자식처럼 너무 과한 애착을 가지면 독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


  • ♣ 노목의 매화나무

저자의 정원에는 10여 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의젓한 모습으로 사계절 아름다움을 선물하는 매화나무가 있다. 홀로 빈 몸으로 찬 겨울 하늘 아래 당당히 마주하고 있는 매화나무의 모습은 오랜 세월 견디며 살아온 의연한 자태로, 성숙한 삶의 경지를 보여 주듯 숭고하다. 이른 봄날, 저자는 매화가 잘 있나 보러 갔다가 매화의 매력에 완전히 사로잡힌다. 고고한 자태로 턱하니 펼쳐진 굴곡의 거친 줄기에, 가지마다 향기 가득 품은 매화를 한 아름 달고 서 있는 모습이야말로 매화가 지닌 최고의 아름다움이다. 매화의 고운 향기는 저자의 남편마저도 관심 갖게 했다. 매화가 이렇게 아름답고 향기가 좋은 줄 처음으로 알았다고 좋아하는 남편을 보며 저자는 그 모습이 마치 거친 매화 가지에서 피어난 매화꽃 한 송이 같다고 느낀다.


▲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


삭막하고 바쁜 도시 생활 중에 정원을 가꾸며 살아가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모두들 망설이지 말고 좋아하는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를 심어 보면 어떨까? 사랑하는 마음으로 소중히 가꾸다 보면, 꽃이 있는 예쁜 화분 하나도 내 정원이자 일상의 고운 안식처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아름다운 꽃을 마음껏 키우고 싶어 과감하게 답답한 담장을 허물고 나지막하게 돌담을 쌓아 정원의 시야를 넓혔다. 그렇게 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은 물론 나비, 꿀벌, 새들도 편히 왔다가 한참 쉬어가는 열린 정원이 되었다. 저자는 오늘도 자신의 정원에서 열심히 일하며 날마다 새로운 꽃과 나무를 만나고 있다. 아름다운 이곳으로 독자 여러분들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