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동대 방문 후기 –
공자(孔子) 가르침을 느끼며

  • 522호
  • 기사입력 2023.08.25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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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 사진 : 산동대학교 웨이하이 캠퍼스 야경]



글 : 권상희 (權相禧)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산둥대학교(Shandong University)는 중국 산둥성 지난시에 위치한 대학으로 중국에서는 상위권 대학 중 하나로 평가받는 대학이다. 1901년에 설립되었으며,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교육 및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 대학은 공학, 자연과학, 인문사회과학, 의학 등 다양한 학부 및 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산동대학은 국제 학술 교류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다양한 국가와의 국제적 연구 협력 및 학생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국제 학술지 발행 및 연구 프로젝트 수행 등을 통해 국제 학술계에서도 주목받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제남(지난, 济南)은 72개의 유명한 샘이 있어서 "샘의 도시"라고도 불리며 제강(济水)의 남쪽에 있다 하여 지난(济南)이라고 부른다. 지난은 “천성(泉城)”으로 유명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금고(今古)의 기이하고 훌륭한 경관”이라는 명예를 가지고 있다. 시내에는 바오투취안(趵突泉), 헤이후취안(黑虎泉), 전주취안(珍珠泉), 우롱탄취안췬(五龙潭泉群)이 있고 유구한 역사는 천성(泉城)에 풍부한 문화유적을 남겼다. 바오투(趵突)란말은 샘물이 활발히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형용하고 있다. 풍경이 아름다운 천연 호수 다밍후(大明湖)는 지난 옛 성의 북쪽에 있다. 호수의 물은 모두 시의 전주취안(珍珠泉), 푸룡취안(芙蓉泉), 왕푸치(王府池) 등의 샘물로부터 온다.


산둥성은 춘추시대 이래 노나라나 제나라 등 많은 제후국이 성립되었고, 이러한 지리적, 환경적 배경으로 산둥 문예와 요리, 술이 춘추전국시대 이래 끊임없는 발전을 이루어 왔다. 산둥성의 취푸에는 공자묘가 있어, 공자 신앙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취푸에서는 공자에게 바치는 예술, 요리, 그리고 술을 만들기 위한 독창적인 공부(孔附),  '공부가주(孔府家酒·쿵푸자주)' 등 독창적인 분야로 발전했다.


우리 산동대 방문 일행은 총 10명이었다. 필자 권상희(權相禧,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김철환(金喆煥, 전자전기공학), 전병우(全炳宇, 전자전기공학), 박정하(朴正夏, 학부대학), 정우택(鄭宇澤, 국어국문학) 교수 그리고 국제처 홍창완 과장, 황순성 계장, 김지은 직원, 정보통신팀 황민호 계장, 홍보팀 이수경 직원이다.


◈ 1일 차. 8월 13일(일) 35도의 열하의 계절 절정기에 제남 국제공항 도착.


공항에는 산동대 국제처 직원 Wang Yan(王岩)이 나와있었다. 출국 심사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져 산동대 교직원들은 우리를 오래 기다렸다. 우리는 산동대 교직원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산동대 가는 버스를 타려고 공항 문을 나섰다. 그러자 산동의 뜨거운 열기가 훅 불어왔다.  산동대에서 마련해준 호텔은 ‘대학호텔’이다. 상호명이 대학호텔(学人大厦)이다. 숙소는 대학교 내에 있다. 호텔 정문 전광판에는 ‘성균관대학교 대표단이 산동대학교를 방문하는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켜져 있었다. 우리를 환영하는 한글로 된 문구를 보니 감개무량했다. 우린 우리를 환영한다는 문구가 나타나는 찰나를 기다려 첫 번째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대학숙소 (学人大厦)에서 여정을 풀고 잠깐 휴식을 취했다. 옷을 케주얼 차림에서 세미정장으로 갈아입은뒤 호텔 로비에 다시 모였다. 부총장 환담을 위해 호텔을 나와 다른 건물로 이동하기 위해서다.


