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온 앙트완 코폴라 교수

  • 487호
  • 기사입력 2022.03.13
  • 취재 박정원 기자
  • 편집 김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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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일상에 봄기운이 스민 것을 하나둘 알아차리고 있다. 그럴 때면 마음이 제자리를 못 찾고 공중 어딘가를 유영하는 기분이다. 이 감각을 ‘들떴다’는 말로 일부 표현하고 남은 부분을 봄이 주는 낭만이라고 부른다. 몽환에 사로잡힌 채 현실을 사는 괴리감을 계절에 기대어 한껏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곧 거리에 흰 꽃이 내릴 것이다. 매년 돌아오는 풍경이지만 바라보고 있자면 낭만에 흠뻑 젖고는 한다. 이번 <외국인의 성대생활>은 낭만이 넘치는 나라 프랑스에서 온 앙트완 코폴라 교수를 만나봤다.


▷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앙트완 코폴라(Antoine Coppola) 교수이고 이탈리아계 프랑스인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엑스 마르세유 대학교를 졸업했어요. 해병대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파리에 있는 소르본 대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했고, 영화학 박사 학위를 위해 엑스 마르세유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성균관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수업은 프랑스 문학과 영상예술, 영화사, 프랑스 미학과 철학, 실험 영상 워크샵, 한국 영화의 침투 등 모두 영화와 관련된 수업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물론 관객으로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지만 감독이나 각본가로서 관람하기도 합니다. 또한 삼촌이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와인을 맛보고 여러 요리를 경험하기를 즐겨요. 특히 코르시카의 염소 치즈를 좋아합니다.



▷ 한국에 오시게 된 경위가 궁금해요.

2008년에 성균관대에 왔지만 학생 때부터 프랑스에 한국 친구들이 많았어요. 제 멘토 중 한 분은 유명한 '오발탄'을 연출한 고(故) 유현목 영화감독이셨습니다. 1995년 파리에서 처음 뵈었을 때 감독님은 제가 전생에 한국인이었을 거라 말씀해주셨어요. 어쩌면 그 말씀이 옳았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저는 그분이 그립습니다. 제가 2001년에 한국으로 온 것은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고려대학교에 객원 교수로 영화를 가르치기 위함이었어요. 한국 여행을 시작하면서 저는 이 나라와 국민에 정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학생들의 창의성과 친절함, 산과 주변 풍경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어요.


▷ 교수님의 고향은 어떤 곳인가요?

저는 파리에서 오래 살았지만 프랑스 남부 출신입니다. 칸부터 니스, 아비뇽, 엑상프로방스, 코르시카, 마르세유를 거쳐 모나코까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매우 많아요. 니스의 소카(팬케이크), 마르세유의 부야베스(생선 수프), 엑상프로방스의 칼리송(비스킷), 아비뇽의 멜론, 코르시카의 피가텔루(소시지), 모나코의 푸가스(올리브 오일 빵) 등이 있습니다. 프로방스와 알프스는 랭보와 반 고흐가 즐긴 압생트 같은 술과 로제 와인으로도 유명합니다.

올더스 헉슬리, 토마스 만이 살았던 곳으로 유명한 전통 항구 사나리쉬르메르에서 배로 30분 거리에 있는 방돌 섬은 로제 와인의 천국이에요. 북쪽의 파리로 이동하면 남부의 태양과 바다, 따뜻한 날씨와는 이별해야 해요. 그렇지만 제가 학생 때 살던 곳인 몽마르트와 그곳에 살아 있는 예술에 대한 놀라운 기억들을 모두 즐길 수 있어요. 저는 파리의 예술과 문화에 관한 우디 앨런 감독의 수작 ‘미드나잇 인 파리’를 정말 좋아합니다.



▷ 프랑스와 한국 대학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프랑스에서는 학생들이 캠퍼스에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저는 한국 캠퍼스에 더 현실적인 삶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다녔던 엑스 마르세유나 소르본 등 프랑스 대학들은 정부가 전적으로 담당하는 국립대학인 만큼 혁신이 어려워요. 반면, 예를 들어 성균관대는 혁신을 통해 교육 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프랑스 대학들이 사르트르, 푸코, 리오타르, 데리다, 들뢰즈 같은 교수들의 영광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기란 더 어려운 법이에요.


▷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강의 환경이 많이 변해 아쉬우실 것 같아요.

물론 학생들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 힘들어졌어요. 교육현장에서의 팬데믹이 더 고통스러운 이유죠. 하지만 플립 수업과 하이브리드 수업 등을 보면 상황이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어쩌면 팬데믹이 간접적으로 우리의 교육 방식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 강의를 수강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도 추천하는 영화가 있나요?

두 편의 프랑스 영화를 추천하고 싶네요. 먼저 제가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하나인 마리옹 꼬띠아르와 아담 드라이버가 놀라운 배역을 연기한 레오 카락스 감독의 ‘아네트’입니다. 예상치 못한 감각에 완전히 압도당하는 경험을 선사하는 뮤지컬 코미디예요. 다른 영화는 폴 버호벤 감독의 ‘베네데타’입니다. 프랑스의 중세 말기를 단순하지만 효과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젊은 수녀의 영적인 질문을 따라가서 마침내 자연의 아름다움과 힘을 발견할 수 있어요.



▷ 학생들이 영화와 문화 콘텐츠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제 생각에 영화는 모든 사람들의 꿈, 질문, 환상, 현실의 거울과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는 삶 그 이상이자 증강현실이며, 사라졌거나 아직 존재하지 않는 또 다른 자질에 대한 가능성입니다. 좋은 영화는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에너지죠. 또다른 관점에서 영화는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영화를 통해 여러분은 세계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말하고, 생각하는지 직접 살펴볼 수 있어요. 영화 예술은 그 어떤 산업과 예술보다도 포괄적입니다.


▷ 진행하고 있거나 최근 완료하신 학술적 연구가 있나요?

최근 프랑스 출판사에서 한국영화 사전을 출판했습니다. 저도 이런 종류의 책은 처음이에요. 이 책을 완성하는 데 7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또한 이전에 국제 사회학 잡지에서 영화 속 좀비의 의미와 역사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어요. 그리고 현재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 이론과 실전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 교수님에게 있어서 영화(Movie)란?

영화는 움직임이고, 시간이며, 삶입니다. 사실 저는 ‘Film’이란 표현을 선호하지만요.


▷ 2022년의 목표나 계획이 있나요?

새로운 혁신적 수업 방식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플립 수업에서 하이브리드로요. 저는 이러한 개선을 잘 성공해서 학생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기를 희망하고 있어요. 그리고 책과 영화를 제작하고 싶습니다. 국제 잡지에 출판된 저의 모든 기사들을 모아 선집을 내고 싶어요. 이 40편 이상의 기사들은 미래에 매우 흥미로운 영화 예술 관련 책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도 얼마 후에 제작할 수 있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