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이 전하는 법 이야기 속으로
: ExCampus in Law

  • 530호
  • 기사입력 2023.12.27
  • 취재 이준표, 장수연 기자
  • 편집 이수경 기자
  • 조회수 1395

12월 21일 인문사회과학캠퍼스 경영관 원형극장에서 법을 주제로 지식과 경험을 확장할 수 있는 ExCampus 강연이 열렸다. 이번 ExCampus는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 대학의 교수와 동문뿐 아니라 세계적 석학의 지식과 경험을 전달하기 위한 목표로 세 명의 대법관을 모셨다. 본 강연에서는 양창수, 민일영, 조재연 전 대법관이 연사로 참여하여 강연을 펼쳤다.



◈ 멸사봉공은 올바른 말이 아닙니다


첫 번째 강연은 양창수 전 대법관의 ‘우리 법률가의 빛과 그림자’를 주제로 진행됐다. 그는 2008년부터 6년간의 대법관 임기를 마치고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민법입문>, <민법연구> 등 민법에 관한 여러 책을 저술하여 우리나라 민법의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양창수 대법관]


양창수 대법관은 우리 사회에서 법이 차지하는 자리와 법률가의 의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집단의 원리에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의 패러다임이 법의 출발점이라고 전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법치주의 개념을 도입했다. 법치주의는 누구도 법 이외의 것에 지배되지 않는, 사람이 아닌 법에 따라 통치를 행한다는 원칙이다. 그는 개인이 시작인 우리 법의 출발점이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 잘 표현되어 있다고 말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대목에서 개인이 침해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를 가지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법의 본질임을 거듭 강조했다.


이와 연결되는 맥락으로 법률가의 의무로 자유로운 개인을 앞세우는 태도를 제시했다. 공공을 실현하려는 마음은 사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멸사봉공’이라는 말은 잘못됐으며 ‘사’와 ‘공’은 같이 가야 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태도를 갖고 법의 차원에서 직무를 해내는 사람이 곧 올바른 법률가로 성장할 수 있으며, 삶을 잘 살아가는 데에도 필요한 자세라고 언급했다. 법률가는 법을 자기 일로 삼는 전문가들이기에 끊임없는 성찰을 요구하며 새로 나온 판례를 본인의 잣대로 판단해 보고, 어떤 가치에 기반을 두어 법을 해석하고 운영할지 항상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는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법적인 문제가 많음을 지적했다. 양창수 대법관은 법조인을 희망하는 친구들이 미래의 법률가가 되어 자기 자신과 주위에 관심을 기울이고 도와준다면, 그것이 곧 우리 사회를 위하는 길이라는 당부와 함께 강연을 마무리했다.


◈ 문화법률가란 무엇인가


두 번째 강연은 민일영 대법관의 ‘한 층을 더 올라가라’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그는 이번 강연의 주제를 청중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제이미 바디 축구 선수, 오바마 대통령, 김재박 야구 선수 등을 예시로 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에 대해 본인의 경험을 소개하며 새로운 것에 주저 없이 도전하는 자세야말로 한 층을 더 올라갈 수 있는 힘이라고 답했다.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하여 성취감을 얻는 사람과 그저 체념하고 단념하는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 종이 한 장 차이이지만 미래에는 이것이 엄청난 차이를 일으킨다고 전했다.


[민일영 대법관]


법조인이란, ‘사법 질서를 유지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중심축’으로 정의하여 법조인이 가져야 하는 자세와 태도에 관해 이야기했다. 변호사, 판사, 그리고 검사 중 어느 길을 가더라도 법률가는 상대방의 말에 경청하고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문화법률가’라는 영역을 제시하여 법률가는 법만을 알아서는 안 되며,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취미생활을 하고, 주변 사회를 돌아보며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에 손길을 내미는 행위가 법조인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밝히며 본 강연을 마쳤다.


