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IT 기술 슬기롭게 감별하기

  • 526호
  • 기사입력 2023.10.30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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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형기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시조 한편 읊고 가실께요. 지겨워도 새겨들으시길 …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 하나이다

(출처 : 시조가 있는 아침,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918349#home)


이 시조는 조선시대 무인이었던 노계(蘆溪) 박인로가 선조 36년(1601)에 지은 “조홍시가”라는 시조다. 현대어로 되돌려 감상 해보자. 노계가 한음 이덕형의 집을 찾았을 때, 손님을 대접하느라 홍시가 소반에 담겨 나왔다. 이를 본 노계는 중국 후한 때의 육적(陸績)의 일을 생각한다. 당시, 여섯 살 육적이 친구 원술(袁術)의 집에 갔을 때 귀한 유자가 나왔다. 그것을 집에 가져가 어머니께 드리려고 가슴에 몰래 품었다는 육적회귤(陸績懷橘)의 고사다. 그해 가을 첫 감을 본 노계는 어버이를 생각한다.


은행나무 아래에서 400년도 더 된 시조를 소환한 이유는 한음이나 노계가 한창 학습하던 어린 시절에는 무슨 공부를 했을까 하는 의문에서다. 과거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조선시대 학인들은  교과목인 사서삼경에 매진했을 것이다. 필자가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모든 학생들이 전공에 관계없이 공부하던 것은 영어였다. 모든 대학생들이 제1외국어 영어의 높은 점수 획득을 위해 종로의 즐비한 학원에서 TOEFL과 Vocabulary 22000이라는 과목을 줄지어서 신청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외국어 구사 능력을 인재상으로 삼은 귀결이다. 우리 부친 세대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서 여쭈어봤다.  “아버지 대학생 시절 모든 학생들이 공통으로 공부하던 과목이 뭐였어요?”라는 질문에 구순을 앞둔 부친 말씀이 “시끄럽다”고 하셨다. 곰곰이 생각해보고 검색도 해보니 종이에 글씨를 잘 쓰는 것으로 판명 났다. 해방 이후 상급학교 교육 기회도 많지 않고 사회에 나가려면 한글을 깨우치는 것을 넘어 글씨 잘 쓰는 인재를 요구했다.


시절과 세대가 지나면서 사회의 인재상이 변하면서 대학생들의 공통 교양과목도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시절의 대학생들의 공통 교양과목은 무엇일까? 내 입으로 직접 말하기가 계면쩍지만 그것은 바로 소프트웨어(Software)다. 사서삼경, 글씨, 영어를 거쳐 소프트웨어가 공통 전공으로 자리매김 한데에는 어떤 배경이 숨겨져 있을까?


먼저, Steve Jobs의 스마트폰을 언급 안 할 수가 없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다수의 애플리케이션이 개발자들에 의해 보급되었고 앱스토어를 통해 이를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이 형성 되었다. 이로 인해 개발자들은 이익을 보전하고 그 이익을 개발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잡았고 개발자들이 대접 받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에 개발자들은 정해진 소수의 고객들의 요구에 맞추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니 판로가 넓지 않았고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인건비와 개발 단가를 줄이기 위해 개발 기간을 단축하여 개발자의 삶이 힘들었다. 이제는 거의 모든 기업들이 사용자들의 단말을 활용해서 새로운 서비스들을 개발했고 오프라인에서 경쟁만큼이나 온라인 서비스에 대한 경쟁도 만만치 않았다. 서비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능력있는 개발자들을 기업에서 선호했고 단순한 개발능력을 넘어서 다학제의 융합적 사고를 겸비한 개발자들이 사회 초년생들의 인재상으로 자리매김 했다. 이 추세에 학생들은 소프트웨어 소양이 필수가 됐다.


여기에 다양한 분야에서 다량의 데이터가 축적 되었다. 컴퓨팅 속도의 눈부신 발전으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고속으로 처리하게 됐다.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시켜 데이터 간에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된 것도 처리속도가 한 몫 했다. 여기서 의당 생기는 의문점은 이것이다. 과연, 이 빅데이터 기술의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하고, 이 유행은 얼마나 지속 될 것인지. 여기에 대한 명쾌한 답은 쉽게 내리기 어렵다. 그렇지만, 과거에 견주어 유망했던 기술들의 흥망성쇠로 어림잡아 예측 할 수는 있다. 과거 당대를 풍미하던 기술을 아래 표 1로 정리했다.



