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식, 저 음식 스토리 한번 들어보실래요?

이 음식, 저 음식 스토리 한번 들어보실래요?

  • 288호
  • 기사입력 2013.11.19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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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식, 저 음식 스토리 한번 들어보실래요?"


최근 한 일간지에 '음식문화평론가'의 논문을 인용해 "조선시대 초기 김치는 '금(金)치'였으며, 왕가나 상류층만 먹는 최고급 요리였다"는 기사가 실렸다. 왕실에서는 국가 제사에 쓰기 위해 배추밭을 별도로 관리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김치가 서민적 반찬이 된 것은 비싸고 귀한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대중적 열망의 산물 때문이었다고 한다. 중국황제에게 진상할 정도로 귀한 음식이 김치였다는데, 이런 우리 음식들의 유래를 조선왕조실록이나 각종 음식관련 고서들을 뒤적이며 집요하게 알아내 '음식유래 이야기' 시리즈를 펴내는 동문이 있으니, 음식문화평론가 윤덕노씨(55․영어영문학과 77학번)가 바로 그이다. 이미 그의 역작들이 시중에 여러 권을 선보인 지 오래이다. 『장모님은 왜 씨암탉을 잡아주실까』를 비롯하여『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신의 선물 밥』『떡국을 먹으면 부자가 된다』『음식잡학사전』등이 그것이다. 그뿐인가. 유력 일간지에 '윤덕노의 음식이야기'라는 이름으로 170회를 연재했으니, 필력도 필력이거니와 '음식유래'에 대한 내공이 보통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가 수십 년만에 모교를 찾아 '음식속 숨은그림 찾기'라는 제목으로 1시간 동안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펼쳐 화제가 됐다. '생선회'와 '두부'라는 두 가지 음식만으로 90분 동안 그처럼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구사한다는 것부터가 경이로웠다. 특강이 끝난 후 일부러 수인사를 나누고 인터뷰를 청했다. 10여년 동안 '한 우물'을 파면 누구라도 그렇게 될 것인가. 쉽지 않는 일이다. 아무리 취미가 있다해도 은근과 끈기가 없으면 가능하지 않는 일. 그 비결을 물어보았다. 공개할 수 없는 저자만의 검색 노하우가 있다고 한다. 원문(原文)을 찾아 일일이 확인해보는 것은 필수. 음식 한 가지를 몇 달씩 찾아도 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한다. 국회도서관 상시 출입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 '제2의 직업'이 돼버린 음식문화평론에 몸을 바치고 있다고 한다. 그 정열이 사뭇 부러웠다.

그의 '제1의 직업'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언론인출신. 1984년 매일경제신문사에 기자로 입사, 25년 동안 재직했다니, 그의 내공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사회부장, 과학기술부장, 중소기업부장, 국제부장, 중국 베이징특파원, 편집부국장까지 역임했으니, 해볼 것은 다 해본 것같다. 미국 클리블랜드 주립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기도 했다. 현역기자 시절 이미『차이나쇼크』『중국권력 대해부』『중국 벗기기』『브랜드 사주팔자』등의 저서로 이름을 빛냈다. 자신이 있었기에 자진하여 언론계를 떠났을 것이다. 하루 세 끼 먹는 음식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넘어 호기심까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청보리미디어'라는 출판사를 차려 자신의 음식관련 책을 잇달아 펴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특강 요청이 쏟아졌다. 가장 인상깊은 특강은 삼성그룹 수요 사장단 회의에서 한 'CEO들의 밥상'이었다고 한다. 특강료를 두둑히 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비즈니스를 위한 글로벌 푸드 스토리'를 주제로 2년째 특강을 하고 있다. 한 시간의 특강을 위해선 몇날 며칠을 준비해야 했다. 고독한 작업이었지만, 이제 취미를 넘어 특기가 되었고, 그 특기가 '밥벌이'가 되므로, 소명의식을 가지고 더욱 더 방대한 자료찾기에 나선 게 10년이 다 되어간다. 유홍준님이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알게 되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고 말했듯이, 이제 어느 음식이름만 대도 그 유래와 기원을 줄줄줄 꿰게 됐으며, 천직처럼 음식을 사랑하게 됐다. 그뿐 아니라 음식과 관련된 다양한 속설들도 검증해야 했다. 자료는 조선시대 각종 문헌, 다양한 중국의 고전과 일본 자료, 그리스 및 로마의 고전 그리고 광범위한 서양 현대문헌까지 아울러 각종 음식에 '인문학의 옷'을 입혀야 했다.

그는 앞으로도 꾸준히 음식의 유래와 기원, 속설 등을 탐구 조사하여 알리는 일에 주력할 생각이라고 했다. 독자들은 '음식평론'하면 '맛집'을 떠올리며 그에게 맛집을 추천해달라는 요구를 가장 많이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착한 식당' '맛난 음식'을 찾아다니는 식도락가나 음식칼럼니스트는 아니다. 물론 '음식맛'에 대해선 남들보다 약간 더 조예가 있긴 하지만,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변이 궁하고 난처하다고 한다. 언젠가 아주 고급한정식집에서 한 끼에 30만원짜리도 먹어 보았지만, 성남 야탑역 근처 2500원짜리 칼국수 한 그릇이 훨씬 더 맛있었다는 그의 '맛난 음식'지론은 그날의 컨디션이나 날씨 등 변수가 많기에 뭐라고 딱히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가 탐구조사하는 것은 음식의 유래와 기원, 또는 속설의 허와 실을 밝힘으로써 옛 조상들의 음식에 대한 슬기와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생업으로써 음식관련 특강을 삼가는 것도 연구하는데 무한한 시간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한 가지라도 더 알아서 기록해놓는 작업은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특기이며, 날마다 쓰는 일기(日記)와 같은 것이 돼 버린지 오래라면서 웃는 그는 '몰입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듯했다. 보다 재미있는 음식 스토리를 발굴할 그의 건필을 기원할 뿐이다.

글=최영록 성균관대 홍보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