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문화예술에 나타난 음주 문화와 광기 (Ⅱ)

  • 476호
  • 기사입력 2021.09.27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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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과 교수


왜 술을 마시는가?


위에서 잠깐 왜 술을 마시는가 하는 것을 잠시 보았는데 이런 점을 역사적 측면에 적용해보자. 중국문화를 보면 그 중에서 흔히 문인들이 술을 마시는 풍속이 성행하게 된 시기는 한말漢末 및 위진시기라고 본다. 정치적 측면과 철학적 측면에서 보면 환관이 득세하고 국가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말의 혼란한 정국과 위진시기 사마씨司馬氏 정권의 폭거 상황에서 한 몸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한 방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은일隱逸 유풍이 일어나고 도가 사상도 지식인의 관심 대상이 된다.


죽림칠현의 술과 관련된 광적인 행동거지는 유의경劉義慶이 쓴 『세설신어世說新語』「임탄」에 주로 나타난다. ‘임탄’이란 유가의 예법주의나 제도에 구애되지 않고 ‘방약무인傍若無人’하면서 제멋대로 허탄한 행동을 일삼는 것을 말한다. 특히 노장사상을 좋아하면서 유가가 지향하는 예법과 명교를 공개적으로 부정하고, 청담淸談과 현담玄談을 즐기면서 ‘유가의 명교를 뛰어넘고 자연에 맡긴다[월명교越名敎, 임자연任自然]’라는 것을 부르짖은 인물들에게서 나타났다. 이른바 ‘마음대로 술을 마시고 즐겁게 놀았던’ 혜강嵇康, 완적阮籍 등의 죽림칠현이 그들이다.


특히 완적은 술을 지나치게 마시고 자유분방하게 행동했는데 그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완적이 통음한 것은 첫째로 술을 통해 자기의 정신을 마비시켜서 가슴속에 있는 고뇌를 벗어버리고자 한 행동이다. 둘째는 정치적 상황으로 보면 사마씨司馬氏의 박해를 피하기 위한 보신책을 모색한 것이다. 세 번째는 예교 차원으로 보면, 자기의 감정을 발출해내어 허위의식에 가득 찬 명교를 극도로 혐오하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위진 죽림칠현들이 행한 술을 통한 광적인 행동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쾌락적이고 환락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광적인 행동거지를 통해 허례허식에 치우친 ‘예법’과 ‘명교’에서 벗어나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않고 자연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루신魯迅은 역설적으로 혜강이나 완적 등 위진시대의 유가 예교의 파괴자들은 사실 예교를 믿어 완고함의 극치에 이른 이들이었다는 것을 말한 적이 있다.


술은 인생의 근심과 걱정거리를 잊어버리게 하는 역할을 했다. 조조曹操는 「단가행短歌行」에서 인간의 온갖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두강杜康[=술]’뿐이라 읊는다. 술을 무척 좋아했던 도연명은 “술은 근심거리를 잊게 해준다[망우물忘憂物]”라 여기고, 아울러 술을 좋아하고 술만 마시면 반드시 취하는 ‘오류선생五柳先生’을 통해 자신의 은일지향과 탈속적 삶을 비유적으로 읊은 적이 있다.


전선, <부취도扶醉图>, 견본설색绢本設色, 28.9×49.5㎝, 미국 개인소장.

전선錢選이 도연명의 취한 모습을 그린 것이다. 도연명이 죽탑竹榻에 기대 앉은 상태에서 “내가 취하여 자고 싶으니, 객들은 알아서 가시오[貴賤造之者有醉輒設. 若先醉, 便語客, 我醉欲眠君且去]”라고 한 화제가 그런 점을 말해준다. 도연명이 손짓으로 그런 자세를 보인다. 국자로 퍼마신 술통이 세 개나 뒹굴고 있는데, 도연명이 대부분을 마신 듯 같다. 이런 도연명을 바라보는 멀쩡한 한 인물은 두 손을 들어 국궁鞠躬한 자세로 도연명을 보고 이제 그만 간다는 예를 행하고 있다.



술 먹는 것을 찬미하는 문화에는 술을 통해 지향하고자 하는 삶이 담겨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양수歐陽修는 「취옹정기醉翁亭記」에서 “술 취한 노인(취옹[= 구양수 자신이다.])의 뜻은 술에 있지 않고 산수 간에 있다. 산수의 즐거움은 마음에서 얻고 술에 기탁하는 것이다”라고 읊어 술을 산수자연과 함께 하는 즐거운 삶을 기탁하기 위한 도구로 여기고 있다. 이밖에 봉건사회에서 입신양명의 상징인 관료적 삶을 벗어나 대낮부터 야외에서 술을 마시다 잠깐 잠에 빠져든 은일자의 삶을 대변하는 것도 술이었다.


예술차원에서 볼 때, 술은 이성에 억눌린 진정한 감성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게 하고,  천인합일 경지를 가능하게 하는 효용성도 있다. 이런 점에서 술은 철학적이면서 문화적인 음료로 여겨졌다.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은 술을 마시고 예술창작에 임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문예사를 보면 예술창작에서 우연성을 강조하면서 흥취어린 작품에 임했던 인물들 가운데 대취한 이후에 뛰어난 예술창작물을 남긴 예가 많았다. 취음醉吟을 통한 광기어린 예술창작은 회화와 서예 두분야 모두에 적용된다. 붓놀림의 자유로움을 통해 진정어린 예술성을 담아낼 것을 강조하는 서예의 경우는 더욱 그런 점이 강하게 나타났다.


