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타마 센세라 불러주세요”
– 학부대학 이주강 교수

  • 517호
  • 기사입력 2023.06.14
  • 취재 윤지민 기자
  • 편집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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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유쾌한 교수님’이라 부르는 이가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원펀맨>의 주인공인 사이타마와 닮아 ‘사이타마 센세’라 자처한다는 그는, 그렇게 불러주는 학생이 드물어 아쉽다며 그만의 선한 웃음을 전했다. 학부대학 성균인성교육센터 소속 연구원인 이주강 박사는 현재 <성균논어>, <유교자본주의의 이해>, <동양 고전 속의 경영학>을 맡아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인성교육센터에서 진행하는 비교과 과정 등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기도 하다. 그는 SK텔레콤과 한국산업은행 등 다수의 직장에서 공부하다 동양철학에 매력을 느껴 우리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한다. 이주강 교수는 ‘꽃가루가 날리는 봄을 지나 폭죽을 더 크게 터뜨리고픈 축제의 계절에 만나게 되어 반갑다’는 인사를 시작으로 퇴계 이황 선생님의 철학을 이어받아 우리대학에 자리 잡게 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만의 솔직함으로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전하고자 한다는 이주강 교수를 만나보자.



Q. 수업을 진행할 때 교수님만의 철학이 있으신가요?

첫째, 강의실에 들어올 때보다 나갈 때 학생들이 더 기쁘기를 바랍니다. 둘째, 제가 옳다고 믿지 않는 것을 학생들에게 옳다고 강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셋째, 저와 학생들의 현실 속 문제 해결을 즐기고자 합니다.


Q.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자신의 인기 비결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제가 인기가 많다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외모나 언변은 원인이 아닌 듯하여, 제 나름대로 머리를 싸매고 비결을 찾아보았는데,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수업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 다시 말해 모든 ‘현재’에서 항상 기쁨과 즐거움에 머물기를 바라는데, 그런 vibe가 학생들에게 전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이유를 찾자면, 저는 학생들에게 솔직하고자 합니다. 저는 단순한 사람이어서, 자신을 포장하려 애쓰다가는 금세 탄로가 납니다. 요즘 학우들은 꾸미지 않은 ‘날 것,’ ‘민낯’을 선호하는데, 적어도 그런 기준에는 제가 다소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Q. 우리 대학에서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저는 2008년 소녀시대와 2019년 레드벨벳이 성균관대학교 축제에 와서 공연했던 것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전자의 경우 리더인 태연이 <태연의 친한 친구> 라디오 방송을 하느라 오지 않아서, 저는 분노에 찬 학생들과 함께 열심히 응원봉을 흔들었습니다. 후자의 경우 레드벨벳 공연을 전후해 학생회관 근처에서 화재가 났었죠. 제가 가장 아끼는 ‘성선설의 화신’ 슬기가 무사해서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답을 원하신 것은 아닐 듯합니다. 저는 “자연법칙에 따라 존재하고 움직이는 우리의 몸과 감정에는 어떤 문제도 없다. We are enough.”라는 원칙을 제 수업의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이 원칙은 저의 숱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는데, 학생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해가 가면 갈수록 학생들이 이 원칙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점을 매우 인상 깊게 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수업이 끝난 뒤 제 수업 내용으로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알려올 때마다, 제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Q. 학생들을 대할 때 어려운 점이 있으신가요?

저는 MBTI가 IIII인 사람입니다. 매우 내성적(introvert)인 타입이지요. 학생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많이 부대끼는 것 자체가 기질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을 대할 때 어려움이 있다면, 학생의 문제가 아니라 제 기질 이슈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 철학의 모토를 곱씹는 수밖에 없습니다. 배움도 놀이, 강의도 놀이, 가정사도 놀이, 상담도 놀이입니다. 물론 놀이의 모든 순간이 짜릿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놀기 전보다 놀고 난 뒤가 더욱 기쁘고 만족스러우면 그 놀이는 성공입니다. 학생들에게 선생은 항상 어려운 사람입니다. 이 때문에 선생이 먼저 놀이하는 마음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학생들도 선생과 놀고자 합니다. 그 정도면 성공이라고 봅니다.


