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지혜] 제대로 겸손하기

  • 480호
  • 기사입력 2021.11.30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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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고재석 유학대학 및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주임교수


‘벼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성숙한 사람일수록 자신을 낮추고 겸손할 줄 안다는 속담의 하나이다. 겸손은 전통 사회에서 지혜로운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하는 덕목으로 강조되곤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자기 자신을 알리는 일에 어리숙하고, 어딜 가든 가족이나 자식자랑 하지 말라는 말도 많이 들어 왔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어서 인지, 최근에는 오히려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자기 PR(Public Relations)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요즘처럼 청년들이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 시기에 자기 PR은 상대방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어 취업에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건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매출이 달라지듯, 경쟁시대에 자신을 포장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쩜 자기 자신을 낮추고 얌전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겸손’은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덕목처럼 여겨진다.


‘겸손’은 무엇일까? 왜 우리 선현들은 한결같이 겸손을 강조했을까? 겸손의 의미와 제대로 겸손하는 방법에 대해 논한 고전의 지혜이다. 『論語』「雍也」편에 나온다.



孟之反은 노나라 대부 孟之側을 지칭한다. 孟은 姓이고, 之는 어조사이며, 反은 字로, 맹씨 집안의 反이란 말이다. 혹자는 『장자』「大宗師」에서 언급된 “노자의 부드럽고 겸손히 낮추는 기풍을 듣고 기뻐하였다.[悅老氏懦弱謙下之風者]”는 ‘孟子反’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不伐의 不은 동사의 의미를 부정하는 부정사이고, 伐은 功績을 자랑한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奔而殿의 奔은 전쟁에서 敗走하여 돌아온다는 뜻이고, 而는 앞 단어나 문장을 이어주는 순접의 접속사로 ‘~하고 나서[然後]’의 의미이며, 殿은 군대의 후미에 뒤처져 있는 것을 뜻한다. 將入門의 將은 ‘막 ~하려 한다’는 뜻이고, 入門은 도읍의 성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말한다. 전쟁에 참여했다가 패주하여 돌아오는 병사들을 사람들이 맞이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策其馬의 策은 채찍질하다는 뜻이고, 其馬는 맹지반이 타고 있는 ‘그 말’을 지칭한다. 曰은 말하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사람들이 듣도록 일부러 크게 말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非敢後也의 非는 명사나 명사구를 부정하는 부정사로, ‘~이 아니다’는 의미이다. 敢은 ‘감히’의 뜻으로 자신을 낮추는 속내를 더욱 드러내고 있다. 後는 뒤의 뜻으로, 패주하여 돌아올 때 후미에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也는 문장의 의미를 풀이하는 어조사로, ‘~이다’의 의미이다. 공을 세우기 위해 뒤에 있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겸손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馬不進也의 馬은 말이고, 不은 동사를 부정하는 부정사이며, 進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말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뒤에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문장 구조에 따라 원문을 해석해 본다. “맹씨 집안의 반이란 자는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는다. 패주하여 돌아올 때 군대 맨 뒤에서 있었는데, 막 성문을 들어설 때 자신의 말을 채찍질하며 들리게 말하였다. ‘감히 뒤에 있으려 한 것이 아니라 말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서이다.’”맹지반의 고사는 『춘추좌전』애공 11년 기록에 남아 있다. 제나라가 노나라를 치려 하자, 노나라 장수 孟孺子 洩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나아가 교외 지역에서 싸웠다. 패주하여 후퇴하게 되었는데, 제나라 군사들이 뒤쫓아 오자, 맹지측이 후퇴하는 군사들을 엄호하여 싸웠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도성으로 돌아올 때쯤 군대 후미[殿]에 위치하게 되자, 맹지측은 화살을 뽑아 그 말을 채찍질하며 말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 뒤에 쳐지게 된 것이라고[孟之側後入以爲殿, 抽矢策其馬, 曰 “馬不進也.”] 말하였다.


군대 후미에 있게 된 것[殿]은 싸움에 패배하여 돌아올 때, 병사들이 안전하게 후퇴할 수 있도록 위험을 무릅쓰고 후미에서 엄호한 것을 상징한다. 마치 전쟁에서 승리할 때 맨 앞에서 맹렬하게 싸운 것과 같은 戰功이 있는 것이다. 공자는 맹지반이 후미에 있었음에도 말이 나아가지 못해 뒤처지게 되었다고 말한 것은, 자신의 공을 감추기 위해 겸손을 실천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맹지반이 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추론할 수 있다.


