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어드바이저 <br> 천영록 동문

로보어드바이저
천영록 동문

  • 342호
  • 기사입력 2016.02.26
  • 취재 이수진 기자
  • 편집 이수경 기자
  • 조회수 17067

[편집자 주 :이번달 인물포커스 주인공은 특이한 직업을 가진 동문이다. 누굴 취재할까 고민하던 중 수소문하니 주인공을 잘 안다는 지인이 추천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귀가 솔깃했다. 기자가 학생인지라 방학에는 강원도 집에 있다. 주인공을 만나러 가기가 어려워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를 직접 만나고 싶었으나 사정상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에게 궁금한 점을 보내니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36살, 조만간 두 아이의 아빠가 될 천영록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5명의 파트너와 '두물머리'라는 회사를 차려서 온라인 투자자문(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 '불리오'를 준비 중입니다. 우리 대학에 01학번 사회과학계열로 입학해 2008년도에 경제학부를 졸업했어요. 증권사 프랍 트레이딩 부서에서 파생 상품 트레이딩을 하면서 커리어를 시작했고, 중간에 브로커나 펀드 매니저 등 몇 번의 외도가 있었지만 트레이더로 커리어를 마쳤어요. 취미는 글쓰기라서 우리 학교 커뮤니티 '성대사랑'에서도 글을 가끔 올렸고, 오프라인 모임이나 강연도 했습니다. 성대사랑을 통해 만난 후배들이 만들어가던 훌륭한 영리/비영리 단체에 개인적으로 투자하면서 깊은 인연을 맺기도 했습니다. 학부시절에는 경제학부 랩 소모임 '진로'를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어요. 지금까지 작게나마 명맥이 이어져 오는 것을 보면 뿌듯합니다.


창업 전에는 프랍 트레이더(prop trader) 였어요. 트레이더는 인기 직업이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순위는 많이 밀렸지만 트레이더가 2008년 이전에는 해외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직업 1위였습니다. 프랍 트레이더는 증권회사의 자기자본, 즉 회사의 돈을 가지고 특정한 운용기법으로 절대 수익을 추구하는 일종의 특수부대입니다. 증권회사가 투자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만 절대 수익을 추구하는 기법은 이론적으로 거의 불가능해요. 프랍 트레이더들은 이론 밖에 실재하는 모순된 존재들이라 할 수도 있죠. 일정한 한도를 주면 프랍 트레이더들이 증권을 샀다 팔았다 하면서 수익을 가져다줍니다. 현대 재무이론은 전반적으로 이렇게 꾸준한 수익을 일으키는 존재들을 부정하거든요. 가위바위보를 백 판 연속으로 이기는 운 좋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저 우발적으로 존재할 뿐이라고 생각해요.

프랍 트레이더들은 꾸준한 수익을 추구하고 꾸준한 수익을 만들어 내는 것이 직업입니다. 수익을 잘 내는 사람과 못 내는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수익의 차이가 왜 생기는지는 설명하기 힘들어요. 수익을 못 내는 사람들을 빨리빨리 해고하면 수익을 내는 사람들만 모여있는 조직이 어떻게든 만들어진다고 할까요. 퇴직률이 굉장히 높은 직업입니다. 제가 본 100명의 트레이더 중 거의 90%는 1년 안에 잘린 것 같아요. 죽을 힘을 다해 매매원칙을 정립시키고 꾸준한 수익으로 연결한 사람들은 10년 정도 제법 안정된 수익을 낼 수 있고요. 굉장히 신기한 업무죠. 증권가에서는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을 '선수'라고 불러요. NBA나 프로야구 선수와 비슷한 것 같아요. 어떤 선수는 끝까지 해내지만 어떤 선수는 재능이 있어도 중도에 탈락하잖아요. 현실은 모든 것을 이론적으로만 얘기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인생살이가 비슷하죠. 학벌이 좋거나 키가 큰 것과 같이 한 두 가지 조건이 좋다고 이룰 수 있는 성취는 거의 없어요. 복합적인 무엇인가 자신만의 촉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선물옵션 트레이딩을 주로 했어요. 외부에서 보면 대단히 어렵고 복잡해 보이지만 종국에 가면 아주 간단한 원칙을 지키는 반복적인 업무입니다. 대신 중요한 인생의 원리들이 이런 단순한 업무에도 모두 녹아 있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가끔 트레이더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말 구체적으로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시니까 좀 더 입체적으로 설명해 드릴게요.

