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자라 선생님이 되었다
– 이유표 교수

  • 482호
  • 기사입력 2021.12.28
  • 취재 송명진 기자
  • 편집 김윤하 기자
  • 조회수 5781

1998년, 설레는 마음을 끌어안고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한 학생이 있다. 금잔디 광장과 명륜당의 은행나무를 기억하는 이 학생은 성균관에서 자라 세상에 나갔고, 다시 성균관에 돌아와 강단에 섰다. 그는 후배들을 제자로 맞이하는 지금의 삶에 감사와 행복을 표한다. 이번 인물포커스에서는 우리 대학의 동문이자 교수인, 이유표 교수를 만나보았다. 교수자로서, 또 연구자로서 이유표 교수가 써내려 가고 있는 이야기는 무엇을 담고 있을까.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유표입니다. 저는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98학번으로 입학해 2004년에 학부를 졸업했습니다. 학부 졸업 이후에는 석사 3년, 박사 7년, 총 10년간 중국 북경대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했답니다. 지금은 동북아역사재단에 있고요,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역사학 입문’ 수업을 맡아 진행했어요. 


Q. 역사학을 전공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학창시절의 저는 역사소설을 참 좋아했습니다. 삼국지나 수호지 같은 고전도 좋았지만, 특히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역사소설에 빠져 있었어요. 그땐 그런 것이 역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역사를 공부하러 대학에 왔습니다. 대학에 입학해 공부를 하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죠. 소설과 진짜 역사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요. 소설이 되기 위해 가공된 역사. 오직 그것에 흥미를 느껴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으니 처음엔 실망이 참 컸습니다. 저는 그렇게 시작하게 된 역사 공부를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 것이지요(웃음).


Q. 대학에 입학하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역사학에 대해 많이 알게 되셨을 것 같아요. 지금의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역사학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이번 학기, 역사학 입문 중간고사에서 학생들에게 ‘여러분이 생각하는 역사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어요.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시험문제였죠. 이에 한 학생이 ‘역사는 끊이지 않는 동영상이다’ 라는 답을 적어 냈어요. 그 끊이지 않는 동영상 속에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꺼내 편집을 하는 과정이 역사학을 하는 과정인 것 같다고 덧붙이면서 말이죠. 역사학의 매력을 묻는 질문을 받으니, 문득 그 학생의 답안이 떠올랐네요. 저도 이에 공감을 하기 때문이겠지요. 과거의 사실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고 조합하는 것, 저에게는 참 즐거운 과정이랍니다. 물론 악마의 편집을 조심해야하긴 하겠지만, 저는 그것까지도 역사학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보기 좋은 이야기를 짜맞추고자 하는 나의 이기심과 실제 역사 사이에서 고민 하는 과정이 좀 힘들긴 해도, 그 가파른 언덕을 넘었을 때의 희열이 굉장히 크거든요.


Q. 성균관대의 학생이던 교수님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그때 그 시절을 들려주세요. 

저도 그땐 금잔디 광장에서 친구들과 둘러 앉아 노는 게 제일 즐거운 평범한 대학생이었습니다. 잔디 위에 앉아서 이야기 하고, 술도 마시고요. 별건 없지만 그 별거 없는 것들로 웃으며 밤을 샜던 기억이 참 많네요. 도대체 무슨 깡으로 집에도 안 들어가고 그렇게 놀았었는지(웃음). 그리고 그때는 한 학기에 한 번 정도 성균관에 가서 수업을 하곤 했었죠. 비천당 앞에 선생님과 학생 모두 모여 앉아 이야기도 하고, 은행나무 앞에서 사진도 찍고요. 소중한 그때 추억들이 아직까지도 새록새록 기억이 납니다. 이건 정말 성균관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요. 덧붙이자면 제가 입학할 때 지금의 600주년 기념관과 지금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경영관이 막 지어지고 있었답니다. 우리 학생들은 저보다 더 많은 것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특별하지 않은 것도 대학생 때 하면 특별한 것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예를 들면, 캠퍼스 커플 같은 것이요. 전 다 해봤는데, 딱 그걸 못해봐서 후회가 좀 되네요(웃음).



