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과 미디어아트, 그 시작 -
수잔네 레너르트 저 & 역자 인터뷰

  • 490호
  • 기사입력 2022.05.02
  • 취재 임찬수 기자
  • 편집 김윤하 기자
  • 조회수 1807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남준에 대해 기억하는 모습은 미디어아트 창시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국내외 다양한 매체에 등장하는 중장년 이후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지 못한 시기, 청년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그 시작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책이 발간되었다. 이번 ‘이 한 권의 책’ 섹션에서는 책에 대한 더 심도있는 탐구와 함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해보았다.



- 자기소개 및 책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백남준과 미디어아트, 그 시작’의 번역을 맡은 전선자입니다. 저는 2003년부터 한신대 학술원에서 인문학과 과학 그리고 문화예술분야의 연구교수들이 이끈 다년간의 대형연구프로젝트 ‘독일 생태공동체의 실상과 과제’에서 문화예술분야의 심화연구를 담당했습니다. 이때 통독 이후 독일 예술인들의 변화된 세계관을 접하게 되었어요. 그것은 신선했고 선지(先知)적이었습니다. 


90년대의 독일 생태공동체예술인들의 성찰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적으로 모든 생태적 본질의 회복을 위한 탐구와 실천에 전념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예술가들의 대부(代父)가 60년대의 플럭서스 예술가인 독일작가 ‘요제프 보이스’였습니다. 플럭서스는 예술가 그룹입니다.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실은 ‘백남준’이 이 플럭서스 그룹의 중심인물이었고 보이스와 절친이었습니다. 따라서 제 연구도 자연스레 백남준으로 이어져갔죠. 


백남준은 21세기 초 미디어아트의 선구자로서 이미 세계적인 예술가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새로운 예술매체인 미디어(media)로 제작된 ‘미디어아트’를 탐구하면서 느낀 것은, 60년대 초부터 부상한 개념예술과 행위예술 등 현대예술의 흐름을 알아야만 연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술적 맥락 속에서 백남준의 초기예술은 플럭서스 이상을 넘어서서 마치 20세기 후반의 중심축을 이루는 행보로 이어갔습니다. 따라서 그의 초기 예술에 대한 연구는 그의 미디어아트의 기초이며 매우 중요한 대목이에요. 이 연구를 위해서는 여러 아카이브에 소장된 기록물들의 탐구가 절실히 요구 되는데, 마침 독일에서 이 기록물들을 잘 정리해 2005년에 책으로 발간했습니다. 저도 연구 과정에서 이 책을 잘 활용했고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때의 감동을 많은 예술가들과 연구자들에게 전달하고파 번역을 하게 된 것입니다.     

       


- 제 또래인 20대들의 경우, 백남준의 작업을 교과서에 실린 내용 등으로 간접적으로 접해 그의 위상이 크게 와닿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백남준이 살아 계실 당시의 위상은 어땠나요?

살아 계실 당시에 이미 세계적인 예술가였습니다. 그는 ‘미디어아트’를 창시했고, 이것은 새로운 예술장르 하나가 그에 의해서 탄생한 것을 말합니다. 역자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미국미술관의 관장 엘리사베스 브룬은 백남준 탄생 80주년 전시회 개막식에서 “백남준은 20세기 후반 모든 새로운 예술의 무게 중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대목을 세계사 속에 새긴 예술가인거죠. 그러므로 국외 중요 미술관들은 그의 작품을 대거 소장하고 있으며, 그의 예술에 대한 심화 연구와 그에 따른 회고전 등이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 백남준에게 독일, 특히 라인지역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라인지역은 독일의 라인강 서편에서부터 프랑스, 룩셈부르크, 벨기에, 네덜란드 국경 사이의 독일 영토입니다. 여러 나라와 교역이 활발한 곳이자 예술인들의 왕래도 빈번한 지역이죠. 중요 도시로는 본, 쾰른, 뒤셀도르프, 비스바덴, 마인츠 등이 있어요. 2차대전 이후 이곳에 연합군이 주둔했었는데, 특이하게도 국가마다 자국의 젊은 군인들을 위한 자국 방송국을 함께 데려왔어요. 방송국들은 젊은 청취자들을 위해서 더 좋은 콘텐츠가 필요했고, 실험적인 작품들까지도 사들여 방송했어요. 이로 인해 실험예술가들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유와 기회를 갖게 되었고, 곧바로 이곳은 문화적 다양성과 함께 예술 간 경계를 넘나드는 무궁한 예술적 통·융합의 가능성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라인지역은 새롭게 창조될 예술과 문화의 플랫폼이었고, 백남준은 1958년부터 1963년까지 이곳에서 여러 문화예술계 지인들을 만나 교류했죠. 그에게는 예술적 고향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 행위예술을 하던 백남준은 왜 미디어 아트를 하게 되었나요?  

