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래산에서 신선처럼 살아 볼까나?Ⅱ

  • 488호
  • 기사입력 2022.03.31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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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선 존재 부정과 불로장생 비판


황현(黃玹, 1855~1910)은 『매천집(梅泉集)』 제6권 「왕소금수서(王素琴壽序)」에서 신선의 존재 유무 및 유학자들이 추구한 신선의 즐거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압축적으로 정리한다.


신선의 유무는 어디에서 결정되는가? 그대는 잠시 그 유무를 말하지 말라. 가령 진짜 있다 해도 나는 그게 하잘 것이 없다 장담할 수 있다. 어째서 이렇게 말하는가? ‘오래 사는 것’을 신선이라 하는데, 오래 사는 데에 중요한 것은 예전처럼 처자식과 잘 지내고 예전처럼 봉양을 잘 받으며, 예전처럼 친구와 잘 지내면서 내 육신을 지탱하고 내 욕구를 발산하는 데 있다. 그래야 ‘오래 사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황현이 신선의 존재 유무에 대해 언급한 간단한 글은 중국철학사에서 논의된 것을 압축적으로 정리한 것에 해당한다. 황현이 신선의 존재 유무를 잠시 말하지 말라는 것은 그 존재 유무는 유학자들의 관심사가 아닌 점도 있지만 입증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유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오래 사는 신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강조하는 것은 ‘신선처럼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는 것’이다. 그 신선처럼 사는 것의 핵심 중의 하나는 자신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가이다. 이같은 인간의 현실적 삶을 벗어나지 않고 관계 지향적인 삶과 욕망 표출을 통한 즐거움을 누리면서 신선처럼 살고자 하는 것은 도교 차원에서 말하는 ‘홀로[獨]’ 궁벽한 자연공간에서 불로장생을 추구하면서 사는 신선의 삶과 차별화된 사유에 속한다.

조선조 과거 시험인 책문(策問)에서도 신선의 존재 유무와 불로장생과 관련된 논의가 출제된 적이 있다. 이런 점을 이이(李珥)가 ‘신선에 대한 책문[神仙策]’에 대해 행한 답을 통해 살펴보자. 먼저 「신선책」의 질문 요지를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책문: 불로장생하면서 영구히 천지의 변화를 지켜본 이는 몇 사람이나 있는가. 그것을 낱낱이 지적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웅경(熊經)과 조신(鳥伸), 후허(喣噓)와 호흡(呼吸), 옥례(玉醴)와 금장(金漿), 교리(交梨)와 화조(火棗)가 과연 선태(蟬蛻)와 우화(羽化)의 도리에 보탬이 있는가. 삼청진인(三淸眞人)의 여덟가지 행선(行仙)법을 낱낱이 열거하여 다 셀 수 있겠는가. 정신을 편안히 하고 성품을 기르며 목숨을 연장하는데 어찌 다른 방법이 없겠는가.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음은 주야의 필연적인 것과 같고, 리(理)와 수(數)의 당연한 귀결이라 여기서 스스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인가?


이이는 책문에 대한 답에서 일단 천지의 이치는 기본적으로 ‘실리(實理)’라는 입장에서 신선의 존재를 부정하고 아울러 신설술과 관련된 일체의 것을 부정한다.


천지의 이치는 실리일 뿐이다. 사람과 만물의 생성함은 실리에 의하지 않음이 없으니, 실리 이외의 설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깨닫는 군자의 믿을 만한 바가 아니다...만약 불로장생하면서 영구히 천지의 변화를 실제로 지켜본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면 정도에 어긋난 서적과 근거가 없는 학설을 모두 다 믿을 수가 있겠는가? 이른바 정호에서 단정이 이루어지고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은 필시 후세의 우괴(迂怪)한 선비가 그 사술(邪術)을 펼치고자 하여 황제를 칭탁한 것이니, 천하의 이치로 볼 때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실리를 통해 신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유가가 제시하는 전형적인 신선관이다. 그렇다면 생사는 어떤 근거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가? 이이는 이런 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기의 취산(聚散)과 관련된 논의를 통해 불로장생의 신선 존재를 부정한다.


아! 낮과 밤은 죽음과 삶의 도리입니다. 낮이 있으면 반드시 밤이 있고 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의 삶이란 기가 모인 것이요 그 죽음이란 기가 흩어진 것이다. 자연적으로 모이고 자연적으로 흩어지는 것이니, 어찌 그 사이에 인위적인 힘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태경과 조신, 호흡과 후허는 반드시 그런 도리가 없어도 수명을 연장할 수 있고, 옥례와 금장, 교리와 화조는 반드시 그런 사물이 없어도 죽음을 면할 수 있다. 어찌 선태와 우화의 도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이는 결국 죽고 사는 것의 문제는 하늘에 달려 있을 뿐이지 인간이 관여할 영역이 아니라는 ‘인명재천(人命在天)’ 사유를 강조한다. 인위적 차원에서 행하는 도교의 다양한 수련법을 통하지 않고서도 수명연장이나 죽음을 면할 수 있다고 하면서 기의 취산을 거론하는 것은 장자(莊子)가 기의 취산에 의한 생멸을 강조하는 것과 일정 정도 통한다. 차이는 장자는 기의 취산을 통해 우주자연의 변화를 설명하지만 유가는 그런 기의 취산 이외의 리(理)의 세계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이는 결론적으로 모든 자연 현상과 변화가 천지의 실리 아닌 것이 없다는 입장에서 유가의 도기법(導氣法)을 제시하고 도교에서 행하는 양생법을 부정한다.