Q. 지금 교수님의 모습에 큰 영향을 준 학창시절의 경험이 있을까요? 

제가 느끼기에 사학과 선생님들은 굉장히 엄격하세요. 학교에 다닐 때, 과제를 제출하면 꼭 빨간펜으로 세세하게 의견을 달아 주시던 교수님이 계셨어요. 그땐 제 과제에 줄줄이 달려있는 그 빨간 표시들이 어찌나 보기 부끄럽던 지요. 어릴 땐, 그 선생님이 참 엄격하신 분 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도 누군가의 선생님이 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던 거죠. 그런 자세한 피드백을 해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학생들의 과제를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 보셨다는 것이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어 하신다는 거에요.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 대한 열과 성이 없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고요. 지금도 그분이 학교에 계시거든요. 제가 대학에서 강의 할 때는, 그분을 닮으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물론 쉽진 않지만, 부단히 노력하는 거죠. 


Q. 현재 교수자이자, 연구자의 삶을 살아가고 계신데요. 지금 삶의 방향성은 언제쯤 구체화 된 것인가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학창시절 내내 역사를 좋아했고 역사가 하고 싶었습니다. 역사 소설의 영향이었죠. 큰 틀에서 보면 제 삶의 방향성은 꽤 오래전에 정해진 셈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제가 언제부터 ‘역사학자’를 꿈꿔왔냐고 묻는 질문인 것 같아요. 이 질문에 저는, 군대에 있을 때부터라고 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린시절 역사라고 생각해 동경해왔던 것들이 실제 역사가 아닌 것을 알게 되고, 좀 당황스러웠어요. 그때 마침 군대에 가게 되었고요. 군대에서는 이 당황스러운 마음을 좀 가다듬고자 애를 썼던 것 같아요. 혼자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깊이 하다 보니 그냥 전역하면 역사를 계속, 더 열심히 공부해 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더라고요. 저는 중국사를 공부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갖고 전역을 했고, 학교에 돌아와 조금은 무모한 선택을 하게 돼요. 여기서 무모한 선택이라 함은, 복수전공이었는데요. 중어중문학, 유교철학의 복수전공을 신청했고 그렇게 삼전공을 하게 되었답니다. 중국사를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진지하게 고민하여 결정한 것이에요. 아마 저는 그때부터 이 길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Q.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계세요. 연구자로서 느끼는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앞서 역사를 ‘편집의 과정’ 이라고 비유한 바 있는데요. 그 편집의 과정에서, ‘악마의 편집’에 대한 유혹이 끊이질 않거든요. 보통 연구를 시작할 때 그럴듯한 이야기를 그려놓고 연구를 진행하게 되는데, 늘 제가 예상한 방향대로 연구가 흘러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때 말을 그럴싸하게 맞추면 쉽고 빨라요. 하지만 저는 역사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래선 안되고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 딜레마 때문에 늘 약간의 스트레스를 느끼며 연구를 하고 있죠. 그런데 이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는 어려움입니다. 쉬운 길을 택하려는 나의 이기심을 외면하고 연구를 성공적으로 완성해냈을 때 맛보게 되는 카타르시스가 그 돌파구가 되지요. 


