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으로 읽는 추사 세한도(歲寒圖)

  • 522호
  • 기사입력 2023.09.04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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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추사의 〈세한도〉는 말 그대로 추운 시절의 그림이다. 여기서 추운 시절이란 정적(政敵) 혹은 소인배들에게 배척당해 유배 생활을 한다든지 또는 혼매한 군주나 시대를 잘못 만나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는 고통스런 시련의 계절을 상징한다. 『주역』에서는 총괄적으로 차가운 기운인 음(陰)이 이런 점을 상징한다. 상대적으로 따뜻한 기운인 양(陽)은 희망을 상징한다. 〈세한도〉는 기본적으로 소나무와 잣나무를 통해 시련을 당했지만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군자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이같은 〈세한도〉를 볼 때 주목할 것은 소나무의 깊이 파인 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한도〉’라고 써진 방향[소나무 우측]으로 난 싱싱한 가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런 점을 『주역』을 통해 풀이하고자 한다.


2. 『주역』의 생생(生生)의 이법(理法)을 담고 있는 〈세한도〉


『주역』의 시각에서 봤을 때 〈세한도〉의 분위기는 일단 ‘택수곤괘(澤水困卦)(䷮)’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추사가 귀향 가서 가장 먼저 보내 달라고 한 책이 바로 『주역』일 정도로 추사는 『주역』에 조예가 깊었다. 사실 귀양가거나 은일 지향적 삶을 살 때 자주 보는 책은 『주역』이었다. 권돈인(權敦仁)에게 보낸 편지에 실린 『주역』에 관한 언급을 보자.


“『주역』이란 허물을 고치는 글입니다. 그래서 비록 비괘(否卦)·박괘(剝卦)·곤괘(困卦)·건괘(乾卦) 같은 경우도 원래부터 변통할 수 없는 도리는 없다. 그 때문에 궁하면 통할 수 있고, 죽으면 살아날 수가 있고, 어지러우면 다스려질 수가 있고, 끊어지면 이어질 수가 있어서 일찍이 시운을 어찌할 수 없다거나 기질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데에 맡겨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길이 비괘와 같이 비색(否塞)한 때만 있지 않고 또 태괘(泰卦)와 같이 영원토록 형통(泰)한 때만 있지도 않는 것입니다.”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는 것[一陰一陽]’이 『주역』의 이치이다. 현재의 상황이 비색하고 어렵더라도 형통하고 좋아질 때가 있다. 자연의 이치란 그런 것이고 인간의 삶도 역시 그렇다. ‘택수곤괘’는 못에 물이 없는 것을 상징한다. 양의 강한 효(爻)가 유약한 음의 효(爻)에 가려져 있는 괘다. 의미하는 바는 “정난(靖難)한 속에 있지만 오히려 즐겨 할 줄 알고, 곤란한 지경에 있지만 형통하는 길을 잃지 않는 것은 오직 군자만이 가능하다. 변함이 없이 한결같이 바르게 있으라. 가슴속에 굳은 신념이 있는 큰 인물에게는 길하리라.”라는 것이다. 이같은 ‘택수곤괘’의 ‘대상(大象)’에서는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목숨을 걸고 초지를 관철한다[至命遂志]”라는 것을 말한다.


‘곤’은 곤란(困難), 곤궁(困窮), 곤고(困苦)하다는 의미이다. 큰 입구(入口) 속에 나무 목(木)으로 된 ‘곤’ 자는 나무가 네모난 상자 속에 있는 형상이다. 나무는 넓은 땅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높고 시원스럽게 트인 공간으로 줄기가 오르고 가지가 퍼지면서 아무런 막힘도 없이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래야 집을 받치는 서까래와 기둥이 되고 교목(喬木)도 될 수 있다. ‘택수곤괘’는 이같은 나무가 네모진 상자 안에 갇히어 제대로 자라지 못하면서 곤란에 빠진 것을 의미한다.


‘택수곤괘’를 보면 아래 괘의 한 양효와 위 괘의 두 양효 등 세 개의 양효가 모두 음효에 가로막혀 있다. 이런 것은 바로 선이 악에게 쫓겨나고, 밝고 빛나는 것이 어둡고 침울한 것에 가려지고, 훌륭한 인물이 소인배들에게 박해를 당하는 상태를 상징한다. 이러한 곤경에 빠졌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소인배들에게 굽힐 것인가?


