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보다 실행"
경제학 박사 유진영

  • 512호
  • 기사입력 2023.03.29
  • 취재 이채은 기자
  • 편집 김희수 기자
  • 조회수 9228

‘이 일이 잘 해결될까?’, ‘잘 안되면 어쩌지?’... 누구든 일을 맡는 순간 수많은 고민과 선택의 기로에 빠진다. 그러나 이 순간 고민없이 ‘그냥’ 실행해보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경제학과 설립 이래 최초로 해외 명문대학(시안교통-리버풀大) 교수로 임용된 유진영 경제학과 박사과정 졸업생을 만났다. 고민하기보다 실행하는 연구자, 유진영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유진영입니다. 저는 지난해 우리 대학에서 경제학과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지금은 경제학과 경제연구소에서 박사 후 연구원(post-doctor)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Q. 경제학 연구자의 길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학원 이후 어떤 진로를 선택할지 고민중이었어요. 그러다 석사과정 중 류두진 교수님의 ‘금융시장 미시구조’ 수업을 수강했습니다. 경제학 이론을 다루면서 빅데이터 분석 경험까지 쌓을 수 있었습니다. 이 수업이 연구자의 길을 선택하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저는 데이터 자체를 살펴보고 분석하는 데에 특히 재미를 느껴요. 그 수업이 흥미로웠던 이유도 직접 데이터를 정제해서 배운 이론을 검증했기 때문입니다. 이 수업을 수강한 이후, 본격적으로 경제학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앞으로도 데이터 분석과 관련된 일을 하면 내 커리어를 흥미롭게 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수업이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되는 유익한 수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Q. 현재까지 다양한 경제학분야 연구를 진행하셨습니다. 유진영 박사님께 경제학, 그리고 경제학 연구란 어떤 의미인가요?

경제학이란 희소한 자원을 사회구성원에게 할당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할당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처음 경제학 논문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실거에요. 경제학 논문을 처음 읽으면 빼곡한 수식에 당황할 수도 있고, 소개되는 이론들이 모두 뜬구름 같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흐름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결국 대다수 연구의 함의가 실생활에 닿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학의 특성은 제가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금융시장 미시구조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진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호가 및 체결단위 데이터를 사용하여 금융시장의 구조나 자산의 가격형성, 유동성, 투자자의 거래행태 등을 살펴보는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접 주문의 접수 및 체결을 세밀하게 연구해서 “어떤 투자자가 정보를 갖고 거래하는 지,” “정보거래자의 거래 행태가 공휴일이나 정책 도입/변화 등 시장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위험을 측정할 수 있는지” 등의 현실에 맞닿은 주요한 주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게 경제학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연구를 통해서 시장참여자들의 실제 금융생활이나 금융시장 정책 등 현실적 문제에 대한 학술적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경제학이라는 분야가 제게 주는 큰 의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Q. 2020년에 “우리학교 경제학과 박사출신으로 최초로 해외 명문대학에 임용되는 것에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셨다 들었습니다포부가 현실이 되었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감사한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학부시절부터 항상 좋은 멘토이자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자처해주신 지도교수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김성현 학장님을 비롯해 필요할 때마다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경제학과 교수님들, 그리고 낯선 해외시장 지원에 큰 도움을 주셨던 Global Finance Research Center의 Robert Webb 교수님과 Jonathan Batten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기약 없을지 모르는 박사과정을 응원하고 지원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 결과가 믿어 주셨던 많은 분들의 기대에 대한 부응인 것 같아 안도감이 드네요.


같은 분야에서 저와 비슷한 길을 가려는 분들께 작게나마 나쁘지 않은 선례가 생기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이전에도 했던 말인데, 저는 좋은 선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박사 과정을 겪는 모든 분들이 고민하는 부분이 앞으로의 진로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거의 50군데 넘는 곳에 지원서를 쓰는 불안정한 상태를 겪었습니다. 그저 상황이 잘 맞아서 좋은 기회를 얻은 것 뿐이지만, 어쨌든 불안정한 대학원 생활을 잘 마친 하나의 선례를 만든 것 같아 안도감이 듭니다.


저는 이제 목표하던 궤도에 첫발을 내디딘 초보 연구자라 생각합니다. 조금 더 노력하고 더 성장해서, 더 나은 연구자가 되고 계속해서 새로운 길을 터 나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Q. 여름부터 시안교통-리버풀대에서 강의를 시작하신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요즘 우리 대학에서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현재는 우리 대학 경제 연구소 소속 박사 후 연구원(post-doctor)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가 박사과정을 하면서 기획만 하고 마무리하지 못한 연구주제들이 많습니다. 본교에 더 머무르면서 이 주제들을 정리하여 가시화하고 의미 있는 연구로 발전시켜 나가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여름에 출국을 하기 전까지는 이 작업에 집중할 것 같아요.