明德楼A座一层会见厅에서 만난 Liu Jianya(부총장)은 코로나이후 직원 연수 프로그램이 재개(再開)되어 기쁘고 직원 연수 프로그램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류젠야 부총장은 우리 성대와 산동대가 MOU를 맺은지 올해 30주년 되는 뜻깊은 해라며 중요한 이정표라고 전했다. 그는 기존협력을 심화하고 새로운 협력을 발전시키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산동대의 순펑수 부장은 국제사무처가 양교간의 협력 교류를 위해 많이 힘쓰고 있다며 우리에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고 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 파견단 단장이었던 김철환 교수는 “류젠야 부총장님을 비롯해 일요일 임에도 나와서 환대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공동으로 학술교류도 맺고 양교의 관계가 더 돈독해지면 좋겠다”며 “부총장을 비롯해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가정이 화목하길 바란다”는 덕담을 전했다.


[도착 직후 당일, 산동대 본교 역사관과 박물관]


저녁 6시, 부총장 환영 만찬은 화기애애하고 좋았다. 만찬장에서는 산동대학과 성균관대학 간의 상호 교류와 역사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두 대학의 역사와 현황을 비교하고 공유하며, 미래의 협력 방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러한 교류를 통해 두 대학 간의 연대감과 친교를 더욱 깊게 느낄 수 있었다.


이날 방문 중, 공자의 어구인 "유붕자원 방래 불역락호아 절(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를 마주했다. 이는 공자의 『논어』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글귀로,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면 기쁘지 않겠는가?"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류젠야 부총장은 이 문구를 읊으며 자신들이 우리를 환영한다는 마음을 표현했다. 만찬은 각종 산해진미(山海珍味)로 가득했다. 생소한 음식들이었으나 중화의 풍미로 맛있었다.


◈ 2일 차. 8월 14일(월) 각 소속 대학 연관 부서 교류. 필자는 신문방송대학 방문


이날은 산동대 연관 부서와 우리 대학 간 교류회를 가졌다. 필자는 "新闻传播学院生命南楼 209会议室"에서 신문방송대학의 Liu Ming Yang (柳明洋) 학장, Qiu Ling(邱堎) 부학장, 실험 주Yu Zhiyuan연구원(实验中心主任于智源副研究员)과 Yang Hua(楊枠) 외사비서가 함께 회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는 중국과 한국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와 신문방송대학 간의 교환 프로그램, 학생 교류, 공동 연구 등 다양한 형태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미래의 협력 도약을 모색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두 대학의 미디어 분야의 협력이 더욱 강화될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산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과 사무실에서]


산동대 홍보팀 직원을 만난 우리 대학 홍보팀 직원은 교류회를 한 마디로 재밌고 흥미로웠다고 했다. 활발한 의견 교환이 있었는데 공통점은 서로 하는 일에 대해 느끼는 소회가 같다는 것이다. 그들이 홍보일을 하며 느끼는 것과 자신이 하는 홍보일이 비슷하다고. 홍보에 중점을 두는 부분도 같아서 문화라는 것이 서로 말하지 않아도 일맥상통한다고 전했다. 오후에는 생존 중국어 배우기 수업이 있었다.


◈ 3일 차. 8월 15일(화) 공자의 고향 곡부(曲阜) 방문. 대성전, 공묘, 공림


[공자의 고향 곡부]


이날은 학문의 역사적인 근원을 찾기 위해 공자 가르침을 배우기 위한 시간을 가졌다. '공자 사당'이 있는 그의 고향 곡부를 찾아서 그의 철학과 학문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다. "공자 사당" 대성전에서는 그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그는 '유교' 창시자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학』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사람을 교육하라, 그들은 바르게 행동할 것이다’라는 가르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성전까지 가려면 몇 개의 문을 통과해야 했다. 어떤 문은 문턱이 너무 높았는데 그것은 잡귀가 넘어오지 않게 하려는 예방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공자의 유교가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며, 중국의 전통문화와 철학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공묘는 공씨 성만 가진 사람들만 묻히는 공씨 공동묘지였다. 공자의 묘 옆과 앞에는 그의 아들과 손자의 묘가 있었다. 공자의 처는 성이 달라 이곳에 묻히지 못했다. 우리 일행중 3~4명은 공자 묘 앞에서 삼배를 했다. 우리를 지켜본 공묘 관리 직원은 엄지척을 보이며 잘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공림은 공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던 집이다. 집은 구중궁궐처럼 깊고 복잡했다. 미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림집 내부도 볼 수 있었는데 침대와 식탁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자시대부터 이들이 입식 생활을 했다는 것이 시대를 앞선 듯했다.


