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삶의 방식과 속도로 나아가기
- 덴버대학교 김율리(글로벌리더학 10) 교수

  • 535호
  • 기사입력 2024.03.12
  • 취재 이준표 기자
  • 편집 장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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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이란 건강을 증진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우리는 건강한 식습관 유지하기, 혹은 운동하기와 같은 여러 보건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개인이 노력한다면 비교적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율리 교수는 이에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다. 지속적인 건강 증진과 사회 전반의 건강 형평성을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공동체 차원의 문제 의식과 해결 과정이 필요하다고 전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보건 메시지’란 무엇인지, 보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그녀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보건 커뮤니케이션 (Health communication) 연구자 김율리입니다. 성균관대학교 글로벌리더학부 (구 자유전공학부) 10학번이었고, 학석연계과정을 통해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에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University of Denver에서 3년 차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 성균관대학교 졸업 후, 해외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석사과정에 진학할 때만 해도 ‘연구자’나 ‘교수’라는 직업에 대한 뚜렷한 이해가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학부과정 동안 자유전공학부 소속으로 여러 전공을 넘나들며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장점이 있었지만,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제가 선택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전공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해서 아쉽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점에서 석사과정에 진학해서 정성은 교수님을 만났던 것은 참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개념에 관련된 논문들이라면 수없이 밑줄을 치면서 몇 번이고 다시 읽으시는 모습이나, 연구실 책장에 빼곡히 들어찬 책 중 특정 논의에 필요한 책의 필요한 부분을 콕 집어내서 참고하시는 모습들을 보며 연구자의 모습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워갔거든요. 그렇게 석사과정 동안 연구자라는 직업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학문에 매력을 느껴 자연스럽게 박사과정 유학을 준비하게 되었어요. 물론 지도 교수님이셨던 정성은 교수님의 적극적인 지지와 권유도 해외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 중 하나였고요.


■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는 동안 여러 어려움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연구자로서 힘들었던 점은 없으셨나요?


저는 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자칫하면 외롭고 힘들 수 있는 박사 과정 동안, 서로를 진심으로 지지하고 격려해 주는 친구들을 만나 꽤 즐겁게 지냈거든요. 그래도 힘들었던 점을 꼽자면, 박사 첫 학기부터 강의를 하게 되어 아주 바쁜 시간을 보냈던 경험인 것 같아요. 영어도 익숙하지 않은데 대학원 세미나 수업을 준비하랴, 제가 수업해야 할 과목을 준비하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랴 정말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거든요. 숨 쉴 틈을 따로 찾아야 할 만큼 바빴던 기억인데, 나름대로 재미있었던 시간으로 기억되는 걸 보면 역시 ‘업무 강도’보다는 ‘업무 내용’,  ‘함께하는 사람’과 ‘직업 환경’과 같은 요소들이 중요한가 봐요.



■ 교수님이 진행하셨던 연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저는 사실 대학 시절 내내 개발 협력 분야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보건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이유 중 하나도 communication specialist가 되어 개발 협력 프로젝트의 효과성을 향상하고, 감염병이나 자연재해 등 비상 상황에서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 기여하고 싶었기 때문이고요. 그래서 특히 기억에 남는 연구 중 하나는 말라리아 퇴치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입니다. 여전히 한 해 2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말라리아에 걸리고, 특히 전 세계 말라리아 발생의 95%가 아프리카 대륙에 집중해 있어요. 최근에는 백신이 개발되었지만, 백신이 보편화되기까지는 또 한참의 시간이 걸리기에, 여전히 많은 과학자가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질병 중에 하나죠.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의 지원으로 저는 Eave tubes가 시범적으로 설치되고 있던 아프리카 대륙 코트디부아르의 부아커(Bouake)라는 도시에서 한 달 동안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Eave Tubes는 모기 생태학에 기반해 발명된 장치였어요. 대부분 진흙이나 벽돌로 지어진 집의 외벽에 구멍을 뚫고 설치해서 모기가 거주 공간 내로 진입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장치였지요. 현지에서 유일한 “사회과학자”였던 저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주민이 이 장치를 설치하는 데 동의하도록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어요. 구체적으로는 연구팀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회/문화적 규범이 있는지에서부터 주민들이 이 새로운 장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마을 사람들 간에는 현재 어떤 대화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주민 인터뷰 과정에서 음성언어만 존재하는 지역 언어(Baoulé)를 프랑스어로, 다시 영어로 통역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협력이 필요했던 것은 물론, 이후에도 위치기반 데이터와 인터뷰 데이터를 연계해서 분석하는 데에 품이 많이 들었던 연구였어요. 이 밖에도 출발 이전부터 한 달 내내 말라리아 예방약을 복용해야 했고, 현지에서는 모기장을 설치하고 자는데도 여지없이 밤마다 모기들에 시달렸지만, 그만큼 잊을 수 없는 경험이기도 했지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 학술지에 출간된 논문들 또한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 현재는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효과적인 보건 메시지를 통해 개인들이 건강 증진 행동을 하도록 동기부여 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요인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이 있어요. 저는 보건 문제가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사회학이나 보건학 관련 연구들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이유이기도 하지요. 아무리 좋은 이론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메시지를 제작하더라도, 환경적 요인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해요.


