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도 괜찮아요”
사우스플로리다대학교 권보람 (영어영문학과07) 교수

  • 521호
  • 기사입력 2023.08.13
  • 취재 윤지민 기자
  • 편집 김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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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곤 하는 영역을 컴포트 존(comfort zone)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기를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과 목표를 향한 도약을 위해서는 각자의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전을 위해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 해외로 발걸음을 내디딘 이가 있다. 권보람 동문은 우리대학 영어영문과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보내고 미국 University of Wisconsin – Madison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 동부지역에서 강사로 재직했다. 그 후 올해 University of South Florida (USF)에 임용되며 미국에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Q. USF에 임용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언어학 박사고 세부 전공은 음운론(phonology)과 제2 언어습득(second language acquisition)입니다. 학위 논문은 음운론 이론을 이용해 한국어를 배우는 미국 화자들이 어떻게 한국어 소리를 인지하는지, 모국어(영어)가 소리 인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어요. 간단한 예시로 말씀드리자면, 왜 미국 사람들은 ‘김’을 들으면 ‘Gim’이 아닌 ‘Kim’으로 인식하는지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연구예요. 모두 한 번쯤 궁금해하지 않으셨나요?


학위 과정 중에는 언어학, ESL, 작문, 한국어와 같은 여러 수업을 가르쳤어요. 이렇게 다양한 수업을 조교 또는 강사로서 가르칠 수 있다는 게 미국 대학의 큰 장점인데, 가르치는 일을 계속 해 보니 저는 연구보다 가르치는 일에서 더 보람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취업 준비를 시작할 때쯤 모두가 아는 역병이 터졌어요. 미국 역시 코로나로 취업 시장이 엉망이 되고 안 그래도 인문학은 가뭄에 콩 나듯이 일자리가 나기에 더더욱 상황이 어려워졌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면서 취업 준비를 했어요. 그러다가 연이 닿아 보스턴에 있는 Northeastern University (NU) 영어과 소속 Writing Program의 Postdoctoral Teaching Associate(티칭 포닥)에 합격했어요. 포닥이라고 하면 보통 연구하는 포지션이 주인데 NU는 티칭 교수 양성 차원에서 티칭 포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나중에 후일담으로 들은 얘기인데 티칭 포닥 5명 자리에 170명 가까이 지원했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절박했던 인문학 박사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숫자죠.


그렇게 저는 NU에서 First Year Writing과 Advanced Writing in the Technical Professions라는 과목을 맡아서 가르쳤습니다. 보스턴이란 도시와 NU는 정말 좋았는데 두 번째 학기를 마칠 때쯤 코넬 대학교 한국어과 강사자리로 이직을 결정했어요. 당시 코넬에서 포닥을 하고 있던 남편과 롱디(장거리 연예)를 하고 있었거든요. 마침 강사자리가 난 것도 박사과정 여름방학 동안 쌓았던 한국어 강사 경력이 있었던 것도 잘 맞물려서 일이 풀렸던 것 같아요. 제 모국어를 미국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일이 엄청난 보람이 있더라고요.  제 연구 분야(소리와 언어습득)와도 가까운 필드라서 더더욱 매력을 느꼈어요.


영어과에서 일할 때의 장단점과 한국어과에서 일할 때의 장단점을 어느 정도 체험하게 되니 어느 분야로 제 커리어를 밀고 가야할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저의 컴포트 존은 아니지만 제가 성장할 기회가 더 많은 영어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작년 하반기부터 취업시장에 도전한 결과 올해 가을학기부터 USF영어과 Assistant Professor of Instruction (API)로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친정으로 돌아온 기분이랄까요?




Q.연구 중 어려웠던 점이 있으셨나요?

흔한 얘기지만, 저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가령 저를 오롯이 믿고 스스로 꾸준한 동기 부여를 주는 것이 어려웠어요. 박사 연차수가 늘어가면서 자꾸만 남과 비교하게 되는데 저는 또 이론 연구를 하다 보니 중간에 벽에 부딪힐 때가 많았어요. 박사과정 연구란 스프린트가 아닌 마라톤이 되어야 하는데 이 장기전에서 시기적절하게 연료를 채우고 꾸준히 연구에 매진하는 일이 절대 쉽지 않더라고요. 저는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타입이라 글이 안 써지는 날엔 과감히 포기하고 대학원 친구들과 운동도 하며 웃고 떠들면서 마음을 다잡았던 것 같아요.


Q.어떤 점이 USF임용에 도움이 된 것 같으신가요?