◈ 4일 차. 8월 16일(수) 위해(웨이하이(중국어: 威海, 병음: Wēihǎi)에 있는 산동대학 위해 캠퍼스 방문.


위해는 중국 전통 의례  호수 등의 인문경관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웨이하이시는 중국 제일의 위생도시이기도 하다. 웨이하이는 중국 산둥성 동부에 있는 항구도시로 우리나라와 직선거리에 있는 가까운 도시다. 산동대학 위해캠퍼스에서는 대학의 역사와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의 조용한 분위기는 학문의 가치를 강조했다. 지난에서 웨이하이(중국식 발음)까지는 고속철도를 이용했다. 고속철도는 시속 250km로 달렸다. 고속철도를 타려면 공항처럼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고 외국인인 우리는 여권을 보여줬다. 이 과정도 흥미로웠다. 웨이하이 기차역에 도착하니 역시 웨이하이 캠퍼스 직원이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웨이하이 캠퍼스도 부지가 넓어서 교내에 호수가 2개나 있고 정문은 산대생이라면 자부심이 느껴질 정도로 멋졌다. 우리는 기차역에서부터 타고온 학교 버스로 캠퍼스 투어를 마치고 웨이하이 교직원 식당을 갔다. 웨이하이에서는 해산물을 주로 먹었다. 바다 근처라서 그런지 귀한 해산물을 대접받았다. 점심 후 우리는 천문대를 갔다. 학교에서 천문학을 연구하는 학교 천문대였는데 유명한 곳이라 지역 주민과 학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천문대는 산꼭대기에 있었다. 모기도 우리 일행이 반가운지 우리 주변을 맴돌았다. 우리는 웨이하이 해변도 잠깐 산책했다.


[산동대학교 본교에서 웨이하이 캠퍼스로 이동하는 기차역]


저녁에는 부총장을 만나 환영회를 했다. 그 자리에는 우리대학 동아시아학술원과 교류를 맺고 활동했던 김철 교수가 나왔다. 우리 일행 중 국문과 정우택 교수와 인연이 깊어 그를 만나러 온 것이다. 김철 교수는 소탈하고 친근했다. 김철 교수 뿐 아니라 산동대학 관계자들은 모두 친절했고 우리를 극진히 대접했다. 부총장은 체구가 작았지만 다부지고 강단있어 보였다.


◈ 5일 차. 8월 17일(목) 칭다오 캠퍼스로 이동.


칭다오(청도, 중국어 간체자: 青岛, 정체자: 靑島, 병음: Qīngdǎo)는도시 앞의 작은 푸른섬(blue island)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칭다오는 웨이하이에서 기차로 40분 걸리는 곳에 있다. 역시 고속철도를 이용했다. 지난에서 웨이하이까지 오는 것과 달리 칭다오는 중간역에서 내려야 했다. 우리 일행은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중간역에서 모두 내렸다. 국제처 김지은 직원은 사소한 모든일에 신경쓰고 단원들을 챙겼다. 그녀는 아주 꼼꼼했고 모든 일에 솔선수범해서 여정 내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결국 마지막날에는 몸살이 났는지 말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칭다오 캠퍼스 정문을 보고 우리 일행은 다시 압도당한 느낌이 들었다. 광활한 대지에 드넓게 선 대학교 정문은 시원시원 했다. 웨이하이 보다 더 커보였다. 대학 정문이 넓고 크니 인재도 많이 나올것 같다. 칭다오 캠퍼스는 정문뿐 아니라 모든 건물이 웅장하고 커서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다.


칭다오 캠퍼스 부총장 Han Jianxin(青岛校区常务副校长韩建新), 칭다오 캠퍼스 교장실장 Song Zuobiao(青岛校区校长办公室主任宋作标), 칭다오 캠퍼스 국제처 부주임 Song Chunling(青岛校区国际事务部办公室常务副主任宋春玲), 칭다오 인문학 연구소 부교수 Xue Xizhen(人文社会科学青岛研究院副教授薛熹祯)  사회과학부, Su Chang(苏畅) Pei Likun (裴立坤)국제부 직원오찬 만찬을 가진후 박물관 관람을 했다.


