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미 <br>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다.

우영미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다.

  • 372호
  • 기사입력 2017.05.30
  • 취재 권민희 기자
  • 편집 구민정 기자
  • 조회수 8135

대략 30년 전, 성균관 대학교에서 조용히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했던 한 학생이 이제는 세계적인 브랜드의 대표가 되어 후배들을 만나러 왔다. 쏠리드 옴므의 대표, 78학번 의상학과 우영미 동문을 강연을 통해 만나보았다.

꿈에 대한 열정을 다져갔던 시간

우영미 동문은 자신이 지금의 성공을 이루기까지의 여정을 성균관 대학교에서의 학창시절부터 시작했다. “많은 여학생들이 학벌을 결혼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했고, 친구들은 수업을 빠지며 데모를 했던 시절이었다. 그 속에서 내 길을 묵묵히 가는 모범생이었다. 학창시절 야망을 가지고 꿈을 키워나갔다. 엄동설한에 누드모델을 구해 크로키를 해보기도 하고, 직접 만든 옷을 학교에 입고 다니기도 했다.” 우영미 동문의 학창시절은 학업에 열중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꿈 앞에서는 누구보다 소신 있고 결단력 있는 색다른 모습이었다. “졸업 후 당시 최고의 패션 기업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중견부인을 위한 실크 드레스와 같이 특정 스타일을 요구했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년도 채 안 되어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때부터 우영미 동문은 독립을 결심하게 된다. “회사를 그만 두고 취직한 직원 3명의 작은 회사에서 처음으로 남성복을 접하게 됐다. 이후 남성복 시장에서 독립하고자 결심했다. 브랜드가 원하는 옷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옷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에서 열린 영 디자이너 콘테스트에 한국대표로 참가해 3등을 했고,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활동을 보며 패션의 무한한 가능성과 매력을 깨달으며 독립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고난의 과정

독립의 길은 쉽지 않았다. 한국은 패션 노다지로 외국 명품 브랜드가 물밀 듯 밀려 들어왔고, 무한매출경쟁으로 백화점에서 갑질을 당하기 수백 번 이었다. 우영미 동문은 무한매출경쟁에서 벗어나고자 무작정 파리로 떠난다.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잡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발판도, 전례도 없었기에 파리에서의 생활은 험난하기만 했다. “전례가 없었기에 어떻게 해외시장에 진출해야 하는지, 심지어 패션쇼를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도전했다. 그것도 파리 패션의 중심인 파리 컬렉션에 도전했다. 주변의 반응은 수준에 맞지 않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파리 보다는 중국시장을 택하는 것을 권했다. 파리에서는 많은 자괴감에 시달렸다. 파리와 서울을 수도 없이 왕복했고, 눈 높은 파리지앵들의 텃세에 많이 치였다. 더욱이 아무런 네트워크와 인프라 없는 동양인 여성이라 더욱 심했다. 그때 포기했다면 지금의 우영미는 없었을 것이다. 그때의 선택이 자랑스럽다.”

지금의 우영미

고난의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성공한 디자이너가 되어 많은 패션 꿈나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나로 인해 해외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눈을 뜨고 서울이 패션도시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지금 눈부신 청춘이고,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나이다.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1. 본인의 브랜드를 다른 브랜드들과 차별화 시켜주는 특징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여자가 만드는 남성복이라는 점이 제 브랜드를 차별화시켜주는 특징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동양 여자가 만드는 서양 남성복이겠죠. 가끔 여자 디자이너가 남성복을 만든다는 사실에 조금의 이질감을 느끼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오히려 제가 여자라서 남성복을 훨씬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치 세계적인 여성복 디자이너들이 주로 남자들인 것 처럼요.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한국”이라는 제 출신지인 것 같아요. 파리의 많은 패션 기자들이나 디자이너들은 제가 만드는 옷에는 동양적인 섬세함이 깃들어있다고 하세요. 해외 명품 브랜드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동양적인 섬세함과 우아함이 제 브랜드의 차별점입니다.

2. 패션학도들이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까요?

첫 번째, 기술자로서의 스킬을 완벽히 익히세요. 옷에 대한 이해는 옷을 만드는 기술들을 완벽히 습득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그 다음부터 할 수 있는 일은 꾸준한 노력밖에 없습니다. 무언가를 꾸준히 보고, 생각하고, 느끼세요. 옷을 잘 입기 위해서는 옷을 여러 번 입어보고 고민해봐야 하듯이,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추구하는 스타일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과 시행착오가 필요해요.

3. 해외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해외에서 한국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꽤 많은데요,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최근에 까르띠에 사장이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제 브랜드의 옷을 입은 적이 있어요. 그 인터뷰에서 까르띠에 사장은 우영미 브랜드의 섬세한 감성이 자신이 추구하는 스타일과 비슷해서 평소에도 우영미 브랜드의 옷을 즐겨 입는다고 했어요. 또 제 브랜드의 옷을 입으면서 한국이란 나라가 궁금해졌다고 해요. 제 옷을 통해서 한국을 알린 느낌이어서 그 때 큰 보람을 느꼈어요. 프랑스 길거리에서 젊은 남성들이 제 브랜드 옷을 멋지게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 가 없답니다.

4.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겪은 힘든 일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파리에서 일을 시작한 건 거의 맨땅에 헤딩을 하는 격이었어요. 한국인이 파리에서 패션 사업을 시작한 선례가 전무했고, 때문에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어떠한 인프라도 구축되어 있지 않았어요. 언어문제도 큰 장벽 중에 하나였고요. 초반에는 투자도 전혀 없었어요. 극복한 방법은 딱히 없고 그저 발로 뛰는 방법밖에는 없었어요. 투자가 안 들어오면 직접 쇼룸에 가서 옷을 파는 방식으로 무모하지만 열정을 갖고 노력한 것 같아요. 때로는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 질 때도 있었어요. 특히 최근 3년이 가장 힘들었는데요. 전 명상과 108배를 통해서 제 생각을 정리하고 저에게 집중하는 방법으로 그런 우울함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

5. 앞으로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최종목표는 제 아들들과도 같은 두 브랜드 “우영미” 랑 “솔리드 옴므”가 자체적으로 훌륭하고 글로벌한 브랜드로 성장하도록 하는 거예요. 두 브랜드가 한국을 대표해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명품이 됐으면 좋겠어요.

 취재: 23기 구민정, 신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