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이해하는 열쇠, 한문학'
라이덴대학교 한국학과 최원경(한문교육과 96)교수

  • 518호
  • 기사입력 2023.07.03
  • 취재 이채은 기자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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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 등의 고전 학문은 대학에서 더 이상 주류가 아니게 되었다. 혹자는 이를 고리타분한 고전 학문이라고 칭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라는 말처럼, 고전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삶의 통찰력, 현재에 대한 이해는 모두 과거와의 접목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학자는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를 한문학에서 찾았다. 우리 대학 한문교육과를 거쳐 한문학과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월 네덜란드 라이덴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로 임용된 최원경 교수다. 최원경 교수는 한문학에서 ‘세상을 읽어낼 중요한 키를 획득할 것만 같은 기대감을 맛본다‘고 말한다. 한문학 연구를 지속해 나가면서, 삶에 대한 통찰력을 얻어나가는 최원경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학사, 석박사를 모두 성균관대에서 보내셨는데, 교수님은 재학 시절 어떤 학생이셨나요?


졸업한 지 꽤 오래되어서 명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학부 때는 동기들과 원만하게 지내기도 했고, 동시에 조금은 아웃사이더였던 것 같네요. 동아리 서도회에 속해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밤늦게까지 선배, 동기들과 함께 전시회 준비도 하고, 동아리방에서 군대 휴가 나온 선배의 환영회에서 삼계탕을 끓여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학사 때부터 전공 공부에 흥미가 많아서 대학원으로 진학하기로 빨리 마음먹었습니다. 대학원 진학 후 석사 때부터는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조교로 근무하면서 관련 서적을 많이 접했어요. 당시 다양한 전공 교수님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서 풍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석사를 시작했을 때가 대동문화연구원을 모체로 한 동아시아학술원이 출범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연구 과정에서 한국 한문학을 동아시아학과 더불어 보며 시야를 넓게 가질 수 있었습니다.


Q. 학부생 재학 시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좀 진지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저 스스로는 뭔가 씁쓸하게 재미있고, 제 기억 속에 중요하게 남아있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80년대 후반 저는 돈암동에 위치한 성신초등학교를 다녔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성신여대, 성균관대, 국민대 등지에서 날아오는 듯한 매캐한 최루가스로 지독히도 힘들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불편한 기억보다는 대학생들이 속한 공간은 저런 곳이구나 막연하게 비장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의 대학시절은 시대정신이 막을 내리고 본격적인 개인의 삶을 위한 투쟁의 시작이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자신을 위한 투쟁은 등록금 투쟁이었는데, 그것도 끝물이었지요. 금잔디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함께해  달라고 큰 소리로 도서관으로 향하는 학생들을 붙잡던 모습을, 저는 마치 외부인처럼 서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많은 것이 변화하고 있었는데, 대학/대학생의 여러 역할 중에서 기성 사회에 대한 관찰자이자 비판자의 역할은 이제 사라지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며 왠지 모를 흥미로운 마음과 어두운 마음이 묘하게 뒤섞였던 강렬한 기억입니다.  


Q. 교수님의 연구 분야가 궁금합니다. 한문학과 박사학위 취득 이후 어떤 분야를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계신가요?


저는 주로 19세기 한국문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19세기~ 20세기 초는 전 지구적으로 사회, 정치, 문화적 변화가 일어나는 모더니즘의 기폭기로 알려져 있지요. 특히 조선의 18세기 말~19세기 초부터는 큰 변화를 겪을 듯한 알 수 없는 조선의 향방이 지식인들에게 감지되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제 지도교수이신 진재교 교수님께서는 18세기가 문화적, 학술적 신기운이 고양되었던 시기라면, 19세기는 그 신기운을 전진시키고자 하는 열망과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의 좌절이 공존하는 시기였다고 하셨습니다


역사 속 모든 시기의 사람들은 매번 새로운 변화의 시간을 겪으며 인식의 확장을 경험해 왔을 겁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큰 변혁의 시기가 존재합니다. 특히 19세기와 21세기는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유사합니다. 서로 연결되어 연상되는 지점이 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21세기 현재를 사는 저는 19세기 지식인들의 실존적 고민과 삶, 시각, 인식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Q. 한문학, 한문 교육학은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연구 분야입니다. 한문학의 어떤 매력이 교수님을 연구의 길로 이끄셨는지 궁금합니다.


