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래산에서 신선처럼 살아 볼까나? Ⅰ

  • 487호
  • 기사입력 2022.03.14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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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과 교수

1.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역동(易東)이란 호가 암시하듯이 뛰어난 역학자였던 우탁(禹倬)의 이른바 ‘늙음이 오는 것을 한탄한 시조[嘆老歌]’다.


춘산(春山)에 눈 녹인 바람 건듯 불고 간 데 없다

적은 듯 빌어다가 머리 위에 불리고저

귀밑에 해묵은 서리를 녹여볼까 하노라


봄 동산에 쌓였던 눈을 녹이고 파릇파릇한 새싹을 돋게 한 청춘을 상징하는 바람이 문득 불고 어디론지 간 곳 없다. 막대로 쳐서 오지 못하는 인간의 행위를 비웃듯이 지름길로 오는 백발을 어이할꼬? 신계영(辛啓榮)이 쓴 또 다른 「탄로가」를 보자.


사람이 늙은 후에 거울이 원수로다

마음이 젊었으니 옛 얼굴만 여겼더니

센 머리 씽건 양자 보니 다 죽어만 하아랴


이제 머리에는 백설이 내리고, 얼굴에는 검버섯이 피고, 뼈마디에 찬바람이 솔솔 들어오고, 피부는 쭈굴거리고, 허리는 꾸부정해지고, 이마에는 주름살이 계곡을 이루어가는 시점에서, 춘산에 불었던 봄바람을 머리 위에 잠시나마 불게 하여 귀밑 여러 해 묶은 서리[백발]을 다시 검은 머리가 되게 녹여볼까 하는 바람이 절실하게 와 닫는 시점에서 거울조차 보기가 두렵다. 마음은 젊어 젊은 시절 팽팽한 얼굴을 기대했건만 정작 거울을 보니 하얗게 센 머리의 늙은 자신의 모습만 보인다. 마음만 젊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남의 시선을 통해 평가받는 삶을 살아야 하는 정황에서 그렇다고 거울을 보지 않을 수 없다. 백발 해결하는 임시방편으로 오늘날에는 머리염색약이 있어 그래도 다행이다. 그런데 그것도 잠깐이다.


당연히 나이 들어가는 것이 두렵지만 더 두려운 것은 생명의 종말 즉 죽음 아닐까? 청춘 그대로의 삶을 살면서 죽음을 피하는 방법은 없을까?


2.

최근 피부 위에 바르면 얇고 투명한 막이 생기면서 주름진 피부를 단 몇 분만에 팽팽하게 펴주는 이른바 제 2의 피부로 일컬어지는 '인공 물질'이 미국에서 개발되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하루종일 효과가 지속되고, 그 촉감도 사람 피부와 아주 비슷하다고 하니 주름진 피부 때문에 거울 보기가 겁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의료기술이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과거 몇몇 뛰어난 인물들이 추구한 신선되기가 허황된 꿈이 아닌 실현 가능한 것으로 변하고 있다. 오래된 장기를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대체 장기’는 그 한 예에 해당한다. 오늘날 의료기술로 치유하지 못하는 병에 걸린 환자가 냉동인간이 되어 미래의 소생 가능성을 엿보기까지 하고 있다. 불로장생의 꿈을 일정 정도 실현해줄 수 있는 이런 의료기술의 발달은 ‘의료적 차원에서의 신선 가능성’을 실현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문제점도 없지 않다. 피상적으로 말하면, 일단 막대한 돈이 든다는 점에서 우선 돈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별적 측면이다. 쌓아놓은 돈 없으면 ‘의료적 차원의 신선’이 되는 것은 ‘그림의 떡’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동양에서는 이처럼 돈을 들지 않고서도 신선이 되는 방법이 있다고 말하여 귀를 솔깃하게 한다. 돈이 무척 많이 드는 의료적 차원의 신선이 아니라 관련된 필요한 책을 어느 정도만 사서 열심히 공부하고 수양하면 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인간은 후천적 배움을 통하여 신선이 될 수 있다[신선가학이성(神仙可學而成)]”라는 것이 그것이다.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하여 돋보기를 쓰고, 오래 앉아 책을 보면 좀이 쑤시고 허리가 아픈 것은 그래도 참을 수 있다. 불로장생하는 신선되는 공부인데 하고 말이야.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신선이 된다는 이론이 매우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다. 신선되는 공부가 쉬운 것이었다면 인류 역사에 수없이 많은 신선이 있었을 텐데, 그런 신선이 주위에 거의 없는 것을 보면 공부를 통해 신선되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 텍스트도 한글이 아닌 한문으로 되어 있을 것 같은데, 얼굴에 세월의 훈장인 주름살이 있는 시점에서 한문으로 된 원전 공부를 다시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아, 10년 전에만 이런 것을 알았더라도 한번 시도해 볼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1992년에 제작한, 우리나라에서는 ‘죽어야 사는 여자[(Death Becomes Her]’라는 제목으로 상영된 영화가 있었다. ‘다이하드’ 시리즈로 유명한 빡빡이 ‘브루스 윌리스’가 성형외과 의사인 어니스트 멘빌 역을 맡고, ‘골디 혼’이 그의 약혼녀인 헬렌 샤프 역을, 여배우인 ‘메릴스트립’이 품격이 떨어진 유명 뮤지컬 스타인 매들린 애쉬턴 역을 맡은 판타지 코미디물이다.


