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래사회와 창조 학문이<br> 나아갈 길

한국의 미래사회와 창조 학문이
나아갈 길

  • 327호
  • 기사입력 2015.07.10
  • 편집 김진호 기자
  • 조회수 7685

글 : 김상현 러시아어문학과 교수

젊은 시인 김선우는 자신의 시 <마흔>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여기까지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려왔지만 / 여기서부터 나는 시속 1센티미터로 사라질 테다.” 속도를 줄여야만 찬찬히 볼 수 있는 주변 환경의 미세한 부분은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에서 이미 결정 난다. 그간 큰 관심을 두지 못했던 부분, 사랑의 마음을 두지 못했던 구석들, 새로운 과학적 혁명의 패러다임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영역, 교육의 개혁과 우리 학문의 발전을 위한 실천적 결단의 문제들에 새로운 시선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정부는 물론이고 주요 정부출연기관 및 기업 연구소들도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융합’ 혹은 ‘융복합’이라고 하는 트렌드 위에서 공존과 조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동시에 정부로부터의 막대한 재정적 지원 속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프로젝트는 연구자들에게 가급적 사회에 공헌할 수 있으면서, 기술력의 도움으로 구현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로의 구축이 가능하도록 압력을 행사한다. 근대 이후로 두 이질적인 영역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이질적인 분화를 지속해왔던 양 진영은 오늘날 공생의 생존전략을 놓고 고심하며 학문의 진보를 꿈꾸고 있다.

『지식의 재탄생』(Reinventing Knowledge : From Alexandria to the Internet, 2009)에서 저자 이언 맥닐리(Ian F. McNeely)는 서구의 지식 축적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5단계의 공간 중심을 언급한다. 도서관에서 시작된 서구의 지식 축적과 공유의 아이디어는 이후 중세의 수도원, 근대의 대학,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시기에는 서신과 19세기 후반 들어 형성되었던 전문학교를 예로 들고 있다. 맥닐리의 관점에 따르면, 20-21세기 현대의 지식 창조는 주로 대학 부설 연구소 혹은 각종 연구기관이 주된 성장동력을 이루면서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저자가 따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미래에도 연구소의 중추적 역할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정부출연연구소와 관련 기업 연구소들은 한 국가, 한 문명을 책임질 지식의 보고이자 창조자이며, 무엇보다 지식공유의 자산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원천이 아닐 수 없다. 양적 성장을 넘어 이제 연구소는 질적인 도약을 시작한지 오래 되었고, 인문학과 자연과학 간의 공생관계, 즉 심비오시스를 강조하는 새로운 혁명적 패러다임을 주창하고 나섰다. 이 혁신적 사고방식의 요체는 근대 이후,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던 두 학문진영의 창조적 결합과 공동 연구에 기반 한 새로운 지식구조의 창조에 있다고 하겠다.

이와 같이 최근 저작의 논점과 미래적 비전을 성찰해 볼 때, 우리가 회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 하나는 바로 대한민국의 ‘미래국가전략 구상’이 아닐 수 없다. 세계적인 경제기구와 각종 재단, UN기구 및 연구기관, 심지어 대학소재 연구소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각종 ‘미래보고서’들의 유혹이다. 역사를 통해 미래의 비전을 설정할 수 있듯이, 우리가 살펴본 지식 체계와 전수의 역사는 곧 우리의 미래를 창조적으로, 생산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도록 동력을 제공하는 방편에 한에서만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KAIST의 미래전략대학원에서 처음으로 펴낸 보고서 『대한민국 국가미래전략 2015』의 출간은 우리 사회에 안겨주는 시사점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한 세대에 해당하는 30년을 미래계획 근간으로 설정하여 2045년까지 향후 30년간 지속될 ‘한국미래사회전략 보고서 시리즈’는 그 핵심 비전을 ‘아시아 평화중심 창조국가’로 삼았다. 이 목표 달성을 위해 4개의 세부 전략(행복국가, 평화국가, 과학국가, 창업국가)이 세워졌고, 이 전략들은 국가의 전반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고, 이 같은 대전략 수행을 위해 하부의 세부전략 21개가 선정된 바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 기획과 추진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여기에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를 덧붙이고자 한다. 바로 ‘지식식민주의를 먼저 청산하자’란 의식이다. 미래전략대학원에서 추진하고 연구하는 대한민국 미래의 비전은 무엇보다 창조성에 기초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창조’란 키워드는 무수히 많은 다른 개념과 융합되어 폭발적인 의미생산을 일구어 낼 수 있다. 창조경제, 창조산업, 창조학문, 창조인문학, 창조과학, 창조연구, 창조디자인 등.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해 보아야 한다.

