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도래에 따른 풍수·명리 철학화 단상 (Ⅰ)

  • 485호
  • 기사입력 2022.02.15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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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에서 고을을 다스릴 때 물리쳐야 할 부류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풍수(風水), 두수(斗數), 간상(看相), 추명(推命), 복서(卜筮), 파자(破字) 등 가지가지 요괴(妖怪)하고 허탄(虛誕)한 술책을 가진 자가 수령과 인연을 맺어, 작게는 정사를 문란하게 하고 크게는 화를 취하게 되니 천리 밖으로 물리쳐서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선거철은 바로 명리학의 계절’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게 최근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자부하는 한국사회의 정치판에 무속 관련 인물의 모 정당의 선거대책위원회 참여를 비롯하여 명리 및 관상 차원의 대통령 후보 인물평이 심심찮게 등장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바야흐로 4차산업 혁명시대 진입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사이비 주술 정치 노름에 나라가 위태롭게 될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실제로 고려 신돈(辛旽)의 행태를 비롯하여 무속인의 정책 결정이 국가 안위 자체가 문제가 있었던 것을 동서양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 과거 조선조에서도 허탄하여 믿을 만한 것이 없다고 말해진 천장(遷葬) 등과 관련된 사회 유력인사들의 행태가 뉴스에 심심찮게 매스컴에 등장하곤 한다.


정약용이 지방관이 목민하는데 배척해야 할 것으로 풍수, 두수, 간상, 추명, 복서, 파자 등의 해악을 거론하는 것에는 풍수명리를 비롯한 기타의 것들이 갖는 긍정적 측면이 있음을 무시한 편향된 시각이 없지 않다. 하지만 정약용이 그런 주장을 한 것에 나름 이유가 있다고 여긴다면, 오늘날에는 풍수명리가 혹세무민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 학문적으로 제대로 그 기능을 발휘할 방안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최근 알파고가 등장한 이후 다양한 분야에 AI가 활약하고 있다. 의료 분야는 물론 인간의 창의성이 요구되는 예술분야까지 넘보고 있다. 이런 정황에서 조만간 도래할지도 모르는 AI풍수가와 AI명리가는 인간풍수가와 인간명리가를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 고려 제31대 공민왕의 실세였던 신돈.


공민왕이 “스승이 나를 구하고 내가 스승을 구하여 어떤 일이 있어도 남의 말을 듣고 의혹을 품지 않을 것이니, 오늘의 이 맹세는 불천이 증명하리라.”라고 하면서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자 신돈은 국정을 전횡하게 된다. 신돈에 대해 개혁정치가라는 평가도 있다.



점과 주술 등에 의존했다가 나라를 망하게 하거나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 경우가 역사에 많이 존재한다. 살아있는 미륵으로 자처하면서 관심법에 의존한 ‘궁예’, 모든 일을 점을 쳐 결정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연산군’을 비롯하여 제정 러시아를 멸망케 한 니콜라이 2세의 측근인 요승(妖僧) ‘라스푸틴(Grigory E. Rasputin)’, 주술주의자 함러와 함께 광신적 사상에 매몰된 결과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홀로코스트 만행을 저지른 ‘히틀러’ 등이 그들이다.

2. ‘입상이진의(立象以盡意)’ 사유와 풍수명리의 철학화


먼저 풍수명리는 어떤 사유의 결과물인지에 대한 것을 철학 측면에서 규명해보자. 동양철학에서의 우주자연의 변화 및 이법(理法)과 관련된 인식과 해석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도가에서 주로 말하는 ‘말은 뜻을 다 표현할 수 없다’는 ‘언부진의(言不盡意)’ 사유고, 다른 하나는 유가에서 주로 ‘말하는 상을 세워 뜻을 다한다’는 ‘입상이진의(立象以盡意)’ 사유다.


『노자』 1장에서 “도를 말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자연의 항상됨을 담아낼 수 있는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자연의 항상됨을 담아낼 수 있는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라는 것은 ‘언부진의’ 사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자』 41장에서는 “큰 형상은 형이 없다, 도는 숨어서 이름이 없다[大象無形, 道隱無名]”라고 하여 도를 형상화하고 언어화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왕필(王弼)은 『노자』 1장에 대해, “말로 할 수 있는 도[可道之道]와 이름할 수 있는 이름[可名之名]은 일을 가리키는 것[指事]이고 형태로 만든 것[造形]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항상됨을 의미하는 상도와 상명은) 말할 수 없고 이름할 수 없다”라고 주석한다. ‘가도지도’와 ‘가명지명’을 의미하는 ‘지사’와 ‘조형’은 모두 인간의 의지와 해석이 가미된 인위의 결과물로서, 이같은 취상비류(取象比流) 차원의 사물과 현상 인식은 일정 정도 ‘입상이진의’와 관련이 있다.


