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우즈베키스탄 사이 <br>압바소프 안바르 학우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사이
압바소프 안바르 학우

  • 365호
  • 기사입력 2017.02.13
  • 취재 이종윤 기자
  • 편집 최재영 기자
  • 조회수 8917

2017년 설. 우리 학교 학생지원팀에서 설날 맞이 사랑의 연탄 나눔 봉사를 했다. 많은 교환 학생이 참여 했는데 유독 눈에 띄는 학우가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남학생이었다. 외국인 학생이 숯검댕이를 묻혀 가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머리에 각인돼 수소문 해 만났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압바소프 안바르 학우는 현재 우리 학교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안바르 학우. 놀랍게도 한국에 온지 이제 반년이다. 한국 땅을 밟은 것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대학교 때 한국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한국어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 입학보다도 전이에요. 고향에 코이카 센터가 있었어요. 당시 저는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가 다르다는 것도 몰랐죠. 센터에 갔는데 마침 한국어 교육 신청을 받더군요. 그렇게 우연히 코이카 봉사 단원에게 한국어를 반년동안 배웠어요. 군대에 가서도 배웠던 것을 잊지 않도록 계속 복습했죠. 우즈베키스탄과 한국은 꾸준히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요. 특히 한국 석유 회사들이 우즈베키스탄에 진출하면서 경제적인 협력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죠. 시장의 전망이 좋아 한국학과에 진학했어요. 그러나 한국학과에 다니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단순히 회사에 취직하기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워보고 싶어 대학원에 오게 되었습니다.”

아는 것과 직접 체험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안바르 학우도 한국에 와서 문화차이를 느꼈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은 한국만큼 복잡하지 않아요. 높은 건물과 차가 한국만큼 많지 않죠. 지하철이 있지만 노선이 3개뿐이에요. 한국에서 길을 잃으면 다시 찾기 힘들었어요. 빠르게 흘러가는 생활이 낯설었죠.” 기억에 남는 일을 물어보자 길을 알려준 행인과의 따뜻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한국에 온지 한 달 쯤 되던 때였어요.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길을 물어봤죠. 아저씨는 저를 데리고 행선지까지 직접 안내했어요. 외국인인 제가 한국어로 길을 물어본 것이 자랑스러우셨던 모양이에요. 한국 사람들이 착하고 친절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성균관대학교는 안바르 학우에게 낯설지 않은 학교다. “대학생 때부터 성균관대학교를 익히 알고 있었어요. 한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다 알아요. 특히 매년 열리는 성균한글백일장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죠. 대회의 금상, 은상, 동상 수상자에게는 성균관대학교 석사과정 전액 장학금이 지원돼요. 장학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던 저도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 참가했어요. 두 번 다 장려상으로 입상했죠.” 그가 성균관대학교에 오게 된 다른 이유도 있었다. “많은 제 우즈베키스탄 친구들이 성균관대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성균한글백일장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친구도 포함해서요.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성균관대학교를 추천했어요. 학과의 교수님들도 훌륭해서 지원했습니다.”

대학교에서 한국학을 공부했던 그가 정치외교학과 석사과정을 밟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원도 한국학과로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다른 것을 배워보고 싶었죠. 처음에는 경영학과를 생각했어요.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후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까 했습니다. 그러나 대학교 졸업 후 코이카에서의 경험이 제 생각을 바꿨어요. 대사관이나 코이카에서 일자리를 얻기란 어려운 일이에요. 저는 운 좋게 코이카 우즈베키스탄 사무소에서 일할 수 있었어요. 코이카에서 교육과 관련된 업무를 하다 보니 우즈베키스탄의 교육부 직원들과 만남이 잦았어요. 정부 기관과 협력할 일이 많았죠.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교육 문제가 정치, 외교 문제와 모두 연관되어 있더라고요. 일을 하다보니 자연히 그 분야에 관심이 생겼어요. 코이카에서 약 2년간의 경험이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셈이죠.” 그는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 “일상 언어와 정치학 용어는 많이 달라요. 평소 한국말을 잘한다 하더라도 힘들어요. 코이카에서 업무 용어를 익히느라 어려웠던 때와 비슷해요. 정치 용어들은 우즈베키스탄 말로도 낯설어요. 대학교 때 전공도 정치외교학이 아니어서 더욱 그래요. 처음에는 교수님 강의를 녹음해서 공부했어요.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학업에만 힘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 학교가 주최한 2017 설날 맞이 사랑의 연탄 나눔 봉사에도 참여했다. “봉사가 남을 도와주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요.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어요. 보상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하는 봉사정신을요. 제가 받은 도움을 사회에 보답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제가 한국에 오기까지 코이카의 힘이 컸으니까요. 우즈베키스탄 지방 지역에서도 겨울이면 연탄을 때듯 석탄이나 장작을 때요. 비슷한 상황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더욱 연탄 나눔 봉사를 하고 싶었어요. 봉사하면서 새로운 친구도 많이 사귀었어요. 재미있게 봉사를 마칠 수 있었죠.”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앞으로 얼마든지 계획이 바뀔 수 있지만 현재는 유엔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이 목표예요. 특히 환경 문제를 다루고 싶어요.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북쪽, 아랄해의 환경문제가 심각해요. 우즈베키스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환경은 큰 화젯거리죠. 졸업 후 한국에서 경험을 쌓고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활동하고 싶어요.”

우즈베키스탄과 한국 사이에서 삶을 개척해나가는 그의 오늘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