흔히 서예가들은 ‘필력筆力은 주력酒力’이란 농담을 하곤 한다. 특히 서화에서 술을 강조하는 것은, 붓이란 도구의 자유로운 놀림과 관련된 기교 운용적 측면도 작용했다. 예술가에게 술은 이성에 의해 제한된 인간의 감성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고 예술의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이 있었다. 특히 초서의 경우 일필휘지를 통해 기의 흐름에 생명성을 제대로 표현했을 때 기운이 생동한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술이 한 몫 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나타난 탈이성정신, 해방감, 원초적 생명력, 과감성, 과격함은 특히 서화분야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다.


통음의 문예미학적 의미


죽림칠현을 비롯한 위진명사들이 자신들의 희노애락을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타인의 눈에 보이는 자신에 대한 평가에 신경 쓰지 않는 행위, 유가의 예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행위, 때론 나체로 자신의 몸매를 드러낸 행위 등과 같은 광탄狂誕한 행동거지와 사유의 기저에는 광기가 깔려 있었다. 그 광기가 예술차원에서는 통음을 빙자해 드러났다는 점에서 중국문화에서의 통음이 갖는 철학적, 윤리적, 예술론적인 의미가 있다.


동양문인들의 통음 문화와 관련하여 먼저 주목할 것은 대취大醉 혹은 통음을 강조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인물’이 술을 먹고 취했느냐는 것이다. 찬미의 대상이 된 것은 도연명이나 혜강처럼 높은 학식과 예술성 및 인품이 동시에 수반되었을 때이다. 이처럼 서양 같았으면 알콜 중독자로 여겨질 만한 대취, 통음에 대해 동양문화에서는 인물에 따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술과 관련된 호를 취하거나 혹은 술을 먹고 대취한 상태에서 예술창작에 임하는 통음문화가 갖는 의미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이백 같이 술이 매우 좋아하면서 그 술을 먹고 이성에 의해 얽매인 인위적 마음을 해체하고 자신의 심성을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술을 마시는 경우다. 서예가로 말하면 광초狂草로 유명한 회소懷素와 장욱張旭은 이런 점을 대표한다.


회소, <자서첩自敍帖>  부분.

釋文 : “錢起詩云, 遠錫無前侶, 孤西寄太虛, 狂來輕世界, 醉裏得真如. 皆辭旨激切”

회소懷素가 전기錢起의 시어 중 자신의 광초狂草 서풍에 가장 어울리는 문구인 “미친 듯 세계를 가볍게 여기고, 취한 가운데 진여[진리]를 얻는다[狂來輕世界, 醉裏得真如]”라는 것을 일필휘지의 거침없는 필획으로 표현하고 있다. 네 번째 줄에 쓴 ‘狂來輕世界’에서 ‘來’자를 유달리 크게 써서 ‘래’자가 갖는 의미를 잘 살리고 있다.



둘째는 죽림칠현의 행태에서 보듯, 술을 먹고 유가의 예법에 얽매이는 삶에서 벗어나 광탄한 몸짓을 하거나 도연명처럼 세속적인 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맑고 깨끗한 삶을 사는 경우다. 셋째는 자신이 품은 뜻을 제대로 실현할 수 없는 회재불우懷才不遇의 현실적 상황에서 자신이 처한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 술을 먹고 낮잠을 자거나 은일적 삶을 지향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 대개 대낮인데도 취하여 잠을 잘 수밖에 없는 현실을 ‘취면醉眠’과 같은 시어로 표현하곤 한다. 마지막으로 위진시대 완적阮籍이나 도연명같은 인생을 달관한 인물이라도 생사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에 부득이하게 술에 기탁했다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경윤, 「수하취면도樹下醉眠圖」 31.2 x 24.9 ㎝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이경윤李慶胤이 술에 잔뜩 취해 나무 그늘 아래 바위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깜빡 낮잠을 즐기고 있는 인물을 그린 것인데, 훤칠한 관상이나 부귀를 상징하는 불룩 나온 배 등 인물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 이전에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로 보인다. 이런 인물이 왜 대낮부터 이렇게 술을 먹고, 혹은 먹을 수밖에 없는지를 궁금하게 여겨야 한다.


공자의 술마시는 것과 관련해 『논어』「향당鄕黨」에 나오는 “술 마시는 양이 정해진 것은 없지만, 어지럽게 흐트러지는 지경에 이르도록 마시지 않았다”라는 공자의 말은 유명하다. 『예기』「향음주의鄕飮酒義」에서 말하듯 유가가 긍정한 음주 행태는 상대방에 대한 존경, 신분의 존비와 고하의 차별화에 맞는 예법 및 상호간의 조화로움을 꾀하는 음주로서, 기본적으로 절제됨을 강조한다. 하지만 광기어린 삶과 예술세계를 펼치고자 했던 인물들은 절제된 음주문화를 거부하고 통음을 일삼곤 했다. 유가식의 절제를 강조하는 음주문화를 거부하고 통음을 통한 광기어린 삶에는 문예 차원에서 진정성과 창신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유가 담겨 있고, 더 나아가 예술창작에서 도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문화를 보면 위대한 예술가들은 통음을 통해 이성에 의해 제어되고 경직된 마음을 해체하고 광기어린 무위자연의 일격逸格 경지를 표현하고자 했는데, 이런 점은 특히 노장 사유에 훈도薰陶된 서화예술가에서 뚜렷하게 나타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문인사대부들이 이끌어온 동양문화와 예술의 속살을 이해하려면 통음으로 상징되는 음주문화에 담긴 탈이성적 삶, 탈예법적 삶, 은일적 삶, 현실에 대한 비판 등을 통해 지향한 사유 및 광기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