Q. 어떤 교수가 되고 싶으신가요?

교수(敎授)는 가르치고(敎) 준다(授)는 의미이므로 전문 학자의 영역이 아닌 스승과 제자의 영역에 한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선 질문에서 이미 밝혔는데 저는 학생들에게 즐거운 선생님 그리고 솔직한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즐겁고 솔직한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Q. 교수님은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셨나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어린아이 같은 학생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으며, 그것들을 즐기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했습니다. 가령 달리기를 통해 최고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인체의 작동 방식 및 다양한 주법(走法), 적절한 신발과 마음가짐까지 공부할 것들이 가득했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인 1997년에는 유럽 여행을 떠났는데, 그때에는 <서양 미술사> 등의 교양 강의를 열심히 들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아는 만큼 보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것만 쫓다 보니, 제 학부 전공인 경영학 수업은 좀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이 경우에도 경영학 자체는 죄가 없고, 먹고 살기 위해 기질에 맞지 않는 전공을 선택한 제가 잘못이었지요.


Q. 교수가 되어야겠다 결심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조금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데, 저는 교수가 되야겠다고 결심한 적이 없습니다. 철학 공부가 저를 기쁘게 했고, 이 기쁜 학문을 이제 타인들과 공유하는 편이 더욱 기쁘겠다고 생각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을 따름입니다. 저는 대학 강의뿐만이 아니라 대중강연도 해보았고 초중고등학교 강의도 해보았는데,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제게 가장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대단한데 아직 지적 편견이 심하지 않은 시기가 바로 학부생 시절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학부 대학에 속한 저는 현재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 중인데, 학우들의 열띤 토론과 적극적 반응, 심지어 부정적 반응이라도 저를 매우 행복하게 합니다.


Q.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제 내적인 본성과 기질, 그리고 그에 따른 욕구(감정)입니다. 배가 고프면 먹고 싶은 것은 본성이며, 배가 고프면 구체적으로 햄버거를 먹고 싶은 것은 기질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런 본성과 기질에 따른 욕구를 가장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방법으로 최종결정하는 정서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 있지요. 예컨대 햄버거를 먹고 싶다고 해서 굶주린 아이들 앞에서 혼자 우걱우걱 먹다가는, 제 감정이 본성상 편안하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제 본성상 좋다고 느끼는 것(feel good)을 하고자 하며, 제 기질에 만족스러운 것을 하고자 합니다.


Q. 슬럼프가 있으셨나요? 있으셨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저도 많은 슬럼프에 빠져 살았습니다. 심지어 앞으로도 적지 않은 슬럼프에 빠지겠지요. 인간은 악(惡)한 존재가 아닌 약(弱)한 존재이니까요. 흔히 슬럼프는 남과 나를 비교해서 내가 남보다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는 자괴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그런 경우는 극복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했다는 데에서 비롯된 슬럼프가 가장 위험합니다. 이런 종류의 슬럼프는 남들의 위안이나 우월한 성취에도 극복이 되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다시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에게 충실하게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슬럼프 극복 방법이었습니다. 슬럼프에 빠져 지금 이 순간을 불행하게 보내는 것 또한 죄를 키워가는 일이니까요. 항상 자신에게 충실하고 즐겁게 살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타라 브랙의 <받아들임 Radical Acceptance>라는 책이 이 점을 잘 설명했는데, 자신을 보잘것없게 여기는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일독(一讀)을 권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하나의 유령이 세상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완벽주의(perfectionism)라는 유령이. 완벽주의는 여러분의 현재 존재가 충분하지 않으니, 좀 더 완벽해질 때까지 자신을 몰아붙여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맹자와 스피노자, 그리고 퇴계 이황 등의 스승은 여러분이 존재하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고 가르칩니다(You are enough). 여러분은 오류 없는 자연법칙에 따라 존재하는 자연물이며, 여러분의 존재 자체에는 그 어떤 오류나 부족함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과 남의 내외적 조건(condition)을 비교함으로써 자신이나 남을 비하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완벽(perfection)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완벽이나 완벽주의 그리고 그런 오류들의 기반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teleology) 자체가 거짓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내 존재가 충분하고 문제가 없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미취학 아동들은 완벽해지고자 노력하지 않지만, 온종일 바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완벽해지려 하는 대신 자신의 본성과 기질을 매 순간 즐기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떠들썩한 완벽주의자나 꼰대들의 ‘가르침’을 귓등으로 흘리시고 여러분의 참된 본성(true nature)과 참된 욕망(true needs)에 따라 즐겁고 또 즐거우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타인과 함께 즐거워야 진실로 큰 즐거움임을 잊지 않고 즐거우시기를 바랍니다(與民同樂). 인생은 짧고 시간은 목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