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통해 세상을 바로 보는
이봉범 교수

  • 468호
  • 기사입력 2021.05.25
  • 취재 박기성 기자
  • 편집 김민서 기자

매년 스승의 날이면 학생들은 스승, 그리고 가르침의 가치를 다시금 느끼곤 한다. 그들 중 몇몇은 교육계에 종사하며 스스로 스승이 되기도 한다. 이번 인물포커스에서는 성균관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거치고 현재 대학원 강의부터 창의적 글쓰기를 비롯한 학부생 강의도 담당하고 있는 국어국문학과 이봉범 교수를 만나보았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자기소개는 여전히 쑥스럽습니다만, 저는 국어국문학과에 1983년에 입학해서 학부 및 대학원 석․박사를 줄곧 성균관대에서 마쳤고, 지금은 강의와 함께 문학 연구를 하고 있는 평범한 서생(書生)입니다. 한국 문학(화) 연구의 전문 학회인 ‘상허학회’의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고요.


Q. 성균관대학교를 다니던 교수님은 어떤 학생이었는지, 그리고 그때 학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시골 벽지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서울에 대한 동경이 매우 컸고 또 어렸을 때부터 품고 있던 문학에 관한 막연한 선호가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를 지원하게 된 동기였습니다. 서울역에 내려 마주 선 대우빌딩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당시 서울로 유학 온 대다수 지방 출신 대학생들의 보편적 경험이었다고 생각되는데, 문명화된 서울은 너무 낯선 공간이었고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는 판이한 현실 사회에 큰 배신감, 분노, 절망을 느낀 가운데 이를 넘어설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규율된 대학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낭만적 열정이 충만했던 시절이었죠. 당위와 비겁함의 충돌 속에 그래도 세상의 부조리에 맞섰던 대학생활이 결코 자랑할 것은 못 되나 그렇다고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당시 권위주의 통치의 절정기에 학생운동의 중요한 거점이었던 성균관대의 분위기에 힘입은 바 큽니다. 가끔 정물화와 같이 모든 것이 고요하기만 한 금잔디광장 주변 벤치에서 민주화의 열정과 치기 어린 낭만이 교차했던 그 시절 역동적인 성균관대를 떠올리며 그리움이란 낱말을 되새겨봅니다.


Q. 다니던 학교에 다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어떤 느낌인지, 학생들을 가르칠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1997년부터 성균관대에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만,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참 어렵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절실히 느낍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 되어야 하는데, 학생들에게 배우며 사유의 건강함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받으면서도 학생들에게 정작 학문과 인생에 무슨 보탬을 하고 있는가에 반성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자발적 꼰대’를 자처하며 강의에 임하는데, 제가 강의하면서 제일 강조하는 것은 인간, 역사, 사회, 자연, 기계 등에 대한 정시(正視)입니다. 효율성과 능력주의가 배타적으로 강조되는 시대 흐름 속에서 전공 분야의 학술적 의제든 사회 공공의 어젠다이든 기존의 왜곡된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자기만의 눈과 가슴으로 바르게 보고 분명한 입장을 정립한 가운데 더 나은 사회를 상상, 전망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으니까요.  


Q. 오랫동안 대학원 강의를 하시다 올해는 학부생 대상으로 ‘현대 소설의 이해’ 강의를 하시게 됐는데, 오랜만에 국어국문학과 학부생들을 만나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전공 강의는 꽤 오랫동안 대학원 강의 위주로 하다가 이번 학기에 다시 학부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온/오프라인 강의 병행이라 여러 제한이 있으나 학생들의 열정적인 참여에 많은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사전 질문지 작성, 발표 및 토론, 사후 소설 텍스트 해석으로 연결되는 강의 시스템의 의의를 잘 살리고 있고요. 이를 통해 한국문학사(소설사)의 저변과 문학만의 고유한 영역, 즉 역사에 기입되지 못한 뭇 인간들의 삶과 마음을 탐색하면서 문학이 지향해야 할 바를 전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이 매우 큽니다. 또 그러리라는 믿음이 갑니다.


