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최남단에서 요리하다,
'남극의 주방' 김인태 학우

  • 444호
  • 기사입력 2020.05.27
  • 취재 정세인 기자
  • 편집 정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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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극의 쉐프>를 본 적이 있는가? 영화는 남극을 배경으로 하며, 극지에서 생활하는 남극 관측 대원들이 “남극의 쉐프”인 니시무라의 맛있는 요리를 먹으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만약 실제로 남극의 쉐프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몇 달 전부터 교내 커뮤니티 티 '에브리타임'에서 큰 화제가 되어 많은 학우들의 이목과 관심을 끌었던 진짜 ‘남극의 쉐프’가 있다. 이번 성균웹진에서는 실제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에서 요리사로 일했던 ‘남극의 주방’ 김인태 학우를 만나보았다.

Q. 간단한 자기소개

성균관대학교에서 글로벌경제학과 미술을 복수전공 중인 3학년 김인태라고 한다. 2019년 11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약 5개월간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에서 조리보조로 일했고, 40여일간 쇄빙선을 타고 적도를 거쳐 4월 말에 귀국했다.


Q. 남극에서 요리사로 일한다는 건 아무나 하지 못할 색다르고 특별한 경험일 것 같다. 어떻게 남극에서 일하게 되었는가?

2019년 여름방학, 집에 누워서 남극에서 냉면을 만들어먹는 sf 소설(안전가옥의 단편집 ‘냉면’ 중 dcdc 작가의 ‘남극낭만담’) 을 읽다가 문득 남극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공고를 찾아보고, 지원 후 최종 합격해서 근무하게 되었다. 사실 남극의 요리사와 관련된 정보를 처음 접한 건 요리사가 되기 위해 휴학하고 요리를 배웠던 2017년쯤이다. 그때는 20~30년 경력의 요리사만 뽑는다는 이야기에 ‘아마 당분간 내가 남극에 갈 일을 없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설을 읽고 찾아본 결과, 최근에 조리보조를 채용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해 지원하였다.


Q. 조리보조로 일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평소 생활은 어떻게 했나?

장보고 과학기지의 월동대는 18명으로, 월동 기간에는 조리장 혼자 대원들의 식사를 책임진다. 하지만 남극의 여름인 11~2월에는 세계 각국에서 연구활동을 위해 과학자들이 모이고, 그 분들의 식사 준비를 위해 그 시기에만 근무하는 조리보조를 선발한다. 19/20시즌엔 10월말~12월 초까지 근무하는 한 분과 11월초~3월말까지 근무하는 나 이렇게 두 명을 선발했다.


한창 연구가 활발했던 11~12월엔 3명이서 80~100여명의 세끼 식사와 연구 활동용 도시락까지 준비하느라 주7일 하루 12시간씩 근무했었는데, 한 분이 귀국하신 후엔 조리장과 둘이서 80인분가까이 준비한 적도 있다. 이 시기엔 새벽 5시반에 일어나 아침준비하고 도시락 싸고 회의참석하고 잠시 쉬고 점심 준비하고 잠시 쉬고 저녁 준비하고 잠드는 게 하루의 전부였다. 이때는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참 좋았다. 퇴근하고 저녁 9시에 밖에 나가도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2월이 넘어가면서 식수인원이 줄면서 근무시간도 줄고, 즉석식품 보급이 들어오면서 주말에는 한 두 끼 정도 씩만 준비하는 등 근무환경이 좋아졌다(이 부분은 월동대 차수별로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요리 외에도 상하차와 맞먹는 식재료 운반 및 관리, 시설 유지보수 및 주방 청소, ATV운전, 극지적응훈련을 위한 야외취침 등 다양한 일도 해봤다. 생활이 익숙해지고 쉬는 시간이 늘어 여유가 생기고서는 취미활동을 조금씩 시작했다. 기지에 책과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당구대, 탁구대, 오락실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등이 있어서 생각보다는 덜 삭막한 생활을 했다. 각종 악기도 있어서 드럼도 처음으로 배워보고 여러 피아노곡을 연습했던 게 특히 기억에 남는다.


Q. 남극에서 지내는 동안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1) 처음에 가장 놀란건 기지에 갔더니 ‘미생’ 을 그린 윤태호 작가님이 계신 것이었다. 처음엔 보고도 믿을 수가 없어서 재차 확인을 하고서 셀카도 찍고 싸인도 받았다. 알고보니 카카오페이지의 지원으로 차기작 준비를 위해 오신 것이었고, 그 작품은 3월부터 다음 웹툰에 ‘어린’ 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고 있다. 찾아보니 내가 아주 작게나마 나오긴 한다.


2) 그 다음은 3일만에 집에 가고 싶어졌던 거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 자취방 가서 밥해먹고 파티하고 한강 가서 놀고 그랬는데 갑자기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하루 종일 일만 하려니까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며칠만에 풀리긴 했지만 그때의 그 이상한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3) 영화 ‘남극의 쉐프’ 처럼 한국의 어린이들과 화상통화를 한 적이 있다. 부산에서 진행된 극지체험전을 찾은 관람객들과 Q&A 시간을 갖는 건데 조리장이 거절해서 내가 하게 되었다. 매번 등장하는 질문으론 “펭귄 먹나요?” 가 있고, 학부모님도 질문을 하셨는데 “지갑에 얼마가 있으신가요?” “연봉은 얼만가요?” 등 날카로운 물음을 던지셨다.


