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 484호
  • 기사입력 2022.02.03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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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고재석 유학대학 및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주임교수


흔히 사람을 두고 사회적 존재라고 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살기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직간접적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의 긍정적인 평가나 알아주는 인정은 행동의 중요한 동력이 되곤 한다.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면 기분이 좋아지고 힘도 난다. 남들이 나를 인정해주는 맛에 세상을 산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존재감 없는 자기 모습에 처량한 생각도 들고 서운하면서 화도 난다. 내가 이런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무리하기도 하고, 지나칠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똑같이 돌려주겠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인정받아 나의 존재가 빛날 수 있는 길에 대해 『논어』는 말한다.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고, 자신이 능력 없음을 근심해야 한다.”[不患人之不己知, 患其不能也.] 不患의 患은 근심하다는 뜻이고, 不은 금지를 표시하는 부정사로 ‘~하지 말라[勿]’는 의미이다. 근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人之의 人은 사람의 뜻으로 여기서는 남을 지칭한다. 之는 주어와 술어 사이에 쓰여 주술구조의 문장을 표현하는 주격조사이다. 不己知의 己는 대명사로 자기를 지칭한다. 부정문에서 목적어가 대명사일 경우 동사 앞에 놓일 수 있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풀이한다. 患其不能也의 其는 지시대명사로 여기서는 ‘그 자신’을 지칭한다. 不은 동사의 의미를 부정하는 부정사이고, 能은 능력이 있다는 것을 지칭한다. 不能은 능력 없다[無能]는 의미이다. 也는 판단을 나타내는 어조사로, ‘~이다’의 의미이다.


좋은 학벌과 번듯한 직장은 분명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끄는 조건 가운데 하나이다. 특별한 재능이나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 역시 인정받는다. 많은 돈[富]과 높은 지위[貴]를 지녔다면 어딜 가든 조그만 행동에도 주목받는다. 하지만 나의 존재 가치는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이나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남이 요구하는 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거나, 돈과 권력을 뽐내기 위해 주력하기보다, 시선을 안으로 전환하여 내면을 살필 필요가 있다.


『명심보감』에서는 말한다. “세력으로 사귀는 사람은 가까이 하던 세력이 다하면 관계가 없어지고, 재물로 사귀는 사람은 긴밀하게 여기던 재물이 다하면 관계가 소원해지며, 여색으로 사귀는 사람은 친히 여기던 여색이 쇠해지면 관계가 끊어진다.”[勢交者, 近勢竭而亡, 財交者, 密財盡而疎, 色交者, 親色衰而絶.] 육체적 욕망과 물질적 욕구는 지속적인 만족을 주기 어렵다. 그보다 강력한 것이 나오면 인정의 대상은 옮겨가게 되어 있다. 권세가 약해지고, 재력이 고갈되며, 육체가 노쇠해도 나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 것은 자기답게 살아갈 때 비로소 가능하다. 진정한 인정은 나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인정이어야 한다.


흥미롭게도 『논어』에는 유사한 언급이 중복되어 나온다.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 「里仁」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능력 갖출 것을 걱정해야 한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남이 알아줄 만하게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君子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知也. - 「衛靈公」

군자는 자신의 무능을 걱정하지,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않는다.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 「學而」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논어』는 공자 사후 제자들과 후학들이 기억한 공자와 제자들의 언행을 수집하여 편찬한 책이다. 하나의 주제나 체계를 갖추고 일목요연하게 주장을 펼친 글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 말이 언제 어디서 어떤 맥락 속에서 나온 것인지 알아내기 어렵다. 그럼에도 유사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진정한 인정에 대한 자세가 중요함을 말해준다고 추정할 수 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남의 인정을 갈구하여 하기 싫은 것도 억지로 하며 자신을 학대하거나, 자신을 몰라주는 것에 화를 내기보다, 시선을 거두어들여 스스로를 성찰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하는지. 그리고 나에게 부족한 것을 직시하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지.


물론 남이 나를 알아주는 것은 객관적인 한계가 존재할 수 있다. 자기 모습을 존중하고 자기다움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남들이 몰라주는 경우이다. 지리산 산속에서 대지의 기운을 한껏 받으며 자라나는 소나무는 보는 순간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광화문 대로가에서 매연과 조명 속에서 자라나는 소나무도 지나가는 이들에게 마음의 휴식을 안겨준다. 부단히 노력하여 자기 모습을 꽃피우는 소나무는 모두 감동을 줄 수 있다. 감동의 넓이는 다를 지라도 깊이는 동일하다.


남의 평가나 인정이 나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낼 이유가 없다. 자기다움을 완성하기 위해 부족한 것을 부단히 메워가는 노력이 진정한 인정을 받아 나를 빛나게 하는 길임을 고전 『논어』는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