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없겠지만
캐스린 매닉스 저

  • 495호
  • 기사입력 2022.07.18
  • 취재 박창준 기자
  • 편집 이수경 기자
  • 조회수 1689

'죽음'이 궁금한 당신이라면


우리는 살면서 많은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장례식에 가는 것, 비보를 담은 기사를 읽는 것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아프면 병원을 가는 현대사회에서 눈 앞의 죽음을 목격해 본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옛날에는 주변에서 임종을 지켜보는 일이 흔했기에 대개의 사람들은 죽음을 가까운 것으로 여기고 그에 대한 고민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크고 작은 병들을 치료하는 의학의 발전 아래,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는 환자도 병원으로 데려가 최대한의 치료를 하는 방식이 보편화되었다. 즉, 우리는 임종을 직접 지켜보는 경험이 줄어들었고, 따라서 죽음은 낯설다.  물론 죽음이 찾아오는 방식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단지 우리가 죽음을 지켜보거나 이해할 수 있을 경험이 적어진 것이다.


오늘 소개할 책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없겠지만’의 저자는 완화의료 분야의 의사로 일한다. 그녀는 의료계에 몸담으며 수많은 임종을 지켜보았다. 이 책에는 그녀가 의사로 일하며 겪은 실제 사건들을 다루었다. 그녀는 완화치료 환자들과 함께하며 ‘죽어가고 있음을 아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통찰을 특별한 경험으로 얻었다고 설명한다. 이에 저자는 사람들이 임종 과정을 이해하고 인생의 끝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책의 목적임을 밝힌다. 이 한권의 책에서는 책 내에서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음악적 차이

두 사람은 음악에 대한 사랑을 공유한다. 한 남자는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다른 한 여자는 재즈를 사랑하여 한때 그녀는 빌리 홀리데이만큼의 노래 실력을 뽐냈다. 그는 정신과 의사였고 그녀는 병원 청소부로 일했다. 서로 알지 못하는 둘은 같은 호스피스에 입원하게 되었다. 남자는 수술이 불가능한 거대 복부 종양을 발견하고 호스피스에 입원하였다. 병원에 도착 후 그를 진찰한 의사는 저자에게 그가 자신의 통증을 축소하여 말하고 통증 완화를 원치 않고 있다고 전한다. 의사인 저자는 그와 대화를 시도한다. 


그는 의사와 대화하며 ‘브루스’를 소개한다. 브루스는 그가 종양에 붙여준 이름이다. 브루스는 만지면 엄청난 아픔을 유발했기에 저자는 만나서 반갑다고 할 수는 없겠다며 농담을 주고받았고, 그와 의사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며 통증 완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만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정신과 의사였던 그는 모르핀을 중독성 약물로서 생각했다. 통증 완화를 위해 모르핀을 사용하면 품위를 잃고 몽롱한 상태에서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저자의 설득과 긴 설명 끝에 환자로부터 모르핀을 투여하겠다는 동의를 받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는 또다른 고민이 남아있었다. 클래식 음악을 가장 사랑한 그는 죽음을 연상시키는 슬픈 클래식 음악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고 음악이 없는 시간 속에서 고독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옆 병실에도 흉부 질환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가 입원해 있었다. 그녀는 일찍이 남편을 보내고 홀로 두 아들을 키워냈다. 바텐더, 청소부 일을 하며 아들을 키워낸 그녀는 사실 젊은 시절 크루즈에서 재즈 가수로 일했으나 결혼 후 이를 포기했다. 그런데 남편과의 사별 후 재즈에 대한 사랑을 저버린 그녀가 최근에야 호흡이 힘들 때 노래를 통해 위안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과거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한 빌리 홀리데이의 재즈 음악을 들으며 호흡 곤란 증세를 참아낼 수 있었다.


호스피스의 고요한 밤에는 그녀가 틀어놓은 음악소리가 스며들었다. 이전에 이러한 음악을 들어 보지 못했던 그는 우연히 들은 재즈 노래에 위안을 받았다. 그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 옆병실에 있는 그녀를 찾아갔고 둘은 친구가 되어 한 명은 익숙한 음악으로, 한 명은 새로운 음악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살아있는 마지막 몇 주간 함께하게 된 둘은 돈독한 우정을 채우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것이다. 이후 저자는 한때 자신을 가르쳤던 의사인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관이 나가고 식이 끝날 무렵, 재즈 트럼펫이 그가 마지막 몇 주간 좋아한 빌리 홀리데이의 재즈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빌리 홀리데이였지만, 그에게는 분명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였을 음악이다.


위의 이야기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두 사람이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살아갔는지에 대한 것이다. 두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죽어간 것이 아니라 살아갔다. 결국 생의 마지막을 향한 여정 또한 무기력한 일상의 반복이 아닌, 또 다른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몸이 쇠약해지다 죽음에 이르는 시기를 경험한다. 때로 우리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자각하기도 한다. 이 시기를 ‘죽어가고 있음’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음’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죽음으로 향하는 길은 단절이 아니라 삶의 연속이다. 우리는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새 친구를 사귀고, 배우고, 성장하면서 만족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

-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없겠지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