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기도하다,
'성대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상 김이정 학우

  • 482호
  • 기사입력 2021.12.28
  • 취재 박창준 기자
  • 편집 김채완 기자
  • 조회수 6387

소위 각자의 ‘현생’을 살기에도 바쁜 우리의 현실 때문일까. 서점의 베스트 셀러 항목에는 자기 계발서와 경제 서적들이 가득하다. 이런 서적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음은 분명하지만, 팍팍한 현실 속 생각의 씨앗을 움 틔우는 단비와 같은 능력은 여전히 문학이 가진 독보적인 힘이다.

이번 성대신문 주최 성대문학상 공모전을 통해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성균관대학교에도 아직 문학의 힘을 사랑하는 멋진 작가들이 많다는 것이다. <성대생은 지금>에서 2021 제54회 성대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김이정 학우(국문 17)를 만나 보았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인 17학번 김이정입니다.


▶이번 성대문학상 수상 시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소개해주세요.

비대면 사회 속에서도 서로 충분히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지만 세상 누구하고도 통(通)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제 존재가 세상으로부터 붕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분명하다고 믿던 것이 모호해지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확실한 내가 불확실한 나를 마주한다는 것이 꼭 거울을 보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자신과 거리를 두고 새로운 ‘나’를 인식하는 과정이 다큐멘터리적이라고 생각했고요. 감독이 보는 데까지 찍히는 다큐멘터리처럼 더 깊고 많은 내면의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는 시를 쓰고자 했습니다.



▶소설, 희곡 등 문학의 다양한 갈래 중에서도 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실 고등학교 입학 당시만 해도 문학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2학년 때부터 소설 읽는 것에 재미를 느꼈고,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에는 쉬는 시간에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시가 좋아졌어요. 조금 읽고 많이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제 청개구리 기질과 맞물려, 수능 국어 공부 방식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시를 이해한다는 점이 만족스러웠어요.


▶시를 쓸 때 시상을 떠올리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본격적으로 시를 쓰게 된 것은 이번 학기 ‘현대시론’ 수업 덕분이었습니다. 매주 한 편씩 시를 써보라는 과제를 내주셨거든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를 쓰기 위한 이미지들은 늘 기록해왔더라고요. 오랫동안 일기를 썼고, 인스타그램 같은 SNS나 개인 메모장에 사진과 글을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일상에서 비롯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저를 둘러싼 세계를 유심히 관찰한 경험들이 모여 시가 되는 것 같아요. 인천, 인문관 옥상, 가족, 음식, 길고양이 같은 것들이요.


▶시를 쓰는 과정에서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까요?

아직 시를 쓴 지 오래되지 않아 시 쓰기 자체가 어렵게 느껴지지만… 아무래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어렵습니다. 분명 어떤 감정과 느낌이 있는데 그것이 기존의 언어로는 표현되지 않으니까 시로 쓰고 싶은 것이거든요.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로 하려는 것이 제 역량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문학의 다른 갈래들보다 확연히 짧지만, 때때로 시는 그 의미를 제대로 느끼는 데 어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창작자 이전에 같은 감상자로서, 시를 더 재미있게 읽고 싶은 초보 감상자들에게 조언해주세요.

앞서 말씀드린 제 청개구리 자세가 시를 읽을 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시의 매력은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진다는 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가 어떻게 읽었든, 심지어 창작자가 어떻게 썼든, 나는 내가 읽고 싶은 대로 읽을 것이다. 이런 청개구리 마음으로 시를 대하면 감상이 더 풍부해지지 않나 싶습니다. 시를 쓴 시간보다 읽은 시간이 훨씬 많기 때문에 감상자의 입장에 치우쳐서 말씀드린 것 같기도 한데요. 그래도 저는 여전히 제 마음대로 읽고 싶은 청개구리 독자입니다.



▶시를 직접 쓴다는 것은 읽는 것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집니다. 시를 읽고 쓰는 것에 관심이 많지만, 막상 시 쓰기를 시작하는 데에는 막막함을 느끼는 학우들에게 조언해주세요.

저도 참 오랫동안 시 쓰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시작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용기를 북돋아드리는 말씀밖에 해드릴 것이 없네요. 시를 쓰고 싶어하시는 분들이라면 이미 시를 사랑하고 계실 테니까요. 저 또한 혼자서만 조용히 시를 쓰다가 친구의 권유로 성대문학상에 시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문학의 힘은 나눌수록 커지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참여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지만, 창작학회에 들어가서 활동한다면 함께 읽고 쓰는 즐거움도 배로 느끼실 수 있지 않을까요?


▶ ‘좋은 시’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가장 어려운 질문인데요. 일단 제 시는 아직 좋은 시와는 거리가 먼 것 같고요. 좋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좋은 시’란 사람들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시가 아닐까요? 그런데 그 감각들이 기존에 우리가 ‘좋다’, ‘예쁘다’, ‘아름답다’고 느끼던 것에서 벗어난 n번째 감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인 바람일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문학을 공부하면서 배운 문학의 역할이기도 하고, 또 제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인 혹은 시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시집을 몽땅 사서 두고두고 읽는 것이 꿈일 정도로 좋아하는 시가 많습니다. 먼저, 시집 속 자기파괴적 이미지에 큰 충격을 받았던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을 꼽고 싶습니다. 지금보다도 훨씬 더 문학에 심취해 있었던 고등학교 때에는 김소연 시인의 ‘수학자의 아침’이나 신해욱 시인의 ‘생물성’을 읽고 문학 공부의 꿈을 키웠던 기억이 나네요. 오은 시인이 보여주는 말의 맛이나 김민정 시인이 발산하는 에너지도 항상 저를 즐겁게 합니다. 좋아하는 시로는 위에 언급되지 않은 작품들 중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닳지 않는 감각의 시 ‘봄’(서정주)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가도록 하는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취향이 나를 살게 한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정말 많은 것들에 관심을 갖는 편이거든요. 가장 먼저 책은 제가 정말 어릴 때부터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영화. 사실 요즘에는 책보다 영화를 감상하는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작년부터 한 달에 10편을 보자는 소소한 목표를 세웠는데, 넘치는 의욕으로 2~30편은 보고 있어요. 늘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계로 입장하는 기분이 들어요. 끝으로,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야구 팬이라 야구 경기를 챙겨 보는 맛에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마지막 한 학기를 남기고 있어서 무사히 졸업하는 것이 목전에 놓인 목표입니다. 하지만 아직 졸업 후에 하고 싶은 일이 확실하지 않아서 남은 시간 동안은 얼른 꿈을 찾고 싶어요. 꿈이 너무 거창한가요? 하고 싶은 일이라도… 그렇지만 제가 어떤 일을 하게 되든, 글 쓰는 것은 평생 꿈꾸며 살 것 같습니다. 시상식 수상소감에서도 언급했지만 저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기도하는 것과 같거든요.


▶성균관대학교 학우들에게.

좋은 상도 모자라 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문학을 공부하는 일이 늘 어렵게 느껴지는 저에겐 시에 대한 제 작은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부끄럽게 느껴지거든요.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문학의 힘을 믿는 독자입니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 문학이, 작지만 단단한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앞서 언급했던 좋아하는 시 ‘봄’(서정주)을 전하며 마무리해볼까 해요.

성균관대학교 학우분들 모두를 응원합니다.


복사꽃 피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뜨고, 초록제비 묻혀오는 하늬바람우에 혼령있는 하눌이어.

피가 잘 도라…… 아무 병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