첫째, 우리는 ‘무엇이 창조인가?’란 질문에 스스로 분명한 입장과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다.
둘째, ‘창조적인 발상을 어떤 분야에 접목시켜야 하는가?’의 자문에도 분명한 계획과 실천적 노력이 뒤따라야겠다.
셋째, 가장 기초적이지만, 다른 가치에 쉽게 가려져 무시될 수 있는 것으로 ‘연구윤리의식’과 ‘건강한 자존감’이 있다. 모든 혁신과 발전을 위해 다른 것이 희생되거나 환원주의적으로 가치 폄하된다면 이내 불균형이 오고, 학문간 고립과 불신이라고 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임이 없을 것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공존과 협업, 창조적인 접목과 연구자들 간의 배려와 사랑이 그래서 더욱 빛을 발하는 덕목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김선우 시인의 해갈처럼, 비록 메타포의 선언이긴 하지만 시속 1 킬로미터의 사랑과 관심의 포부가 있어야만 우리의 미래전략 청사진은 가능태로 다가올 것이다. 스피드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결과중심주의와 성과우상주의에 빠져, 그 이면에 대충주의식 날림공사가 만연된다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미래 학문의 결과는 암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단발의 눈 앞 이익에 몰린 과도한 정책적 관심과 투자는 미래전략사업의 청사진에 재를 뿌리는 꼴이 될 것이다. 그 어떤 형태의 학문적 연구와 프로젝트 설계에도 연구윤리와 양심적인 연구 태도는 가장 중요한 기초공사임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귀중한 덕목이자, 미래의 한국사회가 설 든든한 토양이 바로 ‘건강한 연구윤리’의식과 ‘우리 학문창조에의 진지한 노력’이다.

더불어 우리는 ‘우리가 빚어가는 학문이 어떤 모습을 띠고 있어야 하는가?’ ‘어떤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학문을 하는가?’의 문제를 안고 가야 한다. 필자가 제기한 이 화두는 첫째 우리의 목소리가 묻어나는 학문, 우리의 진지한 시각이 녹아있는 학문을 빚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와 연구윤리의 문제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나아가 이는 학문의 종속적, 수평적 지식재생산을 넘어, 독창적인 자생 학문을 창조할 필요성에 우리가 각성되어 있자는 호소이다.
이 같은 문제 제기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우리가 설정할 일차적인 작업은 ‘지식식민주의를 청산해야한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제조건이 가장 필요하며, 연구 부정의 은밀한 문화를 청산하고 혁파해야겠다는 자성의 움직임이 내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후발 개도국과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는 자생학문에 대한 생존적 육성과 보호 이전에 서구편향의 학문적 답습의 시기를 거친 결과 학제 시스템에서부터 연구 평가와 학문에 대한 태도가 서구의 기준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 태생적 문제였다. 우리나라에서 형성된 분과학문(discipline)으로서의 학계(academia, 혹은 scholarship)의 생산구조에서 지극히 미국의 지식형성구조를 닮아가려는 사회적 병리현상이 축출되고 건강한 대안이 나타나지 않는 한, 이 같은 지식형성구조 추종의 강박관념은 좀처럼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인문학은 이 세계와 인간에 관한 생산적인 지식을 내놓지 못하는 ‘불임의 학문’처럼 보였고, 자연과학은 마치 서번트 증후군이라도 앓는 듯 지식을 생산해내기만 했지 그것이 인간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라고 진단한 한 철학자의 고뇌(박승억, 『학문의 진화』, 178쪽)는 분명 우리의 미래사회가 도래하기 전 현재의 우리가 해결해야 할 사항이다. 우리의 학계에 불어 닥친 변화의 속도가 임계점에 다르기 전에 먼저 우리는 진단의 칼날을 무디게 하지 말아야겠다. 미래전략 수립을 위해, 인문학적 정신의 문제에 호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간의 창조적 융합과 경계넘기는 서로를 먼저 잘 이해하는 사랑과 소통의 기초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사회 창조! 바로 학문 간의 소통과 이해가 기초에 있어야 하며, 지식생태계를 우리 스스로 구축하고 모방의 굴레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담론을 만들어낼 각오와 노력이 뒤따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