중국내 대학중 2번째로 크다는 박물관은 현대적이고 첨단이었다. 박물관에는 국보급 유물이 전시돼 있고 찾는 이도 많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일행은 삼족오의 설화를 들었다.  삼족오가 해와 달의 신비한 움직임을 조절하고, 천하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소식을 전하는 존재로 묘사됐다. 이는 태양흑점 폭발과 연관있어 보인다.


[산동대학교 칭다오 캠퍼스 박물관과 도서관]


칭다오 캠퍼스 도서관도 말할 것 없이 규모가 엄청 났다. 단일 건물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학생 편의를 고려한 부속실이 많았다. 건물 디자인은 세련됐고 환경친화적이었다. 12층 건물인데 천장을 창으로 만들어 하늘에서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도서관은 쏟아지는 태양광 때문에 밝았고 자연광 때문인지 묘하지만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자주 오고 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12층에서 바라본 캠퍼스 전경은 장관이었다. 짙은 주황색 지붕으로 된 캠퍼스 건물은 질서정연했고 석양이 직선으로 캠퍼스 정문을 지나 도서관 건물에 이르렀을 때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도서관 12층으로 우리를 안내한 교직원이 의도적으로 캠퍼스 석양을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했는지 알 수 없으나 타이밍이 좋아 그런 아름다운 광경을 본 건 신의 한 수 였다. 우리 일행은 전부 발길을 멈추고 그 광경을 한참 바라봤다. 칭다오 캠퍼스에서는 현대적인 교육과 연구의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중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열정과 에너지에 감동하며 중국 교육 분야의 성장을 엿볼 수 있었다.


[천장이 창문으로 된 도서관과 칭다오 캠퍼스 각 대학 건물]


환송 만찬에는 Guo Peiliang 칭다오캠퍼스 당부서기, Song Chunling 국제사무실 상무부주임, Xue Xizhen 인문사회과학 칭다오캠퍼스연구원 부교수(통역), Su Yang 국제사무실 직원, Pei Likun 국제사무실 직원이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의 습(習)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었다. 실천(實踐)에 옮김으로써 사회에 구현한다. 그러므로 배움에는 그 시기(時期)와 시대에 따라 실천의 방법이 다르다. 인공지능(AI) 시대 실습과 실천은 달라야 한다. 따라서 성균관대학교와 산동대 교류회의 실천은 새롭게 구현해야 하는 시대에 와있다.라는 의견을 주고 받았다.


◈ 6일 차. 8월 18일(금) 칭다오 관광.


마지막 날은 일행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우리는 칭다오 맥주 공장을 견학했다. 공장에서는 맥주 원액을 시음하고 시판용 맥주도 마시는 체험을 했다. 오후에는 칭다오에서 유명한 려산을 가려고 계획했으나 거리와 시간상 갈수 없어서 포기했다. 대신 우리는 잔교와 5·4 광장을 갔다. 잔교(青岛栈桥, 칭다오잔차오)는 군사 목적으로 만든 임시 다리지만 이제는 관광지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잔교 건너편에는 군사 박물관이 보였다. 5·4광장은 우리 나라  3.1운동처럼 1919년 일본 침략기에 항거한 중국 시민운동을 기념하는 뜻깊은 곳이다. 붉은 불을 형상한 조형물을 보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우리와 같은 심정이었을 중국인의 열기가 느껴졌다.


[5·4 광장과 잔교]


◈ 7일 차. 8월 19일(토) 귀국


마지막 날까지 산동대학교 교직원은 우리를 공항까지 배웅했다. 칭다오 캠퍼스 국제처 직원은 공항에서 출국 입구까지 배웅하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 모두 그들의 친절과 배려에 감사하며 다시 만나자고 했다. 많은 산동대 사람들이 생각나지만 그래도 Wang Yan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첫날 공항에서 우리를 픽업하고 마지막 날까지 함께 했다. 도시를 이동하는 동안에도 우리와 함께 했다. 시종일관 밝고 씩씩했다. 그녀에게도 우리 일정이 피곤했을 텐데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많이 고마웠다. 이번 산동대 방문은 무척 감동적이었다. 모든 일정에 최고의 대접, 到處宣化堂(도처선화당)으로 대해준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