이번 학기에는 운 좋게도 학교를 떠나기 전 강의를 하나 맡아 경제학과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금융경제학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항상 강의를 듣는 입장이었는데 막상 전달하는 입장이 되니 느낌이 남다르네요. 학부 때부터 10년 넘게 배움을 얻은 모교에서 강단에 선다는 것이 아직 생소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역시 새로운 경험이라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매주 강의를 준비하는 작업이 지금은 즐겁습니다.


[Finance Lab 세미나]


Q. 경제대학의 학석사 연계과정, 석박 통합과정을 적극 활용하여 빠르게 학위를 취득하셨다 들었습니다. 해당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움이 됐는지 조금 더 설명해주세요.

가장 큰 이점은 수업기간을 물리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학석사 연계과정은 현재 학부에 등록된 학생이 석사과정 coursework로 인정 되는 강의를 미리 들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저 역시 학부 마지막 학기에 조금 남는 학점을 이용해 석사과정 강의 2개를 미리 수강했습니다. 이를 통해 대학원 내 수업 부담을 조금 줄일 수 있었습니다.


석박 통합과정 역시 석사 및 박사과정을 하면서 수강할 과목의 학점을 줄여주어, 조금 더 빠르게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저는 석박사과정을 모두 수료할 계획이었어요. 이왕 석박사 두 과정 모두 진행할거면 한번에 빠르게 진행하고 싶어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선택했습니다.


재정적 지원 역시 적지 않습니다. 대학원 진학 고민에서 재정적인 문제를 빼놓을 수 없어요. 저는 학교에 다니는 동안 ‘BK21’ 등의 사업뿐 아니라 학석연계나 석박통합 등의 교내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항상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런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학비를 절약하면서 대학원 과정을 마칠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이 연구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대학원 생활은 끝이 어렴풋한 긴 터널과도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진영 박사님은 대학원 생활 도중 어떤 어려움을 겪으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큰 난관은 외로움인 것 같아요. 정서적으로 외로운 느낌보다는 연구자로서 혼자 느끼는 학술적인, 또 물리적인 외로움이요. 가족, 친구, 동기 등 주변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고민을 나누더라도 결국 연구실 모니터 앞에서 혼자 고민하는 생경한 순간이 있습니다. 연구 내용에 대해 글을 쓰고 판단하는 일련의 과정은 모두 연구자 개인이 혼자 진행하기 때문이에요. 연구를 진행할수록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생기고 스스로에 대한 검증이 고프지만, 이를 해소할 창구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처음 대학원에 들어와서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질문해야 할지 몰라 헤맸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 고민을 주로 연구실 활동을 통해 해소했던 것 같습니다. Finance Lab에 들어온 이후로는 지도교수님께서 직접 참여하시는 랩 세미나가 매주 적어도 한 번은 있었고, 주 3~4회 연구노트를 통해 연구 진행상황을 랩 인원들과 공유했습니다. 이를 반복하며 의문점을 적시에 해소할 수 있었고, 혼자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실수를 지적 받고 수용하는 일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게는 연구실에서의 논의가 어려움을 해소하는 창구로 작용한거죠.


저는 흔들릴 때마다 매번 그 흔들림을 쫓아가면 사람이 지치게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일희일비하지 말자’의 태도로 임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연구자로서 연구할 때 흔들리지 않는 것이 강점으로 작용해요. 예를 들어 학술대회에 나갔을 때, 당연히 항상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혹평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저는 이때 낙담도 많이 했지만, 성격상 하루 정도 지나면 다 잊어버려요. 이런 태도가 대학원 생활을 하는데 장점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Q. 인간 ‘유진영’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그냥’ 하는 태도가 원동력인 것 같아요. 이 일을 할까 말까 고민하지 않고, 일상적이고 관성적으로 움직이는 태도요. 그냥 ‘당연히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고민을 많이 하다보면 일 하기가 싫어지거든요.


연구하다 보면 양자택일의 상황이 오기 마련인데, 이 상황에서 저는 그냥 둘 다 해버리는 편입니다. 자꾸 이 일의 가능성과 미래를 고민하는 것보다 그냥 둘 다 하겠다고 생각해버리는 게 편한 것 같아요. 연구할 때도 저는 마찬가지예요. 경제학에서 실증적인 분석을 할 때,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저는 고민하지 않고 모두 다 하는 편입니다. 고민 없이 ‘그냥’ 하는 것이 제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Q. 끝으로 성균관대 대학원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주변에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요즘 유난히 많은 것 같습니다. 긴 학위과정과 불확실성이 걱정되어 망설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이 두려움을 넘어 대학원에 진학하셨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큰 한 걸음을 내디딘 셈이 아닌가 합니다.


금융시장에서 잘 알려진 투자전략으로 “buy and hold”라는 전략이 있습니다. 단기적 시장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투자한 자산을 계속 보유하고 기다리는 투자방식입니다. 대학원 역시 큰 맥락에서 장기투자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대학원이라는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면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본인이 보유한 자산을 믿어 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