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傾聽)의 힘

  • 528호
  • 기사입력 2023.11.28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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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인재교육원 이정환 원장



경청은 인간관계에서 신뢰를 형성하고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편에서는 민생경청투어, 청년경청투어로 듣고 또 듣겠다고 하고, 한편에서는 자기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호소하는 상반된 광경을 보면 경청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긴 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준 가족과 구성원 그리고 친구들입니다. 때로는 보고 싶은 책도 요약 영상으로 보고, 영화도 고속으로 재생해서 감상하면서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경청(傾聽)은 주의(注意)를 기울여 열심히 듣는 것을 말합니다. 공자(孔子)가 《논어》 〈위정편〉에서 회고한 ‘이순(耳順)’이란 타인의 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경지이며, 어떤 말을 들어도 이해를 하는 경지요, 너그러운 마음으로 모든 걸 관용하는 경지라고 했습니다. 이순이 곧 경청입니다. 공자도 6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순의 경지에 도달했다”라고 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 경청입니다. 경청을 배우는 것이 60년이 넘게 걸리는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다타르 학장은 적극적 경청이 모든 리더에게 필수적인 의무라며, 자신과 다른 관점을 흡수하고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경청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오늘날처럼 차이가 크고 의견이 다양한 시대에 적극적으로 경청하지 않으면 생각하지 못했던 정보를 배울 수 없고, 배울 수 없으면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이끌 수 없습니다. 이렇듯 리더십에서도 경청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리더가 구성원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생각을 존중하는 행위는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고 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또한, 리더의 경청 태도는 구성원들 스스로가 자신이 중요하다고 느끼게 하고, 그들의 의견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이러한 느낌은 구성원들이 더 열정적으로 일하고,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나는 두 눈으로 15만명의 사원을 보지만, 사원은 30만개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며 스스로 돌아보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던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회장은 고 이건희 선대회장에게 '경청’이라는 휘호를 직접 써서 건네며,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태도’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삼성 정신의 밑거름이기도 합니다.


구글은 4년 동안 수백만 달러를 지출하여 사내 조직문화 개선 프로젝트인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Aristotle Project)를 수행한 결과, 예상외로 팀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비슷한 성격 유형이나 배경 등 팀원들의 자질보다는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동료가 비난하지 않고 인정해 주는 느낌이나 동등한 발언 기회, 경청, 일의 의미 등 팀 운영방식인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었습니다. 구글이 채용 과정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좋은 인성을 드러내는 사람, 타인의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실패를 인정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사람을 선호하는 것도, 이러한 조직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85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구 보고서인 하버드 성인 발달 연구에서는 행복한 삶의 핵심으로 친밀한 인간관계의 빈도와 질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공감은 경청을 기반으로 하는데, 2012년 연구에서는 공감의 정확도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친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하지만, 어떤 사람은 계획적으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할 수 있겠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쉬워질 것입니다.


최근에 인적자원 개발 분야에서 조직 성과 향상을 목적으로 코칭을 도입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코칭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코치의 적극적인 경청과 내담자의 코칭 수용 능력이 조화를 이룰 때 성과 있는 코칭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것은 모두가 함께 공존하는 길입니다.  브렌다 율런드의 말처럼 경청은 매력적이면서 창조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경청은 말하는 사람만큼이나 들어주는 사람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타인의 경험에 진정으로 몰입하는 태도를 취하면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 모두 마음을 열고 자기 상자에서 나옵니다. 그로 인해 우리 삶은 더 풍요로워집니다.


경청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그로이스버그 교수가 제시한 경청의 아홉 가지 팁 중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 상대의 문장 마지막 몇 단어를 되풀이하라.

•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자기의 말로 재해석하지 말라.

• 상대의 음색, 표정 등 비언어적인 신호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끄덕임과 주시하기 같은 비언어적 경청 신호를 보내라.

• 내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 이상으로 질문하라.

• 잘 듣지 못했다면 다시 듣는 것이 오히려 더 집중하고 있다는 신호가 된다.

• 상대가 말하는 동안 자신의 반응을 미리 생각하려 애쓰지 마라.


학교 구성원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에서부터 담대한 도전 과제에 이르기까지 경청은 문제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공유할 수 있어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이순(耳順)에도 여전히 경청이 부족한 나 자신부터 출발하여, 가족, 구성원, 고객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는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되도록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