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글링과 수학

저글링과 수학

  • 345호
  • 기사입력 2016.04.12
  • 취재 이지원 기자
  • 편집 이지원 기자
  • 조회수 8802

글: 김장수 수학과 교수

저글링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임요환, 홍진호 선수와 같이 유명한 프로게이머들을 탄생시킨 스타크래프트에서 저그의 기본 유닛인 저글링(zergling)을 떠올리시는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도 대학생 시절에 스타크래프트를 즐겼지만 이번 글에서 이야기할 내용은 저글링(zergling)이 아닌 저글링(juggling)입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TV에서 여러 개의 공을 던지고 받는 저글링을 보셨을 것입니다. 저글링을 정의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물체를 가지고 하는 행위는 모두 저글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공부하다가 연필을 돌리는 것도 일종의 저글링인 것이죠.

저글링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바로 컨택트 저글링(contact juggling)과 토스 저글링(toss juggling)입니다. 컨택트 저글링은 크리스탈 볼 등을 손이나 몸 위에 굴리면서 볼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환상을 보여주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토스 저글링은 이름대로 물체를 공중에 던지고 받는 행위를 뜻합니다. 던지는 물체는 공이나 링, 볼링핀처럼 생긴 곤봉이 대표적인 도구로 사용됩니다. 불붙은 토치, 나이프, 전기톱 등의 무시무시한 도구로 저글링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저글링이 많이 보급되지 않아서 저글링을 하는 사람을 보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컨택트 저글링과 토스 저글링을 모두 잘하는 사람이 있는 데 누군지 짐작이 가시나요? 바로 리듬체조 손연재 선수입니다. 손연재 선수는 공을 몸 위에 굴리는 컨택트 저글링과 두 개의 곤봉을 던지는 토스 저글링을 모두 예술적으로 잘하는 선수입니다. 이제 저글링이 조금 친숙해지셨나요?

제가 저글링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많이 하는 질문은 "어떻게 저글링을 시작하게 되었는가?"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귤로 혼자 연습하다 보니 공 세 개로 저글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공 3개 다음은 공 4개로 하는 것일 텐데 그것은 저에게는 너무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저글링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5년 전 인터넷에서 저글링 영상을 보다가 공 3개로 저글링 하는 방법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중 몇 가지는 간단해 보여서 연습하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바로 저글링 전용 공을 사서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영상을 보면서 조금씩 연습하다 보니 공 3개로 여러 가지 패턴을 할 수 있게 되고 공 4개, 그리고 나중에는 공 5개까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저글링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저글링이 수학과 관련이 있어서입니다. 특히 수학에서도 제 연구 분야인 조합수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토스 저글링에서는 공을 던지고 받습니다. 이러한 저글링을 수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화 작업이 필요합니다. 공을 던지는 손, 공을 받는 손, 던지는 궤도, 던지는 방법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지만 우리는 최대한 단순화하여 공이 던져졌을 때 공중에 머무르는 시간만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편의상 공이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은 1초, 2초, 3초 등으로 자연수 단위의 초로 나타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공이 공중에 n초 떠 있도록 던지는 것을 n-던지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저글링을 할 때 매초 공을 n-던지기로 던진 경우 n을 기록하는 식으로 계속 기록을 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의 수열을 얻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얻어진 수열을 저글링 수열이라고 합니다. 공 3개로 하는 가장 대표적인 저글링 패턴은 3-볼 캐스캐이드(3-ball cascade)라고 부릅니다. 3-볼 캐스캐이드를 저글링 수열로 표현하면 33333..이 됩니다. 3이 무한히 반복되므로 간단하게 3으로 표현하겠습니다. 그리고 저글링을 하는 사람을 앞에서 보았을 때 세 공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위로 길쭉한) 타원궤도를 그리도록 저글링을 하는 패턴은 3-볼 샤워(3-ball shower)라고 합니다. 3-볼 샤워의 저글링 수열은 515151..이며 간단히 51로 표시합니다.


저글링 수열 판별법: 음이 아닌 정수의 수열 이 주어졌다고 하자. 이 수열이 저글링 수열일 필요충분조건은 다음과 같다.

필요충분조건: 번째 수에 를 더한 를 n으로 나눈 나머지가 모두 다르다.


예를 들면 531인 경우 번째 수에 를 더하면 5+1=6, 3+2=5, 1+3=4가 되고 길이가 3이므로 6,5,4를 3으로 나눈 나머지는 각각 0,2,1로 모두 다르다. 따라서 531은 저글링 수열이 된다. 그렇지만 4215인 경우 번째 수에 를 더하면 4+1=5, 2+2=4, 1+3=4, 5+4=9에서 5,4,4,9를 수열의 길이인 4로 나누면 1,0,0,1로 같은 숫자가 두 번 나오므로 조건을 만족하지 못해 저글링 수열이 아니다.

위의 판별법을 사용하면 어떤 수열이 있더라도 저글링이 되는 수열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저글링 패턴을 찾아내는 것도 가능합니다. 실제로 1980년대에 저글링에 대한 수학적인 연구가 진행된 이후로 저글링 패턴은 매우 다양해졌고 이를 통해 저글링은 큰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전 세계의 저글러(juggler)들이 저글링 패턴을 이야기 할 때 531, 441와 같이 수열을 사용하며 이를 사이트스왑(siteswap) 표기법이라고 합니다. 이 밖에도 저글링의 여러 성질들이 수학적 모델을 통해 연구가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화성에서 온 수학자"라는 책에서 주인공 에어디시(Erdos)의 친구이자 공동연구자로 나오는 그래햄(Graham)은 미국 수학회 회장을 역임했을 정도로 수학자로서 큰 명성을 떨쳤으며 저글러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래햄은 저글링 관련 수학논문을 여러 편 썼고 국제 저글러 협회(International Jugglers' Association)의 회장까지 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저글링에 관련된 수학 논문을 쓰는 것이 하나의 즐거운 목표입니다.

이제 제가 저글링을 하면서 한 가지 느낀 사실을 이야기하며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저는 처음에 공 4개로 저글링 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보여서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단계별 연습을 통해 공 4개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몇 년이 걸렸지만 5개까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것이라도 꾸준히 연습하다보면 결국 해낼 수 있다는 매우 진부한 결론이 될 것 같군요. 하지만 이것은 제가 저글링을 통해 다시 한번 알게 된 사실입니다. 어떤 일이든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오르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은 무슨 일이든 높은 수준까지 오를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그 수준에 오르기 위한 기나긴 노력을 하느냐 마느냐는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즐겁게 노력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