트레이더는 통상 모니터 8개 정도에 자기가 보고 싶은 차트와 경제 정보 등을 띄어놓고 자기가 보고 싶은 차트와 경제 정보등을 계속 분석해 가며 본인이 생각하는 타이밍에 증권을 매수하거나 매도하면 됩니다. 경제지표를 보며 진입하고 청산하는 타이밍에 따라 생기는 경우의 수는 우주에 있는 원자 수보다 많을 거에요. 그중에서 자신이 보기에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 인과관계나 선후관계를 따져서 실험을 해보죠. 많은 돈이 걸려있고 많은 선수가 파헤치는 분야라 웬만한 선후관계는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금융공학 교수님들이 모여 만든 시스템도 대부분 실패해요. 더 배고프고 더 악착같은 경쟁자들이 널려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혹자는 시장구조의 미세한 틈새를 발견하곤 합니다. 그 틈새를 수익으로 연결시키는것이 트레이딩이에요. 정규교육으로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그런 틈새를 발견하는 것이죠. 그것을 집행할 수 있는 용기와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에도 버틸 수 있는 강인함, 아니다 싶을 때 내려놓을 수 있는 유연함, 큰 실수를 했을 때 빨리 잊을 수 있는 대범함이 두루 필요해요.

다시 말하지만 인생살이와 비슷합니다. 자기 자신의 능력과 통찰을 신뢰하고 어느 레슬러의 말처럼 '누구보다 땀을 많이 흘렸기 때문에 금메달을 딸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노력에 근거한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보다 땀을 많이 안 흘린 게 확실한 사람은, 남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길 수가 없겠죠.

트레이더나 펀드 매니저를 꿈꾸는 후배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생각만큼 우아한 직업이 아닙니다. 대부분 학생은 펀드 매니저가 세계 경제를 제갈공명처럼 읽어내서 포트폴리오를 좌지우지하는 화려한 하루를 보낼 것으로 상상해요. 실상은 세계 경제를 여느 교수님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남들 의견과 다르면서도 검증 가능한 독자적인 이론을 끊임없이 연구합니다. 그런데도 이들 가설의 대부분은 시장 흐름과 잘 맞지 않는 실패와 좌절로 끝나요. 돈을 잃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잃는다는 것은 정말 뼈아프죠. 정신력 대다수를 좌절감과 싸우는 데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남의 소중한 돈을 다룬다는 면에서 좋게 말하면 부담이 엄청나고, 나쁘게 말하면 더러운 꼴을 많이 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뭐 하고 있나 싶죠. 이 동네에는 라이프 워크 밸런스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이 없어요. 대부분 '이러다 요절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노력해도 대다수는 실패하니깐요. 압박감 때문에 업계를 떠난 이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매일매일 기가 막히게 경제의 흐름을 읽어 포트폴리오를 지휘하는 기분은 거의 느낄 일이 없을 겁니다. 마이클 조던이 NBA 결승전을 이겼을 때 정도의 빈도 아닐까요. 남이 보기엔 마이클 조던의 삶은 매일 파티겠지만, NBA 선수들은 그저 매일 피땀 흘려 연습하여 승패를 반복해가는 것으로 생계를 꾸립니다. 운 좋게 파티에 가더라도 파티가 끝나면 다음 날부터 다시 경기를 준비해야 해요. 하지만 90년대에 흑인이 돈 버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가 농구였듯 국내에서 팔자를 바꾸는 방법의 하나는 '선수' 생활인것 같아요. 근래에는 대졸 구인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후배들에게 이런 '선수'의 삶을 추천하겠냐고 묻는다면 젊을 때는 항상 강력추천 했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더 어릴 때는 중산층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렇게 경제적 보상이 큰 몇몇 직업에 목숨 바치듯 도전하는 거로 생각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든 걸 쏟아부었고, 그렇게 하면 어떻게든 현실을 돌파할 거라 믿었거든요. 그때는 밤낮으로 고민하며 만들어진 '촉' 같은게 있었습니다. 제 경쟁자보다 앞서나갈 여지가 있는 해볼 만한 도전이라 생각했고요. 누구라도 노력만 한다면 정도의 차이일 뿐 원하는 곳에 이른다는 확신이랄까 꿈 같은 게 있었죠. 나이가 조금 더 드니 그런 치열함과 감이 둔해져서인지, 저의 도전도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던 젊은이의 우발적인 성취가 아니었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꼭 이 일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셔야 합니다. 젊은이가 세상일을 '감' 떨어진 어르신 기준으로 보면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어요. 자신 안에 뭔가 특별한 전투의지와 승부욕이 있다면 뛰어들어 보세요. 운칠기삼. 운은 늘 알 수 없지만, 운의 칠 할은 만들어집니다. 일찌감치 포기해서 살아간 사람보다 실패하더라도 악바리처럼 부닥쳐본 사람들 정신건강이 뜻밖에 훨씬 좋아요. 전자는 평생을 핑계를 찾고 남을 깎아내리고 흉보며 사는 걸 많이 봤습니다. 극단적으로는, 포기와 체념을 익힌 사람들이 가정폭력과 부정부패 등 온갖 사회적인 악질이 되기도 해요. 후자는 자기 자신과 인간의 위대함을 믿으며 살아가고 언젠가 현실도 그런 믿음에 맞춰서 조금씩 변해가죠. 성인이 되면 누구나 못난 사람을 피하고 긍정적인 사람을 만나고 싶어해요.