외모 중시에 빠져 ‘영원히 산다’는 묘약을 마신 ‘메릴스트립’은 죽음과 관련된 어떤 상황에서도 죽지 않는다. 계단에서 굴러 머리가 돌아가도, 총을 맞아 구멍이 뻥 뚫려도 죽지 않는다. 이처럼 절대 늙지 않고 오히려 더 탱탱하게 회춘한다는 묘약을 마신 ‘메릴스트립’, 그런데 그 죽지 않는 것이 도리어 불행이다. 그 불행에서 벗어나려면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는다. 이것을 어찌할꼬? ‘브루스 윌리스’는 영원히 살면 그것이 도리어 불행일 것이라고 여기고 자연스런 죽음을 선택한다. 자세한 것은 영화를 보시길.


만약 인간 누구나가 불로장생의 신선이 된다면 어떤 문제점이 발생할까? 이런 질문은 크게 보면, 인류 미래의 가장 큰 재앙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과도 연결된다. 인류의 재앙과 관련된 것에는 핵전쟁, 종교적 갈등, 문화적 충동 등 다양한 측면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한정된 지구라는 공간에 인간이 많아지는 인구과잉이다. 인구의 과잉 증대로 인해 자연생태계 파괴, 환경오염은 이미 수없이 지적된 바이다. 인간의 수명연장은 이런 인구과잉 증대에 단단히 한몫을 한다. 물론 인간 증대와 관련해 나타나는 생태계 파괴, 식량문제 등등의 모든 문제를 과학기술이 다 해결할 수 있다는 과학만능주의도 있지만, 그것은 제한적인 점이 많다.


3.

나이 들어감, 죽음 등과 같은 것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불로장생의 신선이 되는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학을 타고 피리를 부는 신선, 용과 봉황을 타고 하늘을 나는 선인 등이 그려지는 등 신선 사상은 고대로부터 한국인의 의식구조의 내면에 침전되어 면면히 흘러왔고, 다양한 문화현상에 혼재되어 나타났다. 금강산은 사계절마다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봄 금강산, 여름 봉래산, 가을 풍악산, 겨울 개골산이 바로 그것이다. 이 가운데 여름 금강산에 해당하는 봉래산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교의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蓬來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 중 하나에 속한다.


신선!


민태원은 「청춘예찬」에서 청춘이란 말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불로장생하는 ‘신선’도 그 못지않게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어다. 문제는 신선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그 가능성인데, 실망할 필요가 없다. 동양에서는 예전부터 신선되는 것을 꿈꾸었고, 그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유학자들이 합리성과 이성을 통해 ‘우화등선(羽化登仙)’을 비롯한 황금 만드는 연단술 같은 것은 말도 안된다고 일축하지만,『연금술사』를 써 자아의 신화를 찾을 것을 말한 파울로 코엘료를 비롯한 많은 소설가들이 자신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우리들에게 많은 감동과 교훈을 주고 있기도 한다.


갈홍(葛洪:284∼364. 東晉 시대의 道士)은 포박자(抱朴子) 「내편(內篇)」에서 연금술(鍊金術)을 통한 신선되기와 더불어 “인간은 후천적 배움을 통하여 신선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하였다. 모든 인간이 신선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는 기질적인 차이를 거론하는 견해도 있었지만, 여하튼 신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희망적이다. 도교에서는 이런 점에서 ‘정신(性)’과 ‘육체(命)’를 아울러 수련해야 한다는 성명쌍수론(性命雙修論)을 주장한다.


물론 합리성과 이성을 추구한 유학자들은 이처럼 불로장생의 신선이 된다는 것에 대해 ‘저거 뻥치고 있네, 미친 인간 아냐’ 하는 말로 그들의 주장을 허황되고 현실 불가능한 것이라고 일축하곤 하였다.


                                                                      ▲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Death Becomes Her)〉 포스터
                                                                          계단에서 굴러 고개가 뒤로 돌아가도 죽지 않고, 엽총을 맞아 가슴이 뻥 뚫려도 죽지 않는다.
주제는 '얼마나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로, 이 영화는 영생의 약을 통해 불로불사를 꿈꾸면서 영원한 젊음에 대한 탐욕이 부른 엽기적 비극을 희화하고 있다.


                                            ▲ 왕몽(王蒙), 〈갈치천이거도(葛穉川移居圖)〉, 古宮博物館, 139cm ×58cm 


갈홍(葛洪)[=葛穉川]이 사슴을 끌고 가다가 뒤를 바라보면서 뒤따라오는 부인을 비롯한 가솔들에게 왜 빨리 안 와 하는 식으로 재촉하고 있다. 갈홍은 식솔들을 데리고 나부산(羅浮山)에 들어가 연금술을 완성하고자 한다. 저 멀리 산 중에 풍수적으로 명당 자리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