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고향 한국 <br> 중국에서 온 공찬 학우

제 2의 고향 한국
중국에서 온 공찬 학우

  • 336호
  • 기사입력 2015.11.30
  • 취재 김나현 기자
  • 편집 김예람 기자
  • 조회수 12348

고향이란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또는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을 뜻하기도 한다(국립국어원). 사람들은 저마다의 고향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다. 공찬 학우는 중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서울을 비롯한 이웃 나라 한국은 어느덧 그녀의 제 2의 고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녀는 고향을 색다른 의미로 정의 내렸는데, 공찬 학우에게 고향이란 어떤 의미일까? 한국을 종횡무진 누비며 겪은 소소한 경험까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공찬 학우는 올해 21살로 1995년 11월 중국 강서성[Jiangxi, 江西省]에서 태어났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5년 뒤 해남성으로 이사한다. 5년 뒤 해남성을 떠나 서안에서 5년을 살지만 이후 베이징에서 살았다고 전했다. "어린 시절 이사를 자주 다닌 편이죠.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지역에 대한 적응력이 강해졌어요. 소속감도 자주 이사 다닌 통에 생기기 어렵다고들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소속감을 어디든지 쉽게 느낄 수 있게 됐습니다. 저에게 고향이란 개념은 '좋아하는 곳'이에요. 제가 편안함을 느끼고 익숙하게 느끼는 곳이 고향 아니겠어요? 그래서 한국은 제 2의 고향처럼 이곳저곳을 가도 낯선 곳이 아닌 친근한 곳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한국에 온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서울의 갈만한 곳은 다 가봤을 정도죠. 워낙 배낭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라 강릉과 부산도 혼자 간 적이 있어요. 중국에서 경험해본 적 없는 일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많은 일을 했습니다. 스트레스 쌓일 때는 목동 실탄사격장이 최고예요 온 것이 지금 인생 중 제일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마운 감정을 늘 가지고 있어요."

북경에서 훌쩍 우리나라로 옮겨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성균어학원에서 한국어과정을 듣고 있는 그녀가 한국을 접하게 된 사연이 궁금했다. "저는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아요. 명륜당처럼 문화유산이 학교 안에 있는 대학교이기도 하고, 성균관대학교는 역사가 제일 오래된 대학교니까 어학원을 선택할 때도 성균어학원이 전통에 대해 많이 가르쳐주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학원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성균관대가 가까이 있으니까 성균관대학교를 자주 접하면서 이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어를 배운지 1년이 다 돼가는 지금, 공찬 학우는 인터뷰에서 꽤 유창한 실력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느꼈던 감정들에 관해 물어보았다. "한국어를 배워나가면서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가끔 한국말을 잘하는 것도 자랑하고 싶고, 이것 때문에 더 열심히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챙겨 보는 것 같아요. 한국사람과 3시간 이상 얘기하면 제 어학능력을 그만큼 활발히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머리도 지끈거리면서 아플 때도 있지만, 그만큼 제 한국어 실력이 늘게 되니까 힘들어도 보람을 느낀다고나 할까요. 제일 기억에 남는 뿌듯한 경험은 한국노래 가사를 번역 없이 모두 저 스스로 이해했을 때였어요. 정말이지 아주 기뻤습니다."

공찬 학우가 겪은 한국의 인상은 키워드로 정리된다. 한국에서 첫인상은 어땠는지에 대한 물음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의 첫인상은 '깨끗하다'와 '예의 바른 사람들'이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좀 더 한국을 알았을 때 느낀 다른 키워드는 '청춘'이랑 '열정'이었습니다. 밤에 먹는 술 문화도 한국문화중의 특별한 점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제일 마음에 들었던 점은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다는 것이었죠. 처음에 왔을 때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몰랐어요. 한국인들은 제가 영어를 할 수 있는 지 없는 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도 제게 몸동작과 서투른 영어로 길을 가르쳐줬어요. 그때는 정말 고마웠어요. 왜냐하면 서로 간에 통하는 언어가 없어 소통 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냥 저를 지나쳐 가도 이해할 수 있었는데 한국 사람들은 저를 끝까지 책임지고 길을 가르쳐주었거든요. 정말 사랑스럽고 감동적인 경험이었어요."

1년, 짧은 시간이라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녀는 그 시간을 상대적으로 길고 소중하게 사용했다. 여러 군데를 다녀왔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해서 알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겪은 유쾌한 에피소드도 들려줄 만큼 경험이 많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잊지 못할 추억은 밤 12시에 고속버스를 타고 무작정 부산에 간 거예요. 해운대 길에 앉아 기타 치고 노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일출을 기다릴 때, 마음에 행복함과 편안한 마음이 가득 차오르더라고요. 조금 춥지만 갓 나온 햇볕을 맞을 때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이 나왔어요. 마치 천사를 만난 느낌이었죠. 학교 근처에서 처음 해본 경험은 대학로 극장에서 <화랑>이란 뮤지컬을 본거예요. 출연자분들이 땀을 비처럼 흘릴 정도로 열심히 춤추고 줄거리도 정말 재밌고 감동적이었어요. 무대에서 울리는 웅장한 음악까지, 그 뮤지컬은 제 맘을 사로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 때 조금 미안했던 일이 있었어요. 한국말을 잘 못할 때라 공연 중에 관객들과 함께 하는 활동에서 오해가 생겼거든요. 그 출연자분 마음에 상처를 준 것 같아서 아직도 미안한 감정이 남아있어요.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꼭 그때는 한국말을 못했던 사정과 공연이 정말 재밌었다는 말을 직접 하고 싶어요. 한국에 와서 받은 다른 충격은 할머니들도 화장을 한단 것이었어요. 한국 사람들은 다 성형을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직접 오고 나서 그 편견에서 벗어났습니다."

공찬은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이다. 살면서 겪게 된 한국은 그녀의 빠른 적응력과 열린 마음으로 고향처럼 자리 잡았다. "한국은 살아가기에 편리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이 많고, 인터넷이 빨라서 어디든지 대중교통 시간을 확인할 수도 있어요. 계획을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외출한 상태에서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지 않을 때,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으면 바로 인터넷으로 근처 영화관의 표를 예매해서 갈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점이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훌륭하게 적응하는 그녀에게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를 물어보았다. "앞으로 시간이 있으면 한국의 다른 지역으로 여행 가고 싶고,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요. 한국에서 바리스타 말고도 다른 면허증도 따고 싶습니다. 대학 졸업하면 회사에 다니면서 대학원도 진학하고 싶어요. 한국을 저의 고향으로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