대저 하는 바가 있어 인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인간이요, 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은 하늘이다...죽고 사는 문제에 이르러서는 하늘에 달려 있을 뿐이다. 우리 인간이 거기에 무슨 관여할 바가 있겠는가. 천지가 영원히 봄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사시가 차례를 바꾸고, 육기(六氣)가 혼자서만 운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음양이 가지런히 유행하는 것이다. 해가 가면 달이 오고,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며 왕성함이 있으면 쇠퇴함이 있고,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은 모두가 천지의 실리 아닌 것이 없다. 하늘에서 기운을 받고 땅에서 형체를 받아 이 이치의 범주 안에 들어 있으면서 리수(理數)의 밖으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어찌 잘못된 판단이 아니겠는가.


혈기의 보양(保養)과 수양론 차원의 유가 도기법을 통한 도교 양생법에 대한 비판은 유가가 지향하는 몸건강 철학의 핵심에 해당한다. “하늘에서 기운을 받고 땅에서 형체를 받아 이 이치의 범주 안에 들어 있으면서 ‘리수’의 밖으로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이 어찌 잘못된 판단이 아니겠는가”라는 발언은 기 아닌 리를 통한 총체적인 세계판단을 제시한 것은 노장과 구별되는 우주론이다. 결론적으로 이이는 천지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는 사유를 제시하면서 유가 차원의 장생불사에 대한 견해를 밝혀 단명과 장수로 그 생사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이가 모든 자연 현상과 변화가 천지의 실리 아닌 것이 없다는 입장에서 출발하여 신선의 존재 유무 및 도교의 장생, 양생과 관련된 것을 부정하는 이같은 견해는 유학자의 신선관의 기본에 속한다. 그런데 이이는 신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신선술과 관련된 장생불사 등은 기본적으로 부정하지만 현실에서 신선처럼 사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선과 관련하여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것은 신선처럼 사는 것은 구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가 성인의 입명(立命)과 도가에서 신선되기를 통해 투생(偸生)하는 것의 차이점의 핵심은 바로 천도의 항상됨을 따르는 이른바 순리적 삶이다. 이이가 「신선책」에서 행한 신선술에 대한 비판은 유학자들에게는 공통적인 것에 해당한다.


4.

늦게나마 신선이 되고자 안 것이 도리어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 공부는 죽어도 하기 싫지만 의료적 신선이 되고자 하니 번 돈은 없다. 의료적 신선이 되고자 이제라도 열심히 돈을 벌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많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이처럼 신선이 되고자 하는 이러저러한 것이 힘들고 고단한 삶이 될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냥 주어진 수명에 만족하고 살면 된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 말한 사람은 공자다. 아울러 『주역』「계사전」에서는 ‘낙천지명하기에 걱정 근심거리가 없다[樂天知命, 故不憂]’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나이 들어 거울 보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냥 사는 동안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실현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열심히 살면 된다는 것이다. 유학이 갖는 장점이다.


소식(蘇軾) ,〈적벽부(赤壁賦)〉부분  

중국 송나라 신종 5년(1082)에 소식이 유배지인 황주(黃州)에서 양자강(揚子江)을 유람할 기회가 있었다. 소식은 예전의 조조가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에 대항하여 싸운 ‘적벽대전’을 회상하는 가운데 영웅들이라도 무한한 생명 앞에서는 모두 덧없는 존재라는 것과 무한한 본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만물이 다 같은 것임을 깨닫고 시름을 잊고자 하면서 ‘우화이등선(羽化而登僊)’을 노래한다.



조맹부(趙孟頫), 행서〈귀거래사(歸去來辭)〉맨 마지막 부분이다.  (부귀는 내 원하는 바가 아니요, 신선은 기약할 수가 없네. 이 좋은 시절 즐기며 혼자서 가며 혹은 지팡이를 세워 김매고 북돋우노라.  동쪽 언덕에 올라 노래 부르고, 맑은 물에 가서 시를 지으며 자연의 조화 따라 돌아가려 하니,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할 것인가.(富貴非吾願,帝鄉不可期, 懷良辰以孤往,或植杖而耘耔. 登東皋以舒嘯,臨清流而賦詩. 聊乘化以歸盡,樂夫天命復奚[何]疑)



갈홍, 『포박자(抱朴子)』

‘누구나 신선이 될 수 있다’는 갈홍의 사상이 녹아 있는 이 책은 정신의 양생법[무위자연(無爲自然)을 실천한다], 육체의 양생법[생명 활동을 활발하게 한다], 생리적 양생법[곡물의 섭취를 피하고 장 속을 청결하게 한다], 및 금단(金丹) 제조법을 논한다. 금단 제조법은 환단(還丹)과 금액(金液) 제조법으로. 환단과 금액의 특성을 가진 물질을 인체에 작용시킴으로써 육체의 노화를 막아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