Q. 지금은 중국 고대사를 깊이 있게 공부하고 계신 거로 알아요. 세부 전공 선택의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대학에 다닐 때 동아리 활동을 성균서도회에서 했어요. 성균서도회는 붓글씨를 쓰는 동아리인데요. 입부해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은 줄긋기였고, 이 줄긋기를 마치자마자 배운 것이 ‘전서’였어요. 저는 이 ‘전서’가 참 재미있었답니다. 그냥 보기엔 꼭 상형문자 같이 생겼는데, 이걸 풀어내면 지금의 한자와 비슷한 모습이 되어요. 저는 이 ‘전서’ 를 시작으로 고문자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제가 중국 고대사에 관심이 생겨 전공까지 하게 된 배경에는, 흥미로운 고문자가 있었답니다. 이 ‘전서’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은데요. 전서는 줄만 그을 줄 알아도 쓸 수 있는 글씨에요. 제 지도 선생님께서는 늘 서예의 기초를 닦는 데에 ‘전서’ 만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곤 했었죠. 저에게는 선생님의 이 말이, 무언가를 시작하고자 한다면 기본기를 잘 닦아야 한다는 소리로 들렸답니다. 사실 저도 그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곱씹을수록 깊이가 있는 말이더라고요. 어쨌든 저는 저에게 나름대로 각별한 의미인 ‘전서’를 만나 세부 전공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Q. 앞으로 하고 싶은 연구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역사학이라는 것은 사료를 바탕으로, 기록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제가 주로 연구하고 있는 것은 기원전 16세기부터 8세기 정도까지의 역사인데요. 이 당시를 대변하는 기록은 책으로 전해지는 기록과 땅속에서 나오는 기록 두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어요. 저는 그동안 주로 땅속에서 나오는 기록을 기반으로 하여 책으로 전해지는 기록을 보완하는 식의 연구를 해왔고요. 그런데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땅속에서 나오는 기록과 책으로 전해지는 기록이 크게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그동안은 이런 경우에 땅에서 나오는 기록에 더 큰 비중을 두어 글을 써왔는데, 앞으로의 연구에서는 책으로 전해지는 기록인 고전의 가치를 재평가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Q. 순수 학문의 영역이라고 느껴지는 ‘역사’, 어떻게 하면 역사를 일상에서 피부로 느껴볼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 사람들은 모두 역사를 좋아해요. 제가 어디 가서 역사를 전공한다고 하면, 굉장히 흥미로워하면서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아쉬운 건, 그분들의 작은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갈 만한 무언가가 없다는 사실인 것 같아요. 그래서 손쉽게 접해서 술술 읽을 수 있는 역사서적들이 충분히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건 저와 같은 역사학을 하는 사람들의 몫이겠지요. 혹자들은 이런 ‘역사의 대중화’가 연구자의 몫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달라요. 저는 역사를 조금 더 친근한 것으로 만드는 것에도 분명히 소명을 느끼고 있거든요. 저희가 더 열심히 해야죠(웃음). 제가 개인의 몫으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나의 자취가 역사가 되는 날이 온다고 생각해보는 것이에요. 그러면 역사가 평범한 개인에게도 충분히 쉽고 의미 있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조금 더 나아간다면, 역사적 인물에 자기자신을 대입해 볼 수도 있겠죠. 스스로가 이순신, 이방원이 되어서 역사적 사건에 좀 더 진지하게 다가가는 거에요. 어쨌든 이 전략들의 기반에는 역사를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로 만든다는 발상의 전환이 숨어 있어요. 


Q. 약 10년가량의 오랜 유학 생활을 하셨어요. 유학을 계획중인 학생들을 위한 조언 한마디 부탁드려요.

제가 생각하기에 유학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고요, 두번째로 중요한 것이 ‘어울리는 것’ 이에요. 유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부이지만, 유학 가서 공부’만’ 하고 돌아올 수는 없는 노릇이거든요. 특히, 저의 경우는 장기 유학생이었기 때문에 이 ‘어울림’의 가치가 상당히 중요했죠. 그들의 터전이자, 머무는 동안은 나의 터전인 그곳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Q. 인간 ‘이유표’ 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부적으로는 저의 무모함이 항상 저를 움직이게 했던 것 같아요. 앞뒤 재지 않고 일단 부딪혀서 얻어낸 것들이 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무모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따라가보니, 그곳에 제 가족들이 있더라고요. 단편적인 예지만 제가 대학 졸업 후 유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도 부모님께서는 저의 무모함을 그대로 존중해 주셨었죠. 이렇게 받은 것이 크다 보니, 제가 어떤 결정을 해서 한걸음 나아가야 할 때마다 그분들의 존재가 제 결정에 책임과 무게를 실어 주었어요.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해보고 싶은데요. 제가 석사 입학시험을 보러 갔을 때 고사장을 잘못 찾아간 일이 있었어요. 유학생들은 시험을 따로 보는데, 제가 그걸 모르고 중국 학생들이 시험을 보는 고사장으로 찾아간 겁니다. 고사장을 잘못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부리나케 달려 원래 제가 시험을 쳐야 할 고사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늦었죠. 저를 들여 보내주지 않더라고요. 낙담한 채로 발길을 돌려 집에 가는데, 그때 문득 내 무모함을 믿어주시는 부모님 얼굴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다시 고사장으로 가서 제발 들여 보내달라고 사정을 했어요. 결국 저는 그날 무사히 석사 입학 시험을 칠 수 있었고요.

 


Q.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여러분이 하루하루에 의미를 두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별거 아니게 지나갈 날도 의미를 두면 더 뜻깊은 하루가 되기도 하고, 이미 별거 아니게 지나가버린 날도 의미를 두면 뜻깊게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을 살다 보니 알게 되었어요. 하루하루에 의미를 두는 것을 시작으로, 본인의 삶 전체에 의미를 둘 수 있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고요. 삶을 허투루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누군가의 하루는 그 사람의 역사에서 아주 크고 중요한 지점이 된다는 점을 꼭 기억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