◈ 법과 중용의 가치에 대하여


마지막 강연은 조재연 대법관의 ‘법과 중용’을 주제로 진행됐다. 본 강연에서는 법에서 중용이라는 덕목에 관한 의미와 가치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정치적 이념, 경제적 효용, 그리고 도덕, 윤리까지 여러 가치들이 사회에서 충돌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시대 환경에 따라 그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전했다. 여러 사회 가치 중에서 어떤 선택과 판단을 내릴 때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을 법과 중용을 통해 소개했다.


일례로 사법 소극주의와 사법 적극주의의 대립에 관해 소개하며 법조인은 법을 제정하는 사람이 아닌 기본적으로 법을 해석하는 사람이지만 상황에 따라 법을 창조할 수 있다는 의견과 오직 문헌에 나온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견해가 충돌한다고 밝혔다. 조재연 대법관은 이에 대해 법관으로서 법이 현실에 맞지 않을 경우 현실에 맞게 법을 해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입법부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법을 제정한다. 그러므로 간혹 소수자 보호에 있어서는 법률이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때 입법부가 제정하지 못한 법을 새롭게 제정할 권한은 없지만, 일정 부분 사법 적극주의라는 말을 듣더라도 포괄적 법 해석을 통해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정의에 부합할 수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법학 공부를 시작하려는 학우들에게 여러 가지 조건들과 상황 속에서 빠르게 정보를 종합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을 기르라고 전했다. 여러 정보를 찾아내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자세를 다시 한번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조재연 대법관]



☞ 질의응답


Q.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많은 국민들이 흉악 범죄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형량이 나오는 것에 대해 법조계에 비판의 목소리를 제기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전문가인 법조인의 시선에서 왜 우리나라 형량을 일반 시민들이 약하게 느끼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알고 싶습니다.


A. 양창수 대법관: 네 법조계 또한 형량에 대한 일반인과 법조인의 시선 차이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형 위원회를 통해 그러한 괴리를 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몇몇 범죄 형량의 경우에는 예전부터 쓰인 법률과 판례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있어 양형 위원회와 입법부의 법률 제정을 통해 조금씩 개선해 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Q. 대법관님의 강연에서 법률가의 자질과 적성에 대하여 좋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혹시 판사, 검사, 그리고 변호사에게 필요한 자질과 적성에 차이 나는 부분이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A. 민일영 대법관: 제가 검사는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웃음) 다만 제가 오랫동안 판사 생활을 했으니 이에 관해 짧게 얘기해 드리면 주변에서 “판사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때 저는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하고 혼자 지낼 수 있는지 해보라’고 얘기해 줍니다. 판사를 하게 되면 들어오는 사건이 정말 많아서 매일매일 판사실에서 사건 기록을 보는 것이 주 업무입니다. 이를 하려면 어느 날은 정말로 대화를 거의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진짜 판사를 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이것을 해보고 판사를 할지 변호사나 검사를 할 지 결정하라고 말해줍니다. 당연히 앞서 강의에서 말했던 자질과 능력 또한 갖춰야 되겠지요.


Q. 변호사는 어느 한쪽의 입장을 대변하여 법률적 도움과 변론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공적 정의와는 맞지 않는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해 변호사는 정의에 관해서 중용의 자세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A. 조재연 대법관: 좋은 질문입니다. 제가 앞서 말한 중용의 자세는 비단 정의라는 한 요소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처한 입장과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야지요. 판사는 중립적인 위치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지만 변호사로서의 역할은 원고 혹은 피고 측에게 최대한 법률적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용을 지키는 일입니다. 가령 본인이 국선 변호사인 경우 아무리 해당 피고인을 변호하기 싫어도 최선을 다해 피고인을 변호하는 것이 국선 변호사의 역할입니다. 이를 신념 혹은 양심의 이유로 게을리한다면 본인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다만 사설 변호사의 경우 본인의 신념과 양심에 따라 정말 수임하기 싫은 피고인의 경우 해당 사건을 맡지 않으면 됩니다. 결국 중용의 자세에는 본인의 역할과 위치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ExCampus in Law 강연은 성균관대학교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더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