예를 들어 건강한 식습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읽고 모두가 당장 내일부터 건강식을 시작하지는 않잖아요? 저는 그 이유를 메시지 효과성이나 개인의 의지에서 찾기보다, 건강식을 지향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손쉽게 건강한 재료나 음식을 구할 수 있는지, 이를 준비하거나 구매할 시간적, 경제적 여유는 있는지, 주위 사람들과는 건강한 식습관에 관한 대화를 얼마나 나누고, 그 대화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등등 사회적 요소에서 찾아보려고 노력해요. 메시지를 개발할 때도 건강 문제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기보다는 사회 구조적 문제에 주목하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노력하여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 하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최근에는 지역 병원의 의대 교수님들과 기후 변화로부터 비롯된 불평등과 양극화의 문제를 연구하는 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관련 연구 제안서를 작성했어요. 기후 변화와 이로 인한 산불, 가뭄, 이상 고온과 같은 등의 자연재해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모든 사람이 동등한 정도의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잖아요. 특히 대기의 질이 좋지 않을 때 대개의 보건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외출을 자제하고 실내에 머무를 것을 권고하는데, 주거 환경에 따라서는 실내 대기질이 더 나쁠 수도 있거든요. 메시지의 효과에만 주목하는 보건 캠페인이 놓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해요.


실내 대기질을 개선하기 위해 지역 정부가 저소득 가정을 대상으로 인덕션과 환기 시설을 설치하는 등 주택을 개보수하는 사업을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어요. 정부, 병원, 대학이 협력하여 해당 사업이 실제 호흡기 질환 환자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인지, 어떤 점이 개선되어야 하고 얼마나 광범위하게 보급될 수 있을지를 시작으로 한 여러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현재의 계획이에요. 저소득 가정의 주거 환경이 변화한다면 이에 따라 호흡기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보건 메시지에도 변화가 필요하겠죠. 주민들과 협력하여 효과적인 메시지를 개발하는 연구도 프로젝트의 중요한 축으로 포함될 예정입니다.  


커뮤니케이션학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인 학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른 학문 분야들과 협업했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날 수 있는 학문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어떻게 하면 공공 보건을 향상할 수 있는지, 나아가 건강 형평성을 높일 수 있을지, 커뮤니케이션 학자의 관점으로 계속 고민해 보고 싶어요.  


■ 현재 University of Denver에서 어떤 수업을 강의하고 계시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University of Denver에서 일하게 된 이후로 Theorizing communication, Introduction to health communication, Communication for social change 등등의 과목을 강의해 왔어요. 특히 지난 학기에 개설한 Communication for social change는 빈곤 퇴치를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단체인 Metro Caring과 함께한 지역사회 연계 수업으로, 학생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어요.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은 직접 모금 캠페인 대상 그룹을 분석하고,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근거한 메시지를 제작하고, 나아가 그 효과성을 평가해 보는 과정을 거쳤어요. 수업의 일환으로 단체의 활동가가 초청 강연을 오거나 학생들이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자로 참여하는 등 의미 있는 경험들이 포함되기도 했죠. 학생들이 제작하여 학기 말에 비영리 단체와 최종적으로 공유한 모금 캠페인 메시지들은 제가 보기에도 독창적이고 훌륭했어요.


이번 여름에는 사진학과 교수님과 협력해 덴버 대학교의 학부생 친구들과 한국을 방문하는 여름학기 수업을 계획 중이에요. Intercultural communication과 Introduction to photography 과목을 통합한 수업인데, 한국의 여러 곳을 학생들과 함께 방문할 생각에 벌써 기대가 되네요.


[학생들이 써준 롤링페이퍼]



■ 성대 재학 시절 교수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저는 굉장히 바쁜 대학생이었어요. 월화수목금, 때로는 주말에도 서로 다른 동아리 활동을 하는 날들을 보냈거든요. 학생회부터 교내 밴드부와 미술부, 인권 동아리, 독서 모임 등등 관심이 있는 분야라면 일단 발을 들여놓고 보는 성향이었던 것 같아요. 이에 더해, 성대의 국제 프로그램들도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요.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공부했고, 개발 협력의 이해라는 수업을 통해 캄보디아로 봉사활동을 다녀오기도 하고요. 다른 학부 수업의 일환으로 진행했던 연구 프로젝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 샌프란시스코에 UX/UI 관련 기관 탐방을 다녀오기도 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는 단순히 재미있는 일들을 좇아서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 시절에만 할 수 있는 경험들이었던것 같아요. 개인이 처한 환경과 상황이 모두 다르겠지만 각자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열심히 대학생 때만 할 수 있는 경험들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대학 생활이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 학생들, 해외에서 교수직을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시기와 주관이 다르기에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조언한다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얼마 전에 유명 연예인이 한 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여러분 마음 가는 대로 사십시오. 지금까지 제가 한 말 귀담아듣지 마세요.”라는 이야기를 해서 큰 호응을 받았다는 기사를 봤는데, 그 말에 매우 공감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지면을 빌려 한 마디만 전하자면, 저는 ‘무엇이 되어야겠다’라는 다짐보다는 ‘무엇을 하고 싶다’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살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저 역시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순간순간 제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에 집중해 왔거든요.


주위를 보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일치하는 운이 좋은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일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잘하는 일부터 하고 보자는 사람이나 그 반대의 사람도, 아니면 좋아하는 일이나 잘하는 일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돌아가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처음부터 일치한다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 20대, 그리고 그 이후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특히 저마다의 포부를 가지고 성균관대 졸업 후 해외에서 학업이나 취직을 고려하시는 분들은 이제까지 살아온 것과 아주 다른 환경을 마주하게 되실 거예요. 아마 그만큼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폭도 넓어지겠죠. 남들이 뭐라고 하던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삶의 방식, 속도로 살아갈 수 있는 단단함을 가질 수 있길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