추측해 보자면 저의 언어적, 문화적, 그리고 교육적 배경이 USF에 호감을 주지 않았을까 합니다. 플로리다는 지리적 특성상 히스패닉계 인구가 많고 영어와 스페인어를 아주 흔하게 들을 수 있어요. 요즘 학계가 다중언어(multilingual) 구사자를 조금 더 잘 이해하고 그들을 위한 수업과 효과적 교수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추세이기도 하고요. 저는 한국어와 영어를 구사하는 여성 언어학자이면서 다양한 실무 경험이 있는 후보자여서 제가 학교와 학과에 보탬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티칭 외에 했던 학과 일들도 좋은 인상을 준 것 같아요. NU에 있었을 때 교수진의 전문성 개발 모임(First-Year Writing Working Group, Inclusive Communities of Practice for Multilingual Writing Instructors)에 들어서 활동했어요. 다중언어 교수들을 위한 멘토링 클럽이 생겼는데 학과에서 추천 받아 멘토로도 활동했고요. 코넬에서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대학원생들을 위한 스피킹 그룹에서 자원봉사를 했는데 이런 활동들이 자원해서 하는 것이다 보니, 제가 USF에 임용이 된다면 어떠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Q. 어떤 과목과 어떤 분야를 가르치시는지 궁금합니다.

올해 USF에서는 작문 수업 위주로 가르치게 될 것 같아요. First-Year Composition, Professional and Technical Communication, Expository Writing과 같은 수업을 맡아서 가르치며 후에 영역을 좀 넓혀서 Introduction to English linguistics, Rhetorical Grammar for Writing, History of the English Language와 같이 제 언어학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과목들을 가르칠 예정입니다.


인터뷰를 볼 때 Department of  World Language 학과장님과도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한국어를 가르친 이력이 있으니 반가워하시더라고요. 현재 USF에는 한국어 수업이 개설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가 언젠가 USF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같이 강의하는 날이 오게 될까요? (웃음)

 

Q. 교수로서의 계획이나 포부가 궁금합니다.

당장의 목표는 “새로운 학교에서 적응을 빨리, 잘하자”예요. 조금 더 길게 봤을 때는 미국 사회에서 다양성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교육자가 되면 좋겠어요. 제 전공 지식과 티칭 경력을 십분 활용하여 단일/다중언어 사용자들이 본인의 모국어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자신감 있게 글쓰기를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고, 다중언어 구사와 관련된 오해도 풀어 주고 싶어요. 저를 만나는 모든 학생에게 언어학은 아주 흥미로운 학문이라는 걸 조금이나마 어필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Q. 성대 재학 시절, 어떤 학생이셨나요?

제 사촌 동생은 제가 음대를 다니는 줄 알았대요. 성대에는 음대도 없는데 말이죠. 저는 1학년 때부터 성대 오케스트라 동아리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는 학생이었어요. 바이올린 파트였고 2학년 때는 악장이라는 직책도 맡아서 했답니다. 3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한 뒤에는 “크레디아”라는 클래식 공연 기획사에서 인턴 생활을 하기도 했어요. 당시 클래식에 푹 빠져 있어서 예술경영 쪽 진로를 고민하기도 했었는데 미국 유학을 나온 뒤부터는 바이올린 케이스에 먼지만 소복이 쌓였네요.


Q. 해외에서 일을 해야겠다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저는 티칭 트랙의 교수직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이 직군은 미국이 조금 더 대우와 환경이 좋은 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대학들이 더 적극적으로 티칭 교수의 자기 계발을 지원해 주어서 미국에 남아있기로 결심했어요. USF는 티칭 교수도 원하면 소정의 연구비를 지원해주고 안식년도 보장해 줘요. 티칭을 주업으로 삼 되 연구도 완전히 손 떼고 싶지 않았던 저에겐 아주 매력적인 조건이었지요.


Q. USF에 임용되기까지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USF에 면접을 보기 며칠 전에 제가 포닥으로 일했던 NU에서도 티칭 교수를 뽑는다는 공고 이메일을 받았어요. 제가 정말 만족하면서 다녔던 직장이라 지원할까 고민하다가 USF 면접 준비에 바빠서 지원을 포기하고 있었어요. 지원 마감일이 면접 다음 날이었거든요. 그런데 USF 면접을 보고 난 뒤 갑자기 엄청난 불안감이 엄습해 왔어요. 지원한다고 해서 붙는 건 아니지만, 지원조차 하지 않으면 확률은 0이 되니까요. 호텔 방에 돌아와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자소서를 쓰고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서 온라인 제출을 했어요. 이후 감사하게도 인터뷰 제안은 받았지만 (USF 합격 이후라 고사) 다시 생각해 봐도 보통 며칠 걸리는 서류 준비를 몇 시간 만에 해 내야 했던 상황은 아직도 아찔하네요. 박사 졸업해도 발등에 불 떨어져야 일의 능률이 올라가는 건 변하지 않더라고요. (웃음)


Q. 성대 후배들을 위해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응원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제가 예전에 SNS에서 우연히 보게 된 구절이 있어요. “A comfort zone is a beautiful place, but nothing ever grows there.”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나'로 성장하기 위해선 가끔 컴포트 존을 벗어나야 해요. 내가 익숙한 것에서 한 발짝 벗어나도 괜찮더라고요. 더 가끔 컴포트 존 완전 밖으로 날아가도요. 제게 유학이 그런 도전이었어요. 오늘도 자신의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 도전하는 모든 후배들을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