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융복합의 날

청소년을 위한 융복합의 날

  • 339호
  • 기사입력 2016.01.11
  • 취재 오솔 기자
  • 편집 강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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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여러 학문에서 요구되는 “융복합“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도 필수적인 자질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은 아직 과거의 주입식·암기 교육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 융복합적 인재를 육성하고자 한국철학교육연구원과 우리 학교의 교양기초교육연구소가 제1회 청소년을 위한 융복합의 날 행사를 주최했다. 이를 계기로 미래를 이끌어 갈 청소년들이 융복합적 사고력과 소통 능력을 배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행사는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하 최재천 원장)의 강연으로 시작되었다. [통합, 융합, 그리고 통섭] 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최재천 원장의 강연을 만나보자.


최재천 원장은 서울대학교 동물학과를 졸업,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생태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이화여대 자연과학대 에코과학부 석좌 교수로 재임중이며, 국립생태원의 초대 원장이기도 하다.

학문의 특성을 이해하자

오늘 강연을 하면서 제 자랑을 많이 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여러분께 제 뜻을 전달하기 위함이니 고려해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12년 동안 60권정도 책을 썼어요. 논문도 많이 썼죠. 그런데 제가 무슨 자문이나 책임자를 맡으면 어떤 교수님은 “논문도 많이 안 쓰신 분이...”라고 말씀하시죠. 제가 연구하는 동물학은 연구실의 실험과는 다릅니다. 어느 날 학교를 거닐다가 새가 특이한 행동을 하는 모습을 봐요. 그럼 저는 같은 종류의 새들이 모두 그 행동을 보이는지, 계속적인 행동인지 등 오랜 시간 동안 관찰해야합니다. 4~5년 간의 관찰이 필요하죠. 그러니 다른 학문처럼 해마다 논문을 쓸 수가 없어요. 그러니 학문마다의 특성을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왜 이렇게 연구 실적이 적어?”라는 질문은 의미 없는 물음이죠. 특히 우리나라는 SCI 학술논문에 집착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SCI라는 것은 미국의 기업이 만든 기준이에요. 한 나라가 기업이 만든 기준에 매여 있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외국은 오히려 Nature지와 같은 유명 저널 외에 실린 논문에 주목합니다. 이미 잘 알려진 학술지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학문의 흐름을 읽어 낼 수 없기 때문이죠. 이제는 학문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할 시점입니다.

두 동굴 이야기

이 이야기는 Charles Dickens의 두 도시 이야기를 패러디 한 것입니다. Edward Wilson이라는 분이 제 지도 교수셨어요. 그 분이 쓴 책 중에 Biophilia라는 책이 있습니다. 번역하자면 "생명사랑“의 의미를 가진 제목이죠. 이 책의 내용은 우리 유전자에는 생명을 사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에 반대해요. 두 동굴 이야기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한 동굴에는 생명 사랑의 정신이 철저한 가족이 삽니다. 이들은 동물도 가급적 안 잡고 동굴을 늘 깨끗하게 유지하죠. 이들은 결국 대를 잇지 못 하게 됩니다. 반면에 생명 사랑에 전혀 개의치 않는 가족이 사는 또 다른 동굴이 있어요. 이들은 지저분한 동굴에서 깨끗한 동굴로 이동하며 살아갑니다.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대를 이어 번성하게 되죠. 생명체가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자연을 이용하려는 능력이 몸속에 있기 때문이에요. 자연을 보호하려는 성향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죠. 우리의 유전자 안에는 자연을 착취하려는 본능이 있다고. 그러니 자연보호는 후천적으로 배워서 실천해야 합니다. 잠깐 강의와 관련 없는 내용일 수 있겠지만 지금 제 강의를 들은 여러분은 돌고래쇼를 하는 동물원에 절대 가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시길 바랍니다. 제돌이 기억하시나요? 제돌이는 지금 바다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연을 가둬놓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공생할 수 있습니다. 21세기는 생태적 전환의 시대입니다. 공생인으로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세를 반드시 갖춰야 하는 시대라는 점을 기억하세요.

