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특집] 2021 외국인의 성대생활 연말결산

  • 481호
  • 기사입력 2021.12.13
  • 취재 천예원 기자
  • 편집 윤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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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상대적이다. 우주의 시간이 어쩌고 상대성 이론이 저쩌고 하는 물리학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개인이 느끼는 삶의 속도 그리고 방향에 관한 이야기다. 어렸을 적 학교 컴퓨터실에서 시간이 남으면 하곤 했던 ‘산성비’라는 타자 연습 게임이 있다. 하늘에서 짧은 낱말들이 무작위로 떨어지면, 그 단어들이 화면 밖으로 사라지기 전까지 단어를 입력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아무리 단순한 게임이라지만 초등학생의 내가 ‘삐뚤빼뚤’, ‘반짝이다’, ‘쭉정이’와 같은 된소리 단어들의 공격에 순발력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았다. 점점 빠르게 떨어지는 낱말들과 복잡한 의태어 단어들의 등장에 짧은 손가락을 가진 나는 금세 당황했고, 어려운 단어들이 화면 밖으로 침몰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결국 나는 5단계 근처는 구경도 못한 채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삐뚤빼뚤’이 두렵던 초등학생의 나는 자라서 대학생이 되었다. 여전히 손가락은 짧지만 날 긴장하게 했던 ‘산성비’ 속을 추락하는 낱말들의 속도에 지루함을 느낄 정도로 무감한 어른이 되었다. 시간이 상대적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 바로 이런 경험 때문에서다. 우리 모두는 휴대폰 액정의 디지털 시계가 1월 1일로 바뀌는 모습을 보며 한날한시에 2021년을 시작했지만, 각자가 느끼는 2021년의 속도와 무게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모두에게 같은 하루, 한달, 일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시간이 ‘삐뚤빼뚤’처럼 어려웠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같은 ‘삐뚤빼뚤’이 쉽게 느껴졌을 수도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이번 2021년이 산성비보다는 이슬비처럼 쉽게 느껴졌을지도.


그래서 나는 항상 ‘외국인의 성대생활’의 외국인 학우들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그들이 한국에서 느꼈을 2021년의 속도와 무게가 항상 궁금했다. 모두가 지쳐있는 시기에 선택한 한국에서의 생활이 낯선 언어로 하는 잰말놀이같진 않았을지, 이국의 언어로 하는 산성비 게임의 전원을 내려버리고 싶지는 않았을까 그게 가끔 걱정됐다. 게임은 끄고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게 안돼서 더욱 그랬다.


‘외국인의 성대생활’을 1년동안 담당하면서 인터뷰한 외국인 학우들의 인터뷰를 정리해보며 2021 외국인의 성대생활을 마무리해보자.



# 제주도

코로나19 상황으로 여행이 제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제주도에 이미 방문한 경험(코로나19   이전)이 있는 외국인 학우들이 많았다. 제주도를 아직 방문해보지 못한 학우들은 한국에서 방문해보고 싶은 곳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제주도를 꼽아주었다. 크게 발전한 서울과 다르게 고유의 자연경관을 잘 보존하고 있는 제주도의 모습이 많은 외국인 학우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맥락으로, 한국의 첫인상을 묻는 말에 많은 학우들이 도심 속 산을 언급했다. (외국인 학우의) 고향에는 산이 이렇게 많지 않은데, 한국은 지방 뿐만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에도 산이 자연 그대로 보존된 모습이 색다르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여가시간에 학교 근처에 있는 산(북악산 등)을 등산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고 응답해준 학우들이 적지 않았던 것도 의외였다.


# 현대와 과거의 조화

많은 외국인 학우들이 한국과 성균관대학교의 매력으로 꼽아준 것 중 하나는 바로 현대 문물과 전통의 적절한 조화였다. 학교 근처 종로 일대에 위치해있는 고궁들의 높은 접근성, 그리고 고궁과 주변 현대 문물과의 적절한 조화가 인상적이라는 의견이 주류였다. 성균관대학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외국인 학우들은 인문사회과학 캠퍼스 정문 근처에 위치한 명륜당이 성균관대학교의 오랜 전통을 보여준다고 느꼈으며, 오래된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이 한국의 정체성을 대변해준다고 생각했다. 광화문대로 한 가운데의 경복궁, 종각역 4번출구 앞 보신각 등 너무나도 일상 속에 아무렇지 않게 어우러져 우리에게는 익숙한 모습들이지만, 이 무감하리만치 자연스러운 어우러짐이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큰 인상으로 다가온 듯 했다


외국인 학우들의 전통 사랑은 인사동에 대한 언급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안국역 근처 인사동 거리 만큼이나 한 번에 다양한 한국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복을 대여해 인사동 쌈지길 거리를 거닐었던 경험, 전통 찻집을 방문했던 경험, 익숙한 브랜드(외국인 학우들에게 익숙한 글로벌 프랜차이즈)의 한국어 간판을 본 경험 등 인사동 특유의 분위기를 체험한 외국인 학우들의 감상은 남달랐다.