4) 중간에 외국 촬영팀이 몇 주간 머물다 갔는데 세명의 팀원 중 한명은 해산물을 먹지 못하고, 한명은 고기를 먹지 못하며, 나머지 한명은 락토-오보 채식주의자여서 메뉴별로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설명하고 따로 음식을 만들었던 것도 생각난다. 일이 많아진 거라 힘들었지만 외국은 이만큼 채식 인구가 많구나 싶기도 했고, 떠나면서 덕분에 밥 잘 먹었다며 명함을 주고 갈 땐 뭉클했다. 게다가 명함을 보니 넷플릭스 다큐 만드는 캠브릿지 화산학 교수였는데 내가 국 퍼주는 장면이 편집되지는 않았으려나 모르겠다.


5) 극지적응훈련을 1박 2일 일정으로 두 번 다녀왔다. 밖에서 텐트치고 자는데 바람이 너무 불고 온종일 밝아서 새벽까지 뒤척이긴 했지만 일어나서 아침에 갔던 등산 덕분에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물을 챙겨가지 않아도 목마르면 눈 퍼먹으면 되고, 하산할 때는 썰매처럼 미끄러져 내려올 수 있어서 재밌고 편했다. 남극의 썰매는 티익스프레스를 뛰어넘는 최고의 어트랙션이었다.


6) 남극의 모든 것들이 그렇긴 하지만, 펭귄이랑 해표를 본 건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다. 지구상에 이런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게 참 신기했는데, 특히 길을 잃어서 기지 앞에까지 온 펭귄 무리들을 봤던 게 참 즐거웠다. 길냥이가 없어서 아쉬워하던 차에 길펭이라도 만나니 반가웠다. 아장아장 뛰는 모습이 인형 같고 귀여웠다.


7) 친구가 영상통화로 학교의 야경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남극은 온종일 해가 떠있을 때라 하늘이 어둡다는 게 참 신기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친구한테 계속 “와 야 하늘이 까매! 와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하늘이 까맣지?” 라고 했다가 핀잔을 들었다. 학교랑 서울 시내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향수를 느낀 것 같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 밖에서 살아본 거라 당연한 것일수도 있지만.

8)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이탈리아의 마리오주켈리 기지가 있는데 문화교류로 두 번을 다녀왔다. 기지 투어를 하고 피자를 먹었는데 가지피자가 무척 맛있었다. 이탈리아 기지 대원들이 우리 기지를 방문했을 때는 한국식 BBQ(불판에 삼겹살과 구운 김치)를 대접했는데 쌈장을 엄청 좋아하고 자기들끼리 청양고추 먹기 내기 등을 하는 등  한국 문화의 진수를 경험하고 갔다.


9) 해빙이 녹고 바다가 열렸을 때 해양조사를 도우러 보트를 타고 바다를 질주했던 건 관광상품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쾌하고 신났다. 저 멀리 눈 덮인 산이 보이고 여기저기 빙하가 떠다니고, 빙하 위에 펭귄이랑 해표가 누워있기도 하고 물속에 들어있는 해표도 구경하는 등 남극의 바다는 참 아름다웠다.

10) 남극에서 받은 생일축하도 정말 좋았다. 크리스마스를 비롯한 연말의 말랑말랑한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아무리 남극에서 트리도 꾸미고 한다지만 못내 아쉬웠는데 그걸 한번에 날려준 하루였다. 아침부터 미역국으로 시작해서 저녁에 티본스테이크까지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꽉 찬 완벽한 하루였는데, 특히나 내가 배추전을 먹고 싶다고 하니까 조리장이 김치를 한올 한올 물에 씻어서 배추전을 해준 것은 잊지 못할 것 같다.


11) 오면서 쇄빙선에서 은하수와 오로라를 본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장보고기지 근처는 오로라가 잘 보이는 편은 아니고 내가 나올 때도 아직 밤이 길지는 않던 시기라 오로라를 풀컬러로 관측하진 못했기에 은하수가 더 기억에 남는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카메라로 노출 길게 해야지만 관찰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 모습을 맨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은하수가 왜 milky way인지, 별이 쏟아진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라 오히려 순화한 정도였다는 걸 깨달았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엄청 거창하거나 장기적인 계획은 없고 일단 눈앞에 놓인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자는 생각이 있다. 원래는 남극에서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한국 가면 하고 싶은 일을 적어놨었는데(영화관/놀이공원 가기 등) 그 공통점이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 이라 거의 포기한 상태이다. 그 외에는 우선 교환학생이 꼭 가보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만약 휴학을 더 하게 된다면 드럼을 더 배워 밴드 활동도 해보고 싶다. 진로와 관련해서는, 아직 3학년이라 우선은 졸업이 목표이다. 졸업전시라는 큰 산도 넘어야 하고, 졸업 후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 로스쿨 진학 또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소득도 보장되는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고려 중이다. 이쯤 되면 대략 느낌이 오시겠지만 참 하고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생각도 많다. 하지만 하고 싶은걸 이것저것 하다 보니 남극까지 갔다 오게 돼서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한다. 진로에 꼭 쓸모가 없더라도 재밌으면 그걸로 충분한 게 아닌가 싶다.


Q. 마지막으로 학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먼저 에브리타임에 쓴 글들에 응원과 격려의 글들을 남겨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남극에서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휴학하고 요리를 배울 때부터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주시고 출국 전에는 응원도 듬뿍 해 주신 교수님들과 행정실 직원분들께도 감사드린다.

게시판에 글을 쓰고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내 자랑도 있지만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도 컸다. 학생 때 다들 하고 싶은 것을 좀 더 찾아보고 실행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 남극에 갔다 왔다는 건 대단한 일처럼 보이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고, 또 나를 이루는 많은 요소 중에서 일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이러한 배경이 없는 분들한테 쉽게 도전을 이야기하긴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대학생’의 삶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 같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고민하시는 분들께는 자극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면상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나 요리를 하게 된 이유 등은 에브리타임과 브런치에 있으니 궁금하면 들러달라. 성균관 대학교 구성원 모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