국립생태원(NIE, National Insitute of Ecology)

저는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귀양을 보내달라.” 역사 속에서 보듯이 유배지에서는 정말 많은 업적들이 나왔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처럼요. 그런데 정약용 선생이 지금 우리나라의 대학 교수였다? 그러면 그런 저서들을 쓰지 못하셨을 겁니다. 매해 논문 보고를 해야하는데 어떻게 진득하게 연구를 하겠어요. 제가 귀양 이야기를 많이 해서일까요. 정말로 귀양을 보내주더군요. 충남 서천으로요. 현재 저는 국립생태원의 초대 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올해로 3년차이니 마지막 임기네요. 2014년에 문을 연 국립생태원은 그 해에 방문객 100만 명을 달성했습니다. AI 때문에 두달 반을 폐장했는데도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죠. 그런데 이 신생기관은 현재 UN 생물다양성 협약(이하 CBD, 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의 의장기관입니다. 제가 현재 의장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국제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의 핵심인 기술지원센터(TSU, The technical Support Unit)를 유치했습니다. KID(Knowledge, Information and Data)에 대한 TF(Task Force)를 맡고 있어요. 이를 유치하기 위한 경합에 150년이 넘은 연구소도 참여했는데 신생 기관이 채택되었으니 다들 놀랐죠. 밤을 새워 제안서를 쓴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CBD와 IPBES와 같은 국제 무대에서 NIE, 즉 국립생태원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현재 제가 추진 중인 사업은 Eco Bank, 생태계 은행을 만드는 거에요. 미국 국립보건원이 DNA정보를 수집해 Gen Bank를 만든 것 처럼요. 그런데 아쉽게도 이미 세계 각국은 나름대로 생태계 정보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보 포털, Eco Google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전세계 생태계 정보를 호환하고 종, 기후 등 관련 기준을 확립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IT인재와 기업 등을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미국 국립보건원이 정보를 모두에게 무료로 공개한 덕분에 분자 유전학이 발달하고 수백편의 논문이 나왔죠.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에 그치면 안 됩니다. 공유해야 그 가치가 극대화 되죠.

세상은 우리더러 선진국이라는데

우리나라는 선진국일까요? 저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 반도체, TV 정말 잘 만들죠. 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후발주자입니다. 숙제는 잘 하는데 출제를 못해요. 선진국이 되려면 쫓아가는 후발주자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출제해야 합니다. 이제는 창의성 게임이에요. 창의력을 갖추려면 다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왜 현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 다빈치,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같은 인물이 없을까요? 없는 게 당연합니다. 과거는 비교적 얕은 지식의 사회였어요. 조금만 공부해도 파악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그렇지 않아요. 과학이 발달하면서 엄청난 양의 정보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좁고 깊게 파는 전문화가 필요한 시대에요. 그러니 모든 분야를 다 알 필요는 없고 그럴 수도 없어요. 여러 분야를 섭렵하려 하지 말고 자기 우물을 열심히 파세요. 다만 그동안 옆 우물도 조금씩 보면서 언제든지 옆 우물과 협업이 가능할 정도의 소양을 갖추세요. 그래서 저는 통섭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말로 통합, 융합이 있는데 이 세 가지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통합이란 구성원이 공통된 사회규범과 가치를 지니며 공통된 권위에 충성하는 상태입니다. top-down 형식이죠. 물리적 합침일 뿐입니다. 융합은 둘 이상이 녹아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나타나는 화학적 변함입니다. 그러나 통섭은 일종의 생물학적 합침이에요. 인지과학을 봅시다. 이는 학문 틈새에서 탄생한 새로운 학문이에요. 기존의 것과 닮았지만 약간 다르죠. 그러나 부모 학문인 심리학과 같은 기존의 학문들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서로를 잘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이러한 단계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러니 융합형 인재, 창의 인재 등을 요구하는 이 시대에 여러분께서는 책을 많이 읽으시길 바랍니다. 취미가 아니라 일로 독서를 하세요. 기획독서를 하라는 뜻입니다. 당장 나가서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이 아니더라도 뿌리가 될 수 있는 인문학, 기초과학을 익히기를 게을리 하지 마세요.

기조 강연이 끝난 후 행사는 아홉 가지의 강의와 프레젠테이션 대회 및 시상 순서로 진행됐다. 진행된 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