# 한국 대중문화

한국의 대중문화에 영향을 받아 한국행을 선택했다는 레파토리는 어쩌면 너무 진부하지만, 진부하다는 것은 그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인터뷰 공통질문 ‘한국에 오게 된 계기가 있다면?’이라는 질문에 한 두명을 제외한 모든 외국인 학우들이 한국의 대중문화(K-pop, 한국 드라마)를 통해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응답했다. 굉장히 의외라고 느꼈던 부분은 많은 외국인 학우들이 교환학생 혹은 유학을 위해서 일본행과 중국행을 고민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한국이라는 나라를 접해 한국행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선택지에도 없던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의 등장에 흔쾌히 응해준 외국인 학우들의 선택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음악과 드라마가 좋아서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더 나아가 한국에서 공부하게 되다니! 대한민국의 소프트 파워가 불러올 또 다른 외국인 학우들의 방문이 기대된다.




# 성균관대학교

대한민국의 많은 대학교 중에서 성균관대학교를 선택한 이유로 많은 학생들이 성균관대학교의 긴 역사에 주목했다고 응답했다. 외국인 학우들의 시선에서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진 대학교란 질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대학교와 동의어로 간주되는 듯했다. 성균관대학교의 역사 외에도 성균관대학교 캠퍼스의 지리적인 이점을 선택 이유로 꼽아준 학생들도 많았다. 

이는 인문사회과학 캠퍼스와 자연과학 캠퍼스 모두에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이야기다. 명륜 캠퍼스의 지리적인 이점에 대해서 말해준 외국인 학우들은 성균관대학교가 서울의 중심이기도 한 종로에 위치해 있음으로 서울의 여러 지역으로 이동하기 좋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답해주었다. 종로의 교통 인프라(이동성)와 문화/여가시설의 밀도에 초점을 맞춘 응답이었다. 율전 캠퍼스의 지리적인 위치가 마음에 들었다고 응답한 학우들은 공통적으로 ‘서울 밖의 대한민국’을 경험해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대한민국의 수도에서 거주하면서 누리는 이점은 분명 있겠지만, 복잡한 서울에서 한 발짝 떨어져 ‘진짜 대한민국’을 느껴보고 싶었다고 언급했다.


# 코로나19

2021년 ‘외국인의 성대생활’ 섹션의 인터뷰에 추가된 질문이 바로 코로나19 학교 생활과 관련한 질문이다. 대학 강의가 전면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고 사적인 모임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한국을 살아가는 외국인 학우들의 솔직한 마음이 궁금했다. 예상과 다르지 않게 많은 학우들이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축소된 대학생활에 많은 아쉬움을 내비쳤다. 성균관대학교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학우들 커뮤니티를 넘어 많은 한국 학생들과 소통하고 공부해보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쉽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인터뷰 컨택을 했던 한 외국인 학우는 가능하다면 인터뷰에 응하고 싶지만,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성균관대학교의 학생으로서 경험한 것이 많지 않아 인터뷰에 충실히 응답해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축소된 대학 생활이 한국에서의 생활을 기대하며 입국한 외국인 학우들에게는 배로 아쉬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한국 사람들

한국에서 언어적인 장벽을 종종 느끼곤 한다는 응답과,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한국 시민분들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는 응답은 항상 세트로 묶인다. 곤경에 처한 외국인을 도와주고 싶어 안달이 난(?) 한국 시민들의 눈빛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외국인에게 보이는 한국의 인상에 본격적으로 신경을 쓰게 된 것이 2017년부터 JTBC에서 방영중인 예능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방영부터가 아닐까 하는데,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한민국과 관련된 컨텐츠를 통해 일종의 자부심을 느꼈던 집단적 경험이 외국인을 향한 친절함에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그 친절함 속에 숨은 은은한 인정욕구(?)가 과연 건강한 것인가 하는 지적 역시 존재하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외국인 학우들은 한국 시민들의 친절한 도움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총 21명의 성균관대학교 외국인 학우들, 그리고 교수님들의 인터뷰를 끝으로 2021년 ‘외국인의 성대생활’을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 인터뷰에 응해준 모든 외국인 학우들과 교수님들이 한국에서 떠올리고 싶은 기억들만을 남겼기를 바란다. 2021 ‘외국인의 성대생활’과 함께해준 독자들 역시 2021년 떠올리고 싶은 기억들만을 솎아내어 따뜻하게 올해를 매듭짓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