엄동설한이 되어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독야청청한 절개를 알 수 있듯이 사람도 견디기 어려울 만큼 벅찬 시련과 맞부딪쳤을 때 한 인간의 진가는 드러난다. 『주역』은 이 ‘택수곤괘’ 같은 정황에서 “굳게 이를 극복하고, 다시 순탄한 길을 개척하는 일은 군자만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어떠한 곤경 속에서도 빼앗기지 않는 의연한 마음, 의(義)를 지키며 바르게 살고자 하는 마음만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즉 ‘치명수지(政命遂志)’하라는 것이다. 마음만 꿋꿋하다면 외부의 시련이나 고난이 군자의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바른 마음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수양하고, 한때의 시련쯤은 순순히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것에서 즐거워하는 줄 아는 것이 군자의 태도이다. 이런 태도를 정이(程頤)는 “자연의 이치를 즐기고 아는 것[樂天知命]”으로 이해한다. 그런 태도를 견지하고 기다리면 비가 오고 못에 물이 가득 차는 때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3. 시련과 희망이 담긴 ‘소나무’ 형상


동양화에서 ‘시련’을 상징하는 형상을 흔히 사군자로 일컬어지는 식물에 비유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시련을 흔히 거센 풍상을 겪었다고 말하듯, ‘거센 북서풍의 바람과 가을에 내리는 차가운 서리[風霜]’는 이런 점을 대표한다. 이같은 풍상을 겪은 식물들의 형상은 유덕장(柳德章)의 〈통죽도(筒竹圖)〉에서 보듯 대부분 중간 부분이 꺾이거나 잘리고 패인 형상, 나무 속이 심하게 패여 거의 죽을 것 같은 형상, 혹은 탄은(灘隱) 이정(李霆)의 〈풍죽도(風竹圖)〉에서 볼 수 있듯이 오른쪽을 향해 휜 형상- 가을과 겨울바람은 북서풍이기 때문에 휜 형상은 오른쪽을 향해 휘게 된다-이나 혹은 위로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아래로 굽혀진 형상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형상이 상징하는 시련의 경우 상황에 따라 미래에 대한 희망의 기대치는 있다. 예를 들면 정치적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해 유배 간 경우라도 상황에 따라 해배(解配)되고 복관(復官)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기대치마저 없는 가장 힘든 상황은 나라가 망해 생존의 근거가 되는 뿌리를 내릴 수 없는 형상으로 표현된다. 예를 들면 뿌리를 내릴 땅이 없어 ‘뿌리가 드러난 난[露根蘭]’의 형상이 이것을 상징한다.


가지가 부러지거나 속이 패인 경우를 형상화한 것을 인간의 삶에 적용하면, 인간의 몸 한군데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같은 정황의 식물인 경우 상당한 굵기를 가졌지만 다양한 상처를 지닌 채 오랜 세월을 산 식물 형상으로 표현되곤 한다. 구멍이 숭숭 뚫린 태호석(太湖石)으로 상징되는 바위도 마찬가지다. 회화에 표현된 이런 식물이나 바위 등은 자연에 존재하는 식물이나 바위가 아니라 인간세계의 군자를 상징하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작품 속에 표현된 식물이나 바위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인간의 형상을 그대로 투영하면 된다. 즉 형상에 투영한 인간의 몸이 어떤 몸인가를 연상하면 된다. 이런 형상을 인간의 나이로 따지면, 대부분 장년 혹은 노년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인간이 60을 산다고 하면 50 정도 나이를 오랜 세월 다양한 인생 경험을 겪는 장년(壯年) 이후를 의미한다.