시절에 관계없이 꾸준한 기술은 인터넷과 클라우드 컴퓨팅에 있다. 반면, 초반의 상승세 이후  내리막을 걷는 기술로는 메타버스, 블록체인, 사물인터넷이 있다. 비트코인의 핵심 기술로 소개된 블록체인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가 기억이 난다. 컴퓨터공학과 교수들의 관심이 높았고 정부의 강력한 연구비 지원으로 블록체인을 연구하지 않으면 컴공에서 곧 도태될 것 같은 위기의식과 불안감을 가졌던 시절이 떠오른다.


시대에 상관없이 대접 받는 기술과 그렇지 못한 기술의 차이점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슬기로움의 척도가 될 것이다. 인터넷 그리고 클라우드는 개인 사용자들에게 유효한 서비스들을 제공했다. 브라우저와 네트워크 연결 만 있으면 전 세계의 모든 정보를 검색하고 집에서 원격으로 사무 일처리가 가능해졌다. 회사에서 생산한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보관한 후 퇴근하면 집에서 데이터에 접근이 가능하고 연속으로 업무를 처리하게 되었다. 우리가 2020년부터 3년간 코로나 시절을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두 기술의 공이 매우 크다.


메타버스, 블록체인 그리고 사물인터넷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들이 우리 주위에서 얼마나 유효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해보자. 몇 년 전 3D입체 TV가 시장에 반짝 선을 보인 적이 있었다. 평면의 TV에서 입체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니 이는 엄청난 인기를 누릴 것으로 시장에 관측되었지만, 이 기술의 수명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입체 동영상을 시청하려면 착용해야 하는 안경이 기술의 발목을 잡았다. 착용과 간수하는 것이 현대인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었다. 메타버스도 같은 이유로 빠르게 시장에서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블록체인 그리고 사물인터넷 역시 특정 분야의 산업과 기업에서 의미있게 활용 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반길 만한 서비스로 내세울 만한 것이 많지 않다.


스마트폰은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를 누려왔지만 미래는 녹록지 않을 것이다. 그 배경에는 새로운 서비스에서 창출하는 콘텐츠를 들 수 있다. 이미지, 오디오, 동영상의 양과 질의 확대로 이에 비례하는 고성능 단말과 네트워크가 요구되었다. 이를 발판으로 눈부시게 발전한 삼성과 애플같은 단말기 회사와 모바일 네트워크 회사는 현재 큰 고민에 빠져있다. 사용자가 단말을 교체하는 동기가 콘텐츠를 누리기 위함인데 새로운 킬러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동영상 화질은 4K를 정점으로 그 이상의 화질은 의미가 없다. 높은 전송 대역폭을 요구하는 가상현실의 콘텐츠에 은근한 기대를 했던 단말과 네트워크 회사들은 메타버스의 고전에 미래 시장을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4K 수준의 동영상은 현 5G 모바일 네트워크로도 문제없이 시청이 가능해서 큰 대역폭을 자랑하는 6G가 등장해도 시장은 크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최상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AI, 빅데이터의 미래 운명은 어떻게 될 지 감별해보자. 먼저, 이 기술들이 사용자인 나에게 어떤 유효하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왔는지 상기해보자. 홍수같이 밀려오는 광고 사이에서 공통으로 회자되는 인공지능 서비스가 내 구매력을 얼마나 높이는지. 나도 몰래 내 생활과 업무에 적용된 인공지능 기술들이 어느 정도로 내 삶을 윤택하게 해 주었는지 계량화해서 전과 후를 비교해 보면 의외로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다. 경험이 일천한 내 결론은 다소 주관적이어서 공개를 보류하고 각자의 주관적인 결정을 존중하기로 하고 이를 믿고 미래를 감별하면 된다.


내가 여기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또한 미래에 언젠가는 더 새로운 기술에 현재 선두의 자리를 양보하게 될 것이다. 도래하는 그 신기술을 분석하고 평가하고 예측하는 작업을 반복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필자가 주장하는 대로 이 서비스가 사용자에게 얼마나 유효한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상기해 보고 이 기술을 감별해보자. 내 전공이 매몰되었다고 탄식하기보단 기술의 흥망성쇠 주기를 믿고 신기술을 예측하는 힘을 키우는 게 낫지 않을까. 낙관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