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으로 본 시카고 이야기
저자 이중원 건축학과 교수

  • 488호
  • 기사입력 2022.03.28
  • 취재 임찬수 기자
  • 편집 김윤하 기자
  • 조회수 2021


시카고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두툼하게 올라간 토핑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시카고피자? 마이클 조던이 뛰었던 강력한 농구팀 시카고 불스? 책의 저자는 시카고에서 건축을 떠올렸다. 보통 건축 관련 책들은 유럽의 도시를 대상으로 다양한 양식에 대해 탐구하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반대로 미국 건축에 관심을 가졌고, 미국 도시 건축만의 매력을 발견했다. 시카고는 보스턴, 뉴욕에 이어서 저자의 미국 건축 시리즈 3번째 도시다.


저자는 시카고를 ‘건축의 도시’라고 말한다. 시카고의 명성은 우수한 건축에서 비롯되었고, 시카고의 명예는 세대를 달리하며 여러 건축가가 함께 만들었다. 이 책은 미국 대평원 땅에 왜 시카고라는 대형 도시가 생겼고, 어떻게 발전했으며 또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시카고의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설명한다. 무엇보다 시카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시간 호수와 시카고 강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은 호수와 강이라는 수변 조건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건축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수변은 왜 사유재가 아니라 공공재인지, 호반과 강변은 공공을 위해 어떻게 열려 있어야 하는지, 오직 공공을 위해서만 수변을 허락한 가장 완벽한 도시, 시카고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도시 계획과 건축물을 따라가다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 시카고, 대화재에 굴하지 않은 역동의 도시


일리노이주는 미국 중부 대평원 지대의 핵심 주다. 시카고는 이를 호령하는 도시다. 동부 뉴욕과 서부 샌프란시스코가 미국 양단의 핵심 도시라면, 시카고는 중부의 핵심 도시다. 시카고강은 시카고를 관통한다. 그덕분에 북으로는 캐나다와 물길이 열려 있고, 남으로는 루이지애나주와 물길이 열려 있는 천혜의 물류 도시가 되었다. 1830년대엔 운하가 뚫리면서 시카고는 뉴욕과 함께 삼각무역의 허브 도시로 성장했다. 그런가 하면, 남북으로는 캐나다, 멕시코와 연결되어 대평원의 농산물과 축산물은 사방으로 뻗어나가 부를 축적해 거대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남북전쟁 후에는 시카고에 철로가 개통되어 번영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1871년, 시카고는 밝지만 가장 어두운 3일을 겪었다. 도시에 대화재가 일어난 것이다. 건축물의 3분의 1가량이 전소되었다. 3일간 이어진 시카고 대화재는 건물 18,000채를 잿더미로 만들며 인구 10만 명의 집을 앗아갔다. 도시는 잿더미가 되었다. 하지만 대화재가 시카고의 역동성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시카고는 재건하면서 도시의 용적률을 높였고, 건물은 내화 재료로 지었다. 건물은 높아졌고, 불에는 견고해졌다. 장식보다 효율에 치중했다. 이때 건축을 ‘시카고학파’라 부른다. 이들은 유럽식 규범과 장식을 과감히 버렸고, 시카고의 상인 정신과 효율성을 앞세웠다. 시카고는 재건을 통해 근대 마천루의 발상지가 되었고, 시카고학파를 형성했다. 이렇게 시카고는 미국을 대표하는 마천루 도시가 됐다.


 

- 완벽한 수변 녹지를 가진 도시 계획, 시카고 플랜


옛날 시카고에 살던 선조들은 수변이 사유지로 전락하지 못하도록 도시를 계획했다. 도시 건설 초기부터 호숫가와 강변을 공공재로 인식했다. 초기 지도에 “이 땅을 영원히 후손들을 위해 녹지로 비워 둔다”라고 명기했다. 미시간호를 마주한 수변땅을 사유화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공공을 위한 수변 공원이 활성화되도록 공공 물놀이 시설과 뱃놀이 시설을 조성했고, 공원에는 공공 건축물인 도서관과 아쿠아리움, 박물관과 과학관을 배치했다. 그 결과 시카고는 지난 150년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변 녹지를 가진 도시가 됐다. 여기에 건축가 다니엘 번햄(Daniel Burnham)의 비전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번햄은 부분보다 전체에 집중했다. 도시 흐름과 물류에 집중했고 녹지띠와 공공 건축띠에 집중했다. 수변 공간에 대한 그의 애착은 남다르다. 미시간호와 시카고강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1893년 시카고 박람회에서 번햄은 수변과 조경, 조각과 건축이 하나로 작동하는 도시를 선보였다. 호수 중앙에는 조각을 두었고, 수변을 따라서는 기념비적인 건축을 세웠다. 새로운 시카고의 청사진이었다. 시카고 박람회 이후 번햄은 건축가에서 도시설계가로 변신했다. 그는 도시 곳곳을 박람회 때 선보인 수변 조경과 공공 건축으로 바꾸고자 했다. 번햄은 지저분하고 혼란스러운 미국의 산업화 도시를 깨끗하고 질서정연한 백색 도시로 개혁했다.


 

- 이야기가 가득한 시카고 강 건축 크루즈

시카고 강의 비밀만 깨우쳐도 이 책의 중심을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시카고 강에 인간이 쌓아 올린 마천루 협곡은 시카고만의 독특한 체험이자 시카고를 독보적인 수변 도시로 만드는 원인이다. 여기에는 시대를 달리하며 도시를 대표하는 초고층 마천루들이 도열해 있다. 이는 당대의 생각과 주장을 돌과 유리로 써 내려간 흔적이며, 동시에 각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들의 예술혼을 담아내려 한 자취다. 

시카고강은 언제나 건축 관광 크루즈와 보행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마천루 수변 플라자와 강변 보행로가 서로 소통한다. 강을 따라가면 시카고의 역사가 보이고, 시카고의 발전이 보인다. 시대마다 새로운 도전으로 실험적인 건축을 세웠는데, 이들이 군집해서 만드는 시카고만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먼저 보행교를 세우고, 배를 띄우고, 수변을 개발한 후에 마천루를 짓자, 당대의 물리적인 기반과 기술적인 성취와 개념적인 이야기를 건물에 담아냈다. 그러자 물길은 세계적인 수변이 되고, 독보적인 마천루 협곡이 되어 사람들을 모았다.



시카고는 대화재라는  위기를 겪었지만 무너지지 않았다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타버린 목조건물 잿더미 위에 철골과 석조를 이용해 빠르게 도시를 재건했다. 그러면서도 수변은 공공재라는 확고한 생각으로 모두를 위한 건축을 지향했다. 그 결과 웅장한 마천루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유롭게 걷고 어울리며 도시를 이용했고, 시카고는 삭막함이 아니라 오히려 활기를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