나는 〈세한도〉의 소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상대적으로 추사가 매우 찬탄한 이인상(李麟祥)의 〈설송도(雪松圖)〉의 우뚝 솟아 위로 한없이 뻗어가는 소나무를 상기하곤 한다. 추사의 소나무도 이인상의 소나무같이 그런 교목으로 자라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추사는 인생을 멋지게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 소인배들에게 꺾여 버린 것이다. 소나무의 패인 부분은 패인만큼 시련과 좌절, 그리고 아픔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 형상만을 보면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운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완전히 뿌리째 뽑히거나 밑둥까지 완전히 패어 들어간 것은 아니다. 비록 윗부분은 꺾이고 패임을 당하는 좌절과 시련을 겪었지만 태풍이 불어도 꺾이지 않을 만큼 아직까지 굳건하게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거기다 그 나무에 희망을 상징하는 새로운 가지가 자라나고 싹이 돋아나고 있다.


〈세한도〉의 패인 소나무 우측에 그려진 겨울에 새로운 가지에 싹이 난 형상은 『주역』의 ‘지뢰복괘(地雷復卦)’[䷮]를 적용하여 이해할 수 있다. 〈세한도〉 우측의 새로운 가지에 난 싹은 ‘지뢰복괘’의 맨 아래에 있는 하나의 양(陽)을 상징한다. 『주역』에서는 세상에 온통 차가운 기운인 ‘음(陰)[양이 희망을 상징한다면 음은 시련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으로 가득찬 ‘중지곤괘(重地坤卦)’[]를 지나 이제 동지[復卦는 동지를 의미한다]를 맞이한 즈음에 생긴 그 하나의 양에서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天地之心]’을 본다고 한다. 즉 사계절이 순환하는 과정에서 볼 때 곤괘를 거쳐 복괘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자연의 생의(生意)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세한도〉에서 「복괘」의 맨 아래에 있는 ‘하나의 양’을 의미하는 나뭇가지는 생의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난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희망도 함께 담고 있다. 이제 추운 계절이 가고 좋은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 말이다.


이인상의 소나무는 위로 쭉 뻗어나가 무엇에도 꺾인 적이 없는 소나무이다. 추사의 소나무는 이미 한 번 꺾인 소나무이다. 그런 점에서 파란만장한 인생의 곡절을 담고 있는,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소나무이다. 비록 나이가 들어 검버섯이 난 듯한 느낌을 주는 소나무이지만 이인상의 소나무보다 오히려 더욱 정이 가는 소나무이다. 이렇게 『주역』의 시각으로 〈세한도〉를 분석하는 것은 〈세한도〉를 그린 추사의 당시 나이도 고려한 것이다.

소나무 오른쪽 가지 끝에 담긴 새로운 생명에 대한 기대에 담긴 추사의 희망찬 바램은 결국에는 이루어진다.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었던 유배 생활이 거의 9년이 다 되어 갈 때 추사는 절망의 괴로움 속에서 곧 풀려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막내 아우 상희(相喜)에게 보낸 편지에 그런 예감이 담겨 있다.


새해가 되니 바다 생활이 꼭 9년이 되었구나. 가는 것은 굽힘이요 오는 것은 펴는 것이다. 굽히는 것과 피는 것이 서로 감응하는 이치는 어긋나지 않는가 보다. 더구나 지금은 큰 경사가 거듭 이르고 성효(誠孝)가 더욱 빛나서 온 나라 백성들이 기뻐하여 춤을 추고 큰 은택이 사방에 퍼지는 데 있어서랴. 비록 이곳이 험하고 곤궁하게 막히었다고 하나 역시 성상의 덕화가 태양처럼 미치는 데에서 빠지지는 않으리다.


“가는 것은 굽힘이요 오는 것은 펴는 것이다”라는 것은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말로서, 그것은 자연의 상리(常理)이자 『주역』의 기본적인 사고에 해당한다. 추사는 드디어 1818년[헌종 14년] 겨울 12월 6일에 유배 생활에서 풀려나게 된다. 패이고 꺾인 시련을 상징하는 소나무에서 새롭게 뻗친 가지와 솔잎에서 볼 수 있는 희망이 드디어 실현된 것이다.


4. 나오는 말


〈세한도〉에 담긴 이런 점을 알고 나면 자연의 이법과 시련에 좌절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듬뿍 담은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이 〈세한도〉를 본 이상적은 울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추사가 〈세한도〉를 통해 말하고자 한 의미를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한도〉를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세한도〉를 제대로 감상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