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한국에 온<br> 조디바론 교수

운명처럼 한국에 온
조디바론 교수

  • 350호
  • 기사입력 2016.06.29
  • 취재 이서영 기자
  • 편집 강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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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존 교수에 이어 이번에도 우리학교에 있는 또 다른 외국인 교수를 만나보았다. 바로 조디바론 교수이다. 캐나다 출신인 그는 성균관대학교의 교수로 생활한지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가 어떻게 한국에 왔는지, 그의 교수로서의 삶은 어떤지 알아보았다.

“어떻게 보면 운명과도 같아요.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고지서를 봤는데 높은 세율로 충격을 받았죠. 그래서 다른 나라로 옮기는 것에 대해 고려하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일본으로 갈지 생각해 봤는데 일본도 생활비가 많이 든다는 것을 알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한국인들을 만났어요. 길을 잃었다는 그들을 도와주게 되었어요. 그 분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본인들을 소개했고 파티가 있다며 저를 초대했어요. 저는 기회의 장인 아시아에 가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파티에 가서 한국을 더 알아보고자 했어요. 재미있는 사실은 파티에 갔는데 300명의 한국인과 오직 2명의 캐나다인이 있었다는 거에요. 그 중 한 명이 바로 저였죠. 가서 갈비, 잡채와 같은 한국 음식들을 먹었어요. 그리고 한국생활에 대해 듣게 되었는데 한국이 더 개방된 사회를 위해 외국인을 위한 제도를 많이 준비해 두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외국인에게 생활비를 지원해주고 세율은 5%밖에 되지 않았죠. 한국에 오는 것이 저에게는 큰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낮은 세율, 낮은 범죄율, 총기소지금지 등이 마음에 들었고, 심지어 저는 축구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당시에 한국이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있었기도 했죠. 마치 운명 같았어요.”

“처음에는 한국에 있는 학원에서 전체를 총괄하는 강사로 일 했어요. 저는 가르치는 일뿐만 아니라 아침 6시 30분부터 저녁 10시 30분까지 학원의 일들을 감독하는 일도 해야 했어요. 그런 일상의 반복으로 제 생활에 지쳐있었어요. 400명의 학생과 50명의 선생님들을 감독해야 했고, 그 외에 추가로 1200명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줘야 했죠. 거의 2000명의 사람들을 관리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높은 질의 교육을 하기 힘들었어요. 그 때, 저는 대학으로 직장을 옮긴다면 더 적은 학생들과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 데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죠. 성균관대학교는 높은 명성을 갖고 있는 학교였고,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곳이었어요. 학구적인 욕구를 채울 기회를 마련해주는 공간이었죠. 한국에서는 20년 동안 영어를 배웠음에도 기본적인 대화를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교육에 의문을 품고 있었죠. 그런 사람들을 더 잘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은 시사영어 수업이에요. 저는 항상 일주일 이내의 기사를 가지고 수업에 들어가요. 그리고 항상 다른 지역의 이슈들을 가지고 가죠. 학생들은 기사에 대해 논의하고 수업시간에 배운 이론들을 적용해보죠. 그런 과정에서 많은 기사들이 사실이 아닌 것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요. 수많은 편견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단어 선택 등으로 의미를 전혀 다르게 만드는 기사들을 봐요. 이런 과정이 제가 이 수업을 좋아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교수에게 필요한 자질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저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경영과 같다고 생각해요. 경영은 각 지역의 특색에 맞게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죠. 예를 들어, 스타벅스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고구마 라떼나 호박 라떼와 같이 그 지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들을 들고 왔잖아요. 가르치는 것도 비슷한 방식이 필요해요. 어떤 컨셉을 이해하고 나서 지역에 맞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하죠. 만약 헤밍웨이의 ‘Three Day Below’에서 음주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면, 한국에서의 음주에 대한 의미, 인식, 문화 등을 알고 적용시킬 수 있어야 해요. 또, 학생들이 더 높은 레벨로 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도 교수에게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 자신이 가르치는 것을 학생들이 쉽다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죠. 삶은 어려워요. 언어를 습득하고 학업적 목표를 성취하는 것은 어려워요. 그러나 교수들은 학생들을 자극해서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해요.”

“저는 학점에 대해 관대하지 않아요. 솔직하게 말하면, 성적에 공정함이란 없어요. 공정성은 환상일 뿐이죠. 대신에 정의가 있어요. 심리적 요인이 많이 작용하죠. 만약 어떤 학생이 오피스에 50번을 찾아왔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밖에 없어요. 아무리 공정하게 점수를 준다고 해도, 심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게 되죠. 제 문예영어 수업을 보면 3개의 어려운 과제와 2번의 시험이 있어요. 그리고 수업 시간에는 책에 관해 논의도 해야 하죠. 제 수업들은 어려워요. 그러나 점수는 제가 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열심히 해서 얻어야 해요. 저는 그들이 노력한 만큼의 점수를 줄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