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작가 조영주의 카덴짜(Cadenza)

  • 538호
  • 기사입력 2024.04.27
  • 취재 이다윤 기자
  • 편집 장수연 기자
  • 조회수 24

| 카덴짜(Cadenza)

: 연주자의 기교를 발휘시키기 위한 화려하고 즉흥적인 프레이즈


조영주의 작업은 사회 구조의 압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도, 그 구조에 완전히 종속되지도 않은 주체의 행위자성을 강조한다. 그는 특히 다문화 이주 여성, 장애인, 돌봄 노동자 등 조명되지 않았던 주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사회 구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제고한다. 소외되었던 주체들의 퍼포먼스 작업 참여는 협주곡 안에서 정해진 규칙에서 잠시 벗어나 연주자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도록 마련된 독주 부분을 의미하는 '카덴짜 피오리투라'와 호응한다. 항상 타자화되었던 이들이 작가의 작업물에서는 비로소 카덴짜의 독주자로 존재하는 것이다. 소수자의 신체 이미지를 활용해 우리 사회의 미묘한 불합리함을 일깨우는 미술 작가 조영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녕하세요. 미술 작가 조영주입니다.

비디오, 퍼포먼스, 설치,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 제20회 송은미술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송은미술대상 수상 혜택으로 개인전 <카덴짜>를 송은에서 선보일 수 있었어요. 송은미술대상은 제 작품 생활에 전환점을 마련해주어서 더욱 뜻깊어요. 이번 개인전 역시 저에게 중요한 경험의 한 꼭지가 될 것 같습니다.


* 송은미술대상은 전도유망한 국내 미술 작가를 지원하고자 2001년 송은문화재단에서 제정하여 매년 공정한 공모와 심사를 통해 운영하는 미술상이다. 2011년도에 리뉴얼된 이래 매년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과 함께 향후 송은에서의 개인전 개최가 지원되며 올해 송은에서는 2020년 진행된 제20회 송은미술대상 수상자 조영주의 개인전 <카덴짜>를 선보였다.


| 송은미술대상을 받고 개인전 <카덴짜>를 개최하기까지 약 4년이 흘렀어요. 그동안 작가 조영주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송은미술대상은 제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한국에서는 육아나 돌봄의 문제를 예술가가 직접 이야기하고 나서지 않았어요. 굉장한 소외감과 고독감으로 힘겹게 작업을 이어왔는데 송은미술대상 수상 이후 많은 사람이 제 작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예술가는 그런 힘을 먹고 살잖아요. 그래서 신이 나서 작업을 아주 많이 했습니다.


| 이번 전시 <카덴짜>의 관전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자신을 비롯한 주변인들이 떠오르는 전시가 되었으면 합니다. 젠더나 남녀노소 상관없이, 본인이 겪어온 다양한 관계에 주목해 보는 관람이 되길 바라요.


| <카덴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작업 특성상 많은 사람과 협업했어요. 촬영감독, 안무가, 퍼포머, 사운드 아티스트 등 함께한 모든 분에게 감사하죠. 전시중에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생기기도 했어요. 그럴 때 큐레이터분들은 물론, 주변 모든 분이 힘을 모아서 하나씩 일을 해결해 나가는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전시와 좋은 작품은 작가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구나’라고요. 모든 분의 열정과 혼신이 모아졌던 순간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산 신체 해후_ 세 번째 눈을 가진 사람들> 이원생중계 라이브퍼포먼스, 30분, 2024


| '아줌마'의 자기표현을 주제로 삼은 작품 <꽃가라 로맨스>(2014), 양육자와 피양육자 간에 발생하는 힘의 역학을 다룬 작품 <입술 위의 깃털>(2020)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 작품 <이산 신체 해후>(2024)까지 우리 사회가 터부시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연구하고 이를 시각적 언어로 가시화한 작업들이 눈에 띄어요. 여성의 신체성을 둘러싼 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본래 '작업을 한다'는 건 나 자신과 주변인,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이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가가 그렇게 작업을 할 거예요. 제가 여성 이미지와 사회에 내재된 권력관계에 집중하게 된 건 우리 학교 재학 시절 '성균 극회' 활동이 큰 몫을 했어요. 그때 '성균 극회' 활동을 전공 공부보다 더 열심히 했거든요. 배우가 되고 싶기도 하고 공연 예술의 형태가 재미있어 보여서요. 특별한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제가 젠더적인 불평등을 느끼고 그 부조리함으로 억울해했던 경험들이 모여서 관련된 작업이 이루어진 것 같아요.


| 특히 한국 사회에서 구조적인 불평등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마음으로 작업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제 작업을 통해서 무언가 시위를 하거나, 그렇게 해서 사회를 바꾸고, 사람들을 계몽할 생각은 없어요. 제 작업을 찬찬히 보시면 불평등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내지도 않아요. 잘잘못을 따져 그 앞에 사람들을 세워서 나무라는 건 사회운동가들이 많이 하니까요. 대신 저는 많은 사람들이 자세히 들여다봤으면 하는 지점을 어떻게 같이 바라볼 수 있게 만들지를 연구해요.


