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의 정의(定意)

  • 421호
  • 기사입력 2019.06.12
  • 편집 연윤서 기자
  • 조회수 5041

글 : 화학공학과 방석호 교수


도로와 골목의 차이에 대해 안다면 설명할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질문 하신 분은 꽤 오랜 기간 운전을 하셨고, 직업상 경험이 뒷받침된 질문일 거란 생각에 쉽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늘 보는 것이고 익숙한 것들이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답을 드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되돌아온 답의 범위가 도로와 골목 자체의 차이나 정의가 아니라 그에 기초한 관점과 행동의 변화에 관한 것이었다.


 교통사고가 나면 사고처리는 관련법에 따라 진행된다. 도로에서 사고가 났다면 당연히 도로와 관련된 법에 따라 처리가 진행될 것이다. 그렇다면 법전상의 도로는 정의가 어찌되는지, 도로가 아닌 것의 정의는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사고 처리를 위한 관련법을 정확히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로에 대해 정립된 개념을 모른다면 늘 도로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발생한 사고 처리가 상식적인 선에서 처리되지 않을 확률이 높고 예상과 다른 결과도 초래할 수 있다.


 실제 사례로 아파트 내 도로에서 사고가 난 경우 도로 교통법을 적용하여 사고 처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으나, 도로 교통법상 해당 지역은 도로 외 지역에 포함되어 음주, 약물과 관련된 사안이 아니라면 속도위반 등의 중과실 상황도 곧바로 도로교통법을 적용하기 어렵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흔히 사용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도로에 대해 정확한 정의와 그에 따른 법들을 확인하고 이해함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안목과 행동습관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위와 같은 사고방식은 도로의 정의를 이해함으로써 운전자나 보행자에게 미치는 영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을 배우거나 연구를 진행하는 태도에도 접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교 전공과목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를 분석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노력한다. 여러 가지 이유 중 공통적인 부분이 배워서, 익혔고, 알고 있기 때문에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실제로는 제시된 문제의 이해부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왜 그런 것일까? 이공계 대학생들이 1학년 때 기초과목으로 이수하는 미분과 적분의 예를 통해 어렴풋이 답을 엿볼 수 있다.


 기초 선수과목으로 배우는 미분과 적분은 계산법을 익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열역학, 유체역학, 고체역학, 동역학과 같은 전공과목에서 핵심 수식들의 표현법으로 다시 등장한다. 안타깝게도 미분과 적분을 배우면서 나눔과 합침의 다양한 관점, 관점에 따른 표현법, 물리학 등으로의 연계, 확장과 같은 부분은 자세히 소개되지 않거나 수식 계산 자체에만 무게를 두어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미분과 적분 방식을 외우고, 예제를 풀기도 했지만, 미분 기호인 Δ, ∂, d, δ 가 각각 가지는 의미와 차이점도, 각 수식에서 다르게 표시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시간을 들여 고민하지 않는다. 그것을 몰라도 예제를 푸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식을 이루는 기호의 정의를 간과한 채 최종 형태의 기호가 조합된 수식만을 외우고, 이를 이용한 풀이만 반복하면 익숙하다, 알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질 뿐 근원적인 이해를 놓쳐서 제시되는 새로운 문제를 이해하는 첫 과정부터 어려워지고 공부한 내용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미분과 적분 기호 하나하나가 왜 특정방식으로 수식에 쓰였는지를 이해하게 되면 기호 조합을 통해 정의된 수식의 수학적, 물리학적 의미를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면 복잡한 수식의 암기와 예제 내의 적용을 벗어나 더 넓은 시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즉 기본을 이루는 대상을 확실히 이해하면 할수록 수식에 숨은 의미와 복잡한 유도 과정의 필요성, 왜 그렇게 유도되는지를 더욱 쉽게 받아들이고 한 차원 높은 문제해결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을 찾아 지혜로 발전시키는 연구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나 배우는 기초 실험기법과 연구배경을 통해 새로운 연구로의 적용, 응용, 나아가 활용 단계로 발전시키는 것은 연구자 누구나 꿈꾸는 단계다. 하지만 기초에 대한 확실하고 충분한 이해가 뒷받침 되지 못한다면 활용 단계로의 진행은 매번 어렵고 고된 일의 반복이 될 수 있다.


 오늘 발표된 이론이 내일 뒤바뀔 수도 있는 연구 분야에서 왜 기초가 그렇게 정립되어 있고, 모든 이들의 배움에서 첫 걸음이 되는가를 생각하면 기초를 이루는 요인들에 대해 하나하나 이해해야함이 당연하고, 방대한 양의 경험과 이론이 숨어있음이 당연함을 알게 된다. 새로운 연구주제를 찾기 위해 응용의 응용, 응용의 활용을 고민하지만, 사실은 기초 요인들의 이해와 이들의 적용에 이미 응용과 활용을 위한 내용이 산재해 있음을 알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융복합 연구가 수없이 이뤄지고 있는 요즘 상황이라면 분야별 기초에 대한 정립이 더욱 확실히 이뤄져야할 필요가 있다.


 잘 그려진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잘 준비된 밑그림이 필요하고, 잘 준비된 밑그림을 위해서는 첫 선을 긋는 연습에 담긴 무게감이 중요하다고 한다. 어려운 문제를 위해 화려한 해결책을 고민하는 것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다시 확인하고, 반복해 익히면서 몸에 베일 때 비단 학문과 연구뿐 아니라 삶을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또한 많이 익숙하니 모두 깨달았다는 식의 위험한 생각을 버리고 기초부터 하나하나 익히는 자세를 항상 경계심을 갖고 유지해야한다.

 

 삶 속에서 무엇을 바라보는 자세가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깨닫고 더욱 익히는 것이라면 참으로 기쁠 수 있는 방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