한문학과 한문교육학은 한국의 과거를 공부하고 한국의 과거를 후속 세대에게 교육하기 위한 공부를 하는 학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대를 초월한 통찰력과, 지속성 있는 가치를 전달하는 학문이지요. 안타깝게도 대학에서 고전전공은 주류가 아니며, 한문학을 전공하는 것은 많은 학생에게 더 이상 매력적인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역사/언어/문자/외교/정체성 등의 여러 문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지성사, 대중사를 모두 알아야 하고, 그것은 한문학과 정통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실존, 정체성,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인식, 타인과의 소통 등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에 관한 공부를 실생활에 접목하면서 사는 삶을 목표로 했고, 한문학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이 분야를 공부하다 보면, 이제는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에 매몰되어 있는 것 같은 고립감과 함께 세상을 읽어 낼 중요한 키를 획득할 것만 같은 놀라운 기대감과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진정한 마이너와 메이저 감성의 조합이라 할 수 있지요.


Q.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는 동안 연구의 어려움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연구자로서 어려웠던 점은 없으신가요?


지금은 퇴임하신 우리 학과 임형택 교수님께서 “당대 최고의 석학들이 하던 공부를 너희들이 하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겠느냐.”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모든 학문이 다 그렇겠지만, 한문학은 정말 어려운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쉽지 않았고 지금도 쉽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연구를 하면서, 외부적 잣대와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을 과제로 삼았습니다. 저는 모든 면에서 조금씩 평균보다 느린 사람입니다. 제가 지나온 과정들이 모두 그러했고요. 제 속도에 심리적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제 자존과 즐거움, 균형감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Q. 2월에 라이덴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교수님의 어떤 점이 라이덴대학에 어필된 것 같으신가요?


라이덴 대학교는 깊은 한국학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1950년대부터 한국학 연구의 기반이 마련되어 왔으며, 한국학에 대해 지속적이고 깊은 고민을 해오고 있습니다. 해외 대학에서 한국 고전문학 전공으로 교수를 임용한 사례가 현재까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라이덴에서 한국의 고전문학과 원문 자료를 잘 가르칠 사람을 찾는다는 채용공고를 냈습니다.

저는 임용 평가 당시에 라이덴 대학 측에서 제시한 이규보의 자료를 가지고 공개수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연구 발표 시에는 ‘19세기 과도기의 조선 지식인‘, ’중국 문학과 문화와는 구별되는 한국 고전이 세계 문학의 한 부분으로서 가지는 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어필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포함해 성균관대에서 오래 공부하며 얻은 한국고전문학과 관련된 다양한 종류의 강의 경력 등이 라이덴 대학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Q. 앞으로 연구자, 혹은 교수로서 라이덴대학교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가요?


개인적으로 목표나 포부를 구체적으로 가지는 편은 아닙니다. 그저 한국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온 많은 학생 중에서, 제가 “재미있는 거 한번 볼래?” 하면서 손을 내밀면, 눈을 반짝이며 저와 함께 한국 고전을 공부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아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Q. 마지막으로 성균관대 학생들, 그리고 연구자의 길을 걷는 학생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떤 일에 매몰되거나 몰두하게 되는 일은 연구자의 삶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기꺼워하지 않는 방식과 방향으로 자신을 소모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외부의 질서를 존중하면서, 자신의 주체적인 질서를 잘 찾아 나가고 있을 모든 성균관대 학생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