‘행위예술’은 몸이 매개체가 되어 주제를 표현하는 장르입니다. 몸은 곧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이죠. 고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가장 진솔하게 ‘행위’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몸입니다. 무술인이 굿판에서 접신하기 위해 온 정신과 춤추는 신체를 마치 몰입의 경지에 이르게 하듯이, 당시 실험 작가들은 새로운 표현 형식을 찾기 위해 몸을 매개로 하는 행위예술에서 각종 실험을 감행했습니다. 이처럼 백남준도 행위예술을 통해 감성적•감각적 체험을 했어요. 당시는 전자시대였는데, 그는 수학과 과학에도 정통해 있었습니다. 전자-TV를 다루는 데에는 과학기술적 지식이 전제됩니다. 이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던 많은 당시 예술가들은 텔레비전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자의 원리와 전자 기술에 대해 공부한 그는 캔버스 대신 전자-TV를 예술 매체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새로운 예술영역으로 개발하는 데에 그의 행위예술 체험은 전자예술의 가능성을 감지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백남준이 행위예술을 하는 사진



- “화창한 날 라인강의 물결을 세어라. 바람이 부는 날 라인강의 물결을 세어라”의 문장이 텍스트 주제로 사용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이 문구는 당시 부퍼탈 달력에 쓰여 있던 글로서 백남준이 먼저 인용한 것입니다. 인용했다는 것은 그 문구가 인용한 사람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다고도 볼 수 있죠. 저자는 기록물들을 통해 볼 때, 백남준이 라인지역에서 보낸 초기 시절의 여러 실험적인 활동들이 마치 햇빛이 비추나 바람이 부나 항상 생겼다가 사라지는 라인강의 물결들을 세어보는 일과 그의 당시 셀 수 없이 많은 실험행위들을 비유적으로 빗대어 사용했다고 이해했습니다.


 

- 역자분에게 백남준의 작품이나 행위 예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작품으로는 <TV 부처>(1984)이며, 행위예술로는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입니다. <TV 부처>는 가장 간단한 설치로 가장 인간적인 면을 은유적으로 꼬집었고,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는 그의 작품 중 음악에 대한 천지개벽격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TV 부처                                                                            ▲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


- 마지막으로 성대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 시대의 가장 혁신적인 기술을 사용하는 미디어아트이지만, 내용은 가장 고전적인 인간의 존재 문제나 내면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이 책의 키워드가 될 것입니다. 백남준의 초기 예술에 해당하는 기록물들을 통해서 그의 예술적 개념들을 책 속에서 잘 정리해 이를 알리고 있습니다. 그만큼 초기의 그의 예술적 행보가 예술사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데요. 그는 음악가로 시작해 행위예술(퍼포먼스아트)을 거쳐 미디어아트를 창시했습니다. 이 경로가 20세기 후반의 예술사의 변천을 어느 정도 반영하죠. 이런 변화를 이끈 그의 예술 개념이 예술사의 흐름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고로 책을 통해 그의 예술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20세기 예술사의 맥락을 볼 수 있고, 이런 가치를 신세대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한 번 읽어 보시는건 어떨까요?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막연히 미디어아트의 대가로만 알고 있었던 백남준이었다하지만 책을 통해 음악 활동과 행위 예술등 그의 초기 활동을 돌아보며, 그의 예술이 변모한 과정을 따라가보니, 예술가 백남준이 새삼 다르게 느껴지며 그의 행보가 조금씩 이해되었다. 독자 여러분도 책 속에 잘 정리되고 번역된 기록물들을 살펴보며, 백남준의 몰랐던 면을 알아보는 건 어떨까?




탑이미지 및 본문 사진 출처-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6209

https://njp.ggcf.kr/tv-부처/

https://njp.ggcf.kr/백남준-<존-케이지에게-보내는-경의>-아뜰리에-퀼/

https://njp.ggcf.kr/백남준-예술-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