<휴먼가르텐> 폴리우레탄, 스폰지, 가변 설치, 2021-2024

<살핌 운동> 비디오 설치, 2 채널 영상, 컬러, 다채널 사운드, 18 분 30 초, 2023


| '대학생 조영주'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합니다. 대학 시절 이야기도 해주시겠어요?

저는 미술교육과 서양화를 전공했는데요. 제가 미술교육과 마지막 학번이었어요. 그래서 지금의 미술학과 시스템에 교육학 수업을 더 해서 많은 학점을 이수해야 했었죠. 학과에서 만나 뵈었던 여러 작가 선생님의 가르침이 미술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켰던 기억이 나네요. 연극 동아리 '성균 극회'에서 4년 내내 활동한 경험이나 관악부에서 2년간 플룻을 연주했던 시간들도 생각나요. 이외에도 과외 아르바이트랑 미팅, 소개팅도 열심히 했던 시절이었어요. 에너지가 무척 많았던 때였습니다.


| 대학생 시절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미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셨나요?

유학을 떠나고, 파리에서 학부를 다시 졸업하고, 석사 학위를 따는 과정에서는 아무런 의심 없이 미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학원 시절 담당 교수로부터 인종차별을 받았고 그 교수로부터 당시에 제가 하던 작업을 전혀 인정받지 못했어요. 오히려 많은 무시를 받았죠. 지금은 대학원 시절이 짧기도 하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학생의 입장에서는 담당 교수로부터의 인정이 중요한 부분이었어요. '어렵게 시작한 유학이니 졸업장이라도 따고 (미술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졸업까지 버텼어요.


다행히 졸업 시험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받아 명예롭게 대학원을 졸업할 수 있었어요. 프랑스의 국립미술학교는 (졸업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지정한 심사위원단이 생전 처음 보는 학생들의 작품을 평가하게 되어 있거든요. 저를 차별했던 담당 교수는 제 졸업 여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죠. 그렇게 영광스러운 졸업을 한 뒤에는 '당분간 미술을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재밌고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는 미술을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아직 미술이 재밌어서 하고 있나 봐요.


(왼쪽) 솔리스트들 | 라이브 퍼포먼스,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5 분 23 초, 2024

(오른쪽) 다문화 여성들로 구성된 행복메아리 합창단원들(<솔리스트들> 참여자)과의 기념 촬영


| 미술 작가로서의 시작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있을까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장래 희망을 그림으로 그리라고 했는데 파리의 길거리에서 베레모를 쓰고 이젤에 화판을 둔 제 모습을 그렸어요. 그 시절에는 ‘미술’ 하면 파리의 화가가 떠오르던 때였어요. 저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대학생때 우리 학교로 강의를 나오시던 홍순명 선생님이 계셨는데, 당시 막 파리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셨어요. 그 영향도 많이 받았고 학부 졸업 후 미술을 더 공부하고 싶어 저도 무작정 파리로 떠났습니다.


| 오랜 기간 미술 작가로 활동하면서 슬럼프도 겪으셨다고 들었어요. 힘든 시기는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아이를 출산하고 몇 년간은 고립감에 아주 힘들었던 시절이었어요. 매일 명상을 했고, 정해진 시간에 작업실에 앉아 있었어요.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그 힘든 시기를 지날 수 있었습니다.


| 앞으로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어떤 주제일지 궁금해요.

유럽에서 10년간 저의 20대와 30대를 보냈습니다. 젊은 한국 유학생, 젊은 한국 여자 작가로서 지냈던 시간이 현재 이주 여성들과의 작업과 무관하지 않죠. 한국 여성들의 다양한 이주 형태 그리고 이들이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갈등하며 본인의 정체성을 구축했는지에 대해 더 연구하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다양한 경험은 언젠가 나의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힘겹고 고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마주하느냐는 각자의 몫일 거예요. 나를 돌보고, 나아가 내 주변인들과 사회와 환경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너무 멋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