언어가 제아무리 불완전한 존재라 해도 인간은 언어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는 점에서 볼 때 노자의 ‘언부진의’ 사유가 갖는 문제점은 세계 인식의 제한됨이다. 인간은 언어문자를 통해 자신이 체인(體認)한 세계를 기술하고 의사소통하고 사물을 이해하면서 지식을 전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간파한 공자는 ‘언(言)’과 ‘의(意)’의 간극을 ‘상(象)’을 통해 정리한다.


공자가 말하길, 글로는 말을 다할 수 없으며, 말로는 뜻을 다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성인의 뜻을 볼 수 없다는 것인가. (공자가 말하길,) 성인이 상을 세워서 뜻을 다하며, 괘를 베풀어서 참되고 거짓됨을 다하며, 풀이하는 말을 달아 그 말을 한다.


공자의 이런 사유에 대해 구양건(歐陽建)은 「언진의론(言盡意論)」에서 언어에 대한 사유를 “고금에 이름을 바로잡으려 힘쓰고, 성현이 말을 능히 떠나지 못한 것은 그 까닭이 무엇인가? 진실로 이치를 마음에서 얻어도 말이 아니면 펼 수가 없고, 사물을 말에 고정시켜도 이름이 아니면 구분할 수 없다.”라고 총체적으로 정리한다. 이황은 「진성학십도차」(進聖學十圖箚)에서 “도에는 형상이 없고 천은 언어가 없다.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나오면서부터 성인이 그것을 근거로 하여 괘(卦)와 효(爻)를 만드니, 도가 비로소 천하에 나타났다.” 라고 하여 괘와 효를 통해 무형상의 도와 무언어의 천의 본질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구양건이나 이황의 견해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여전히 언, 의, 상의 관계에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주희가 “말이 전하는 것은 얕고, 상이 보여주는 것은 깊다”라고 하듯이 언과 상에는 층차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왕필은 ‘상을 얻으면 그 상을 표현하고자 한 도구인 언어를 잊고, 뜻을 얻으면 그 뜻을 전달하고자 한 도구인 상을 잊어라[得象忘言, 得意忘象]’라는 사유를 통해 정리한다.


이상 본 바와 같은 언, 상, 의의 관계에서 우리가 세계를 인식할 때 ‘언부진의’ 사유와 ‘입상이진의’ 사유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떤 것을 취하느냐에 따라 이해의 정도가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그럼 이런 점을 풍수와 명리에 적용해보자. 풍수와 명리는 기본적으로 음양오행을 근간으로 한다. 이같은 음양오행은 노자가 말하는 무형무상(無形無狀)이면서 황홀한 도 혹은 무성무취(無聲無臭)인 형이상의 리(理), 태극 등이 현상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즉 풍수명리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음양론, 팔괘, 오행은 모두 ‘입상이진의’의 결과물이다. 당대와 송대 사이에 틀을 갖춘 팔자명리학이 현재 두시간의 간격을 ‘하나의 시진(時辰)’으로 보고서 팔자의 구조에 위치를 정해 놓은 것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공자 같은 성인이 ‘입상이진의’한 결과가 100%의 정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다시 해석하는 것은 인간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주역』에서는 이미 “한번은 음하게 하고, 한번은 양하게 한다[一陰一陽之謂道]”라는 것에 대해 “인자한 자는 이를 보고 인이라 이르고, 지혜로운 자는 이를 보고 지라고 이른다”라고 하여 이미 동일한 원리에 대해 해석의 다양성을 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풍수명리에서는 어떻게 확률을 높이고 오류를 최소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대 명리학자인 양상윤(梁湘潤)이 “과거 명리대가들은 명리가 본래 100%의 정확성이 없음을 알았다고 생각한다...명리는 대략 60~70%의 확률만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라는 진단은 이런 점을 더욱 부추긴다.


이런 정황에서 풍수명리에서도 일단 빅데이터 운용 및 과학기술을 운용한 매체를 통한 확률 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런 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입상이진의’한 것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일 것이다. ‘언부진의’를 인정하지만 방편적으로 성인이 세계 이해를 위해 취한 ‘입상이진의’ 사유에서 요구되는 것은 ‘상’이 갖는 의미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다. ‘상’에 대한 의미 해석의 정확성은 우주자연의 생기와 이법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인간세계의 다양한 삶에 대한 해석 여부와 관련이 있다. 이런 점에서 ‘상’이 갖는 의미를 해석하는 풍수가와 명리가의 개인적 자질과 능력을 제고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