학부시절에도 창업에 대한 꿈이 있었지만 창업이라는 구체적인 개념은 아니었어요.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생각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프로젝트팀을 만들고 싶었죠. 평범해지기 싫다는 것에 대한 절박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주어진 삶을 살다가는 주어진 삶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느낌.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중산층 삶에 붙잡히면 하고 싶은 것을 참고 사는 인생이 되잖아요. 저희 부모님을 포함해서 주위 모든 어른이 그런 중산층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삶을 올인 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에요.

저희는 90년대를 목격한 세대였어요. 빌 게이츠가 세계 최대 부자가 되고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바꾸었죠. 금융 자본주의가 세상을 휩쓸고 이데올로기 논쟁이 구소련의 침몰과 함께 사라지고. 고든 게코가 탐욕을 설파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창의적으로 인터넷 세계를 열어가는 과정을 지켜봤죠. 무엇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인류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시대를 모두 목격하게 되었어요. 중산층 삶을 동경하는 것을 유전자로 받아들이기 힘든 게 정상이죠. 그런데도 IMF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는 세대기도 했고요. 모든 세대는 각자의 기회와 트라우마를 앓고 있을 거예요. 어느 순간에 고개를 어디로 돌릴 것인지 개인이 선택해야 하죠. 저는 막연히 기회에 더 끌렸던 것 같아요. 사람은 힘들수록 밝은 면을 찾고 희망을 찾고자 하는 존재인 것 같아요.

제가 비즈니스를 배운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에요. 지금도 잘 모릅니다. 학창 시절엔 힙합 그룹이나 해커 그룹, 게임 개발사 같은 단단한 경제 공동체를 꿈꿨어요. 실제로 이래저래 뜬구름 잡는 많은 프로젝트를 만들었어요. 녹음실을 차리고 기획사라고 밤새워 작업 했고요. 전반적으론 창업이 아니라 공동체 같은 걸 꿈꾼 것 같습니다. 두 가지가 어떻게 다르며 어떻게 같은지 이해 못 했어요. 창업이란 자신의 업, 자신의 운명을 만드는 거잖아요. 그때도 그런 카르마를 주체적으로 찾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죠.