Q.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창의적 글쓰기’ 강의를 하고 계신데, 글쓰기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창의적 글쓰기란 과목은 제가 제일 즐겁고 보람이 큰 강의입니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글쓰기를 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보니 글쓰기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과 과제를 위한 과제로 접근하는 학생들의 기능적 인식 태도를 교정하고 내용과 형식을 제대로 갖춘 창의적 연구 리포트를 작성해내는 일련의 과정을 같이 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고달프겠지만 나름의 성취와 함께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창의성이 화두로 부상한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만, 알고 보면 창의성 자체가 매우 추상적이잖아요. 인간과 세계에 대한 본질적 접근,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기, 은유적・반어적・역설적・유추적 상상력에 대한 음미 등을 통해 정답 획일주의를 벗어나 창의성의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기초를 글쓰기를 통해 함께 모색해보는 것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Q. 연구부분에서 교수님께서 관심 있는 분야는 무엇이고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명색이 문학 연구자인데 이렇다 할 학술적 성과를 산출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연구 영역은 검열, 매체, 전향, 번역, 문예 조직, 등단 등 문학의 역사적・사회적 존재방식을 규정지었던 문학 제도들에 대한 탐색에 집중하다 최근에는 이를 확장시켜 냉전 문화(학) 연구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전후 세계질서가 냉전체제로 재편되는 과정과 한국전쟁을 계기로 더욱 공고화된 분단체제하 한국 문화를 거시적으로 규율한 핵심적인 기제가 ‘냉전’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냉전, 특히 한국 사회 전반에 장기 지속된 내부 냉전의 미망(迷妄)을 문화적 영역을 중심으로 역사화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탈냉전 나아가 신냉전 시대에도 유효하다고 보며, 이를 통해서 역사적 진실에 조금 더 다가서는 동시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문화(학)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타진하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Q.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 소설 한 권을 추천해 주신다면 어떤 책을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최근 문해력(리터리시)의 심각성이 교육 및 사회의 중요 문제로 대두된 바 있습니다만, 저는 독서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아울러 삶의 다채로운 양상을 간접 경험하는 것이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을 개척하고 가꿔가는데 필수적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다독과 함께 특히 정독(精讀)을 통해서 다양한 질문을 생성하는 의의와 필요성을 누차 강조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소설을 추천한다면 조지 오웰의 『1984년』(1949)을 정독했으면 합니다. 널리 알려졌듯이 정보의 독점과 감시에 의해 통제되는 전체주의적 지배상을 예리하게 비판한 소설이죠. 이 작품이 냉전의 맥락에서 반공산주의 프로파간다용으로 왜곡 또는 변용되는 과정을 거쳤으나, 이러한 관점에서 벗어나 정보사회의 도래 및 자유, 정의, 민주주의의 훼손이 도처에서 자행되는 작금의 현실 안팎을 제대로 성찰할 수 있는 거울이 되리라 봅니다.


Q.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국어국문학과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요즘에는 대학 진학이나 전공 선택에 대한 인식도 기회비용을 고려한 경제적 분석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자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과 변화된 대학의 기능을 감안할 때 인문학 및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라고 권장하기는 어렵겠죠. 그런데 국어국문학, 특히 문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를 기본으로 하며 따라서 언어, 역사, 철학, 사회․경제, 심리,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종합적 안목이 요구됩니다. 어쩌면 문학 자체가 융합학문일 수 있습니다. 역사, 과학, 통계로는 설명될 수 있는 인간 존재의 다종다양한 실상 및 그 심연과의 만남을 통해서 인간의 숭고함을 경험할 수 있는 독보적인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시대에 문학의 가치와 그 역할은 필연적으로 증대될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생들에게 조언과 응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대학(university)의 어원적 의미처럼 수많은 학문 분야 가운데 국어국문학을 선택한 것은 나름의 욕망과 삶의 비전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다소 막연하고 또 전망이 불투명할 수 있겠으나, 국어국문학은 인간의 본질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나의 전공이 매우 값진 것임을 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주어진 것, 물려받은 것을 딛고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데 인간의 위대함이 있다고 하잖아요. 물론 복수 전공을 통해 취업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겠죠. 다만 특유의 열정과 자유롭고 발랄한 상상력을 자원으로 해서 국어국문학의 새로운 가능성과 지평을 개척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럴만한 충분한 자격과 능력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