우선, 그가 패주할 때 후방에서 부대를 엄호한 것은 공을 세워 명성을 얻거나, 출세를 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남의 좋은 평가는 관심대상이 아니고 그리 중요하지도 않다. 자신의 본분과 역할에 충실하여 힘을 쏟다가 저절로 후미에 있게 된 것이므로, 공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이 부담스러워 그렇게 말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스스로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되어가는 인간의 과정에 있다고 여기면, 비록 어느 순간 잘한 것이 있다 할지라도 자만하기 어렵다. 언제든 본분을 망각하고 역할을 수행하지 못해, 부족함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잘한 모습을 뽐내기보다, 잘못할 수 있음을 경계하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일 수도 있다. 흔히, 겸손[謙]이라 하면, 형식적으로 자신을 낮추거나, 자신의 좋은 모습을 감추는 태도를 떠올리곤 한다. 겸손의 의미는 그것이 아니다. 과장되어 넘쳐나는 것을 덜어내고, 부족하여 모자란 것을 메워주는 태도가 겸손인 것이다.


남에게 보여 지는 것이 중요하면, 있는 그대로 보여 주기보다, 조금이라도 잘 보이기 위해 보태서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7~8월 장마와 태풍이 머무는 시기에 내리는 장대비는, 순식간에 세상을 물로 채우지만, 마르는 것은 서서 기다릴 수 있을 정도로 빠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과대포장한 것은 금새 드러난다. 『맹자』를 보면, 좋은 사람 군자는 ‘聲聞過情’을 수치스럽게 여긴다는 말이 나온다. 세상에 알려진 명성이 실제 모습보다 지나치면 군자는 부끄러워 한다는 뜻이다.


물론 덜어내야 한다고 해서, 자신이 잘하는 것까지 덜어내거나 감출 필요는 없다. 자기 본분과 역할에 충실하여 이루어진 좋은 모습은 과시하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 있어, 조급해 할 필요가 없다. 겸손하지 못한 사람은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관심을 밖으로만 집중하므로, 자신의 부족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반면, 겸손한 사람은 자기 모습 보다 지나치게 포장된 것은 과감히 덜어내고, 있는 그대로 보여 지기를 유념하다 보니, 저절로 자신의 부족을 직시하게 된다. 그렇다고 부족함에 의기소침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미흡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힘을 쏟기 때문이다. 깊은 산 속 옹달샘에서 밤낮없이 솟아나와 웅덩이를 가득 채우고 개울로 흘러 강으로 합쳐지듯, 근본이 있는 샘은 결국 천지 만물을 윤택하게 한다. 남의 평가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며, 자신의 부족을 차근차근 매워나가는 ‘겸손’한 사람은 결국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다.


『주역』에서는 겸손을 ‘地中有山’이라하여, 땅속에 거대한 산이 박혀 있는 모습을 형상한다.

땅 위에는 웅장한 산도 있고 평평한 평지도 있고 움푹패인 구덩이도 있다. 자신에게 좋은 모습이 있는 것처럼, 웅장한 산은 저절로 감동을 준다. 평평한 평지는 보잘것없기에 우습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평지는 이미 모자란 것부터 매워나가 이루어져 있다.  땅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그 속에는 거대한 산이 박혀 있음으로, 낮다고 해서 함부로 여길 수 없다. 비록 높은 수준은 아닐지라도 자기 모습으로 내면을 꽉 채운 겸손한 사람은 역시 감동을 줄 수 있다.


처음부터 높은 수준을 지닌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되어가는 사람이기에, 삶의 순간순간 겸손하고 겸손하여, 과장된 것은 덜어내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 스스로를 완성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겸괘를 풀이하며, ‘君子有終’이라고 하였다. 겸손하면 결국 자기 모습을 이룰 수 있어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고, 나아가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귀한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보다 지나쳐 억지로 보여 지는 것을 경계하고, 좋은 것은 좋은 대로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보여 지게 하여, 자신의 부족을 채워 나가는 것이 제대로 겸손하는 비결이다.


오늘 하루 사람들과 만나면서, 스스로 ‘겸손’했는지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첫째, 나는 오늘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실제의 나보다 과대 포장하지는 않았는가.

둘째, 나의 부족을 직시하고 그것을 매우기 위해 힘을 기울이지는 않았는가.

남들의 평가에 주목하며 자신을 포장하는데 힘을 낭비하기 보다, 나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해 보자. 그리고 내가 위대한 인간이 아닌 되어가는 인간이라 인정하고, 나의 부족을 채우기 위해 한발 한발 나아가 보도록 하자. 그러면 자신의 좋은 모습은 드러내지 않아도 빛날 것이고, 부족한 모습은 나를 성장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실제와 다른 과장된 모습은 덜어내고, 자신의 부족한 모습은 채워내어, 근본에 힘쓰면서 자기답게 살아, 작게는 자신에게 크게는 세상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비결이 매 순간 겸손을 새기면서 제대로 겸손을 실천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논어』는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