창업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는 없고 다만 때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이 '때'라는 것이 다양한 맥락의 의미가 있습니다. 커리어적인 자신감과 불안감의 균형의 정점?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의 정점. 내가 몸담은 업에 대한 사랑과 회의감의 갈등. 우리 업종이 세상에 주는 가치와 나의 역할에 대한 고민. 앞으로 남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열망 등이 모종의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때'가 되어 작은 한 걸음을 옮겼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창업하신 분 중에 혹자는 '그분이 오셨다'라고도 하더라고요. 내가 잘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은 없었지만 남들보단 대체로 잘할 수 있을 것이란 경험적인 자신감이 있었고, 그때까지 품어왔던 커리어상의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를 품어보고 싶었어요. 한편으론 후배들에게 항상 도전하라고 외치다 보니 저 스스로도 도전하는 자세로 살아야겠단 생각도 들었어요.

로보어드바이저는 일종의 알고리즘이에요. 정해진 알고리즘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듯 작동하는 알고리즘이죠. 3월에 이세돌과 구글의 바둑 알고리즘이 대국을 두잖아요. 컴퓨터가 바둑만큼 복잡한 경우의 수도 처리할 수 있게 된 마당에 금융의 의사결정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많겠어요. 다만 금융에서도 바둑만큼이나 너무 많은 변수가 있기에 그것을 집대성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어려워요. 로보어드바이저는 PB 들이 제공하는 금융자산의 투자와 관리에 대한 자문을 조금 더 자동화하는 기술이에요. 마치 로봇과 같이 컴퓨터가 인공지능 알고리즘 등을 동원해 인간이 다루기 힘든 다양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해준다는 것이죠.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 자체가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수십 년 전부터 금융 자문의 자동화는 시도되고 있었어요. 다만 근래의 빅데이터나 모바일 기술과 딥러닝 등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발전이 계기가 되어 아주 큰 혁신의 전모가 보이는 거죠. 마치 스마트폰의 발전에 따라 소프트웨어의 유통 과정이 전부 바뀌었듯이 금융상품의 유통과정도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여요.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는 미국에서 현재 약 20~200조 원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어요. 어디까지가 로보어드바이저냐는 이견들이 있어 추정치가 차이 나지만 일각에서는 2020년까지 2000조 원 수준으로 성장할 것을 예상합니다. 단순히 말해서 투자자문인을 찾아가는 대신에 앱을 통해서 간단하게 금융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여러 가지 스마트 기능을 넣어 포트폴리오를 자동으로 재조정하며 경제 상황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실시간 서비스에요. 저렴하고 편리하며 기다릴 필요가 없고 투명할 뿐 아니라 잘 모르는 투자자문사보다 안정적이고 더 현명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장점이죠. PB를 활용하지 못하거나 PB를 만나며 느껴야 하는 모든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보완 서비스입니다. 요새 말로는 O2O 라고 할 수도 있고 on-demand 라고도 할 수 있어요. 빅데이터, 머신러닝, 핀테크 등 사실상 모든 핫한 키워드들을 포괄하는 서비스입니다. 사실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 상당히 모호한 초기 단계의 업종이기도 해요.

개인적으로 로보어드바이저라는 키워드가 조금은 왜곡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드렸듯이 이 기술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람과 기계의 협업에서 가장 큰 시너지가 있습니다. 단순히 사람을 로봇으로 대체하는 어감을 주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로보어드바이저는 흔히 아이언맨의 쟈비스와 같이, 금융뿐 아니라 전체적인 비서 역할을 해주는 방식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금융에서 주도하는 기술적 발전보다 인공지능 비서 기술을 주도할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금융은 그중에서 일부를 선택하여 활용할 뿐이지요.



- 로보어드바이저로 창업하다

로보어드바이저를 창업 아이템으로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다양한 변수에 대한 고민과 분류를 누구보다 열심히 해왔기 때문이에요. 트레이더만 고민하는 영역들이 있는데 트레이더가 아닌 사람이 접근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거든요. 제가 잘할 수 있고 저 외에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분야라는 것은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죠. 둘째는 금융의 혁신적 발전에 대한 갈망 때문이에요. IT의 발전 속도보다 금융은 발전 속도가 매우 더뎠어요. 특히나 일반 금융상품 소비자들은 지난 20년간 아무런 변화를 못 느꼈을 거에요. 오히려 정보의 비대칭으로 일반인들은 점점 금융의 혜택에서 멀어지는 느낌이에요. 이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이슈거든요. 부의 양극화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요. IT 환경과 기술의 변화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점점 커지는데도 금융의 변화는 느리기만 해요. 이는 금융인으로 청춘을 다 바친 제게 너무나 갑갑하고 아쉬운 부분이었죠. 금융인으로서 사회에 우리나라와 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증권사는 새벽에 출근했고, 나에게 안 맞는 정장을 다 같이 입었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술자리에도 많이 불려 다녔고, 여러 가지로 주어진 환경에서 배우던 시절이었어요. 지금은 아침에 가족과 놀다가 조금 늦게 출근하고 편한 옷을 입고, 내가 모든 것을 직접 선택해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환경에서 배우고 있어요. 일하는 시간은 전반적으로 비슷하지만 전체적인 효율은 더 높은 것 같아요. 물론, 돈을 못 벌고 있으니까 직업에 비교할 게 아니라 휴가나 휴학 시기에 비교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증권사의 장점은 머리가 짜릿할 정도로 높은 경쟁구조에요. 한순간도 편히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경쟁이 드세죠. 주위의 경쟁자를 인식하면 대학에서는 구경조차 못 했던 뛰어난 인재들이 즐비해서 자극이 많이 돼요. 또래들에게 받는 건설적인 자극은 인생에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습니다. 저보다 두세 살 많은 형들이 몇십 억을 벌고 업계에서 인정받는 모습은 대학에서 좋은 학점 받는 걸 목격하는 것과 차원이 달라요. 그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인사이트를 얻는 관계를 유지하려고 미친듯이 더 열심히 했었어요. 눈으로 안봤다면 상상하지 못했을 세상이에요. 많은 증권인들이 그런 사람들의 존재를 모르고 살기도 하고요.

증권사의 단점은 너무 아드레날린 러쉬 속에서 산다는 거예에요. 흥분도가 높고 정신 없이 바쁘다 보니 삶의 본질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단순히 삶의 차분함과 정신적 평화, 가정적 가치를 잊게 되는 일상적인 바쁨이 아닙니다. 세상의 기본 원칙을 망각하는 효과가 있어요. 예를 들어 고객이 가장 소중하다든지, 나는 누구를 위해 일하지에 대한 자문. 이 비즈니스가 세상에 어떤 가치를 주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 등에서 멀어지기도 합니다. 워낙 돈이 중심에 있는 사회이고 돈이 수많은 사람의 행복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요소라서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가 거의 없죠.

- 업무, 음악의 연장선

학부시절 개인적으로 랩 창작과 녹음을 열심히 했어요. 음악이 업무와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아요.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열심히 음악을 하며 놀아본 사람이라면 어떤 일을 시켜도 웬만하면 잘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힘들 때마다 음악을 하며 힘들었던 순간들을 생각했고, 문제를 해결한 경험들을 되새겨 보았거든요. 음악을 하던 세월이 신입사원부터의 삶의 가이드라인이 되어준거죠. 많은 메타포와 인사이트를 주기도 했어요. 저는 시장의 흐름이 리듬과 같다고 생각했죠. 리듬을 잘 타는 것에 대해 수없는 밤을 지새웠듯이 시장의 맥박을 잘 타는 것에 대해 비슷한 식으로 연구를 한거에요. 바이얼리니스트라면 클래식 선율에 시장을 비유했겠죠. 자기가 외운 경전이 있다면 그 경전의 내용을 토대로 모든 세상 현상들을 재해석 할 수 있듯이, 한두 가지 사랑하는 취미가 있으면 그것이 삶의 참고서 같은 역할을 해준다고 생각해요.

- 어려움과 보람

트레이더라는 직업은 에너지 대부분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쓰는게 맞다 싶을 만큼 스트레스가 극심한 직업입니다. 본인의 스트레스를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날려줄 방법들을 체화시키죠. 그래서인지 창업 초기에 힘든 일이 별로 기억에 안 나네요. 실제로 힘든 일들은 스트레스가 쌓인 상황에서 그 스트레스가 주위에 전파되며 더 상황을 나쁘게 만드는 경우의 악순환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스트레스 없이 살려고 해요. 있어도 다 훌훌 털어내고요. 스트레스가 많은 날은 애기랑 놀고, 애기랑 놀기도 어려울 정도인 날은 혼자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혼자 닭발에 소주 한잔하기도 해요. 창업은 아이템도 중요하지만 악순환의 피드백을 탈 수 있는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내성이 가장 중요해요. 그게 안 된다면 100% 동료들과 싸우게 될 것이고, 서로를 탓할 것이고, 아무런 일도 못 할 거에요. 동료들과 싸우지 않으면 예비투자자와 싸우다 지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고객과 싸우다가 지치겠죠.

남의 역량을 묻기 전에 자신이 타인에게 양보하고 인내하면서 리드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게 중요할 것 같아요. 사업은 매출이 생명이라서 매출이 없는 현재 우리 팀에게 함부로 보람을 얘기하기가 망설였네요. 하지만 좋은 팀원들, 존경하던 사람들을 한 명씩 합류시키며 그분들이 서로 호흡을 맞추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죠. 그런 인력들을 모시고 우리가 의도하는 시장으로 진입하는 그림이 그려질 때 쾌감을 얻어요. 이분들이 세월이 지나서 지금 이 순간들을 인생의 절정기로 추억할 수 있다면 그 이상의 보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잘 되면 좋고 잘 안 되면 매우 안 좋겠지만 앞을 보고 달려가는 중이기 때문에 앞만 보고 달려가려 합니다. 목표를 생각하는 건 아주 가끔 여유가 있을 때 하는 일이지만 매일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오늘과 바로 내일 정도 에만 집중해서 하루하루를 역사에 남을 정도로 알차게 해치우는 게 목표입니다. 큰 그림을 한 가지만 언급해보자면, 앞으로 15년 후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금융회사는 지금의 인공지능 기술과 온라인 투자자문업을 잘 활용한 기업 일 거에요. 아마도 우리 팀과 같이 신생 기업 중 하나일 가능성도 있어요. 저희는 그런 레이스를 달리고 있다고 생 각하고 그 레이스에서 이길 생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 학생들에게 한 마디

경험을 쌓아간다는 건 게임에서 XP를 쌓는 것과 같아요. 많으면 좋지만 결국 쌓아가는 과정이 재미잖아요. 쌓지도 않을 거면 왜 그 게임을 하나요. 게임을 연구하거나 게임을 해킹하듯이 삶에 부딪히는 자세도 필요해요. 반드시 남이 보지 못하거나 내 시간과 고생을 아껴주고 재미를 높여줄 요령들이 있을 거예요. 뭔가를 즐겁게 하던 그 마음 그대로 삶을 살려면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세요. 뭔가를 즐겁게 해본 과정에 답이 다 있을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은 분야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후배들에게는 실무에서의 자신감을 키우라고 하고 싶어요. 꼭 대기업이나 취업만이 답은 아닐 것 같지만 한살이라도 젊을 때 실무의 달인이 되어야 자연스러운 실무 리더쉽이 생기겠죠. 팔로워 십부터 배우는 것도 중요해요. 팔로워쉽을 이해해야 리더쉽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창업하려면 본인의 능력보다는 당연히 파트너들의 능력이 중요해요. 파트너의 능력은 본인의 능력과 연관이 있죠. 어쨌든 좋은 파트너들을 데리고 좋은 팀을 꾸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평소에 많은 사람을 만나 좋은 관계를 쌓고 쩨쩨하거나 거만하게 굴지 말고 평판 관리도 해야 해요. 프로페셔널의 영역에서는 반드시 이기지만 인간적인 관계에서는 항상 질 줄 아는 법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서 얘기했듯 본인의 스트레스관리도 중요하죠. 많은 걸 경험하고 많은 실패도 경험해보세요. 내성이 생길 겁니다. 그 자체로도 창업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자산이에요.

이런 조건들을 다 떠나서라도 되겠다 싶으면 두 번 정도는 무계획으로 뛰어들어보는 것도 좋아요. 일단 닥치고 나서 계획을 만들고 팀원을 모으고 돈을 끌어모아도 괜찮아요. 작은 매출부터 한번 일으켜보세요. 매출이 모든 사업의 선생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