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온 카밀라 마가메도바 학우

  • 417호
  • 기사입력 2019.04.10
  • 취재 김보련 기자
  • 편집 심주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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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학의 교시인 인의예지는 유교의 근본정신을 말해주는 기본개념이다. 유교는 공자의 가르침에서 시작된 도덕 사상으로 인(仁)을 바탕으로 하며  동양 철학을 대표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와 서양. 낯설면서도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단어는 좀처럼 접점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둘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새로운 연관성을 탐구하는 학우가 있다. 유교과 박사 과정에 재학중인 러시아에서 온 카밀라 마가메도바 학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녕하세요. 저는 카밀라 마가메도바입니다. 러시아 모스크바 출신이고 1982년생입니다. 현재 6학기, 유교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박사논문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온 것은 2014년 1월. 친구들과 함께 단기간 한국어 강습 코스를 위해 서울에 왔다.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5년 전 창춘에서 중국어 공부할 때 함께 했던 한국인 친구들 때문이었다.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한국말이나 한국음식, 한국음악 등에 애착을 갖게 되었다. 중국에서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진 상황이 아이러니 하지만 그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던 듯하다.


중국에서 1년을 보낸후 러시아로 돌아가서 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철학 교사로 일하던 중 모스크바에 있는 직장 근처에 한국 문화 센터가 있어서 한글을 공부하고 한국 문화를 체험했다.  센터에서 수업을 듣다가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한국 정부 장학 프로그램에 대해 듣게 됐다. 그에게는 엄청난 기회라고 생각했다.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에서 공부 할 수 있었으니까.  그는 한국정부 장학 프로그램 장학금을 받게 된 것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말했다.


서울은 그가 만난 최초의 한국이었다. 서울의 규모나 인구, 정신없고 바쁜 분위기가 놀랍지는 않았다. 서울이 모스크바와 꽤 비슷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테마가 현대식 건물, 최신식 카페나 갤러리, 그리고 큰 아파트 블록들과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 그중 하나다. 그는 더위와 습도에 약해서 한국의 여름을 힘들어했다. 사람들은 10년 전에 왔을 때처럼 여전히 따뜻하고 친절하고 도움을 많이 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몇몇 특정 장소들에 애착이 생겼다. 이제 서울에는 그만이 좋아하는 산책로, 좋아하는 식당, 좋아하는 여행지 생겼다. 이제는 서울이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한국에서 살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미세먼지다. 공기는 건강에도 중요한 문제지만, 기분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매일 창문을 열기 전이나 외출하기 전에 항상 공기를 확인한다. 그는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좋은 점이 더 많다고 했다. 특히 안전에 관련된 이야기를 꼭 하고 싶어했다. 밤늦게 혼자 걸어 다녀도 무섭지 않고, 아무데나 가방을 둬도 누가 훔쳐갈까봐 노심초사할 필요 없는 점들. 사람들 간의 신뢰가 확실해야 하므로 이런 것들은 진심으로 엄청나고 값진 것으로 생각했다. 또 다른 좋은 점은 맛있고 건강한 음식이다. 


"저는 이제 한식에 너무 익숙해져서 고향 갈 때도 고춧가루랑 미역을 챙겨갈 정도예요. 심지어 ‘보르쉬’라는 러시아 전통 수프에 고추장을 넣어 먹어요.(웃음)"


 기억에 가장 남는 순간은 전국의 다양한 도시에 여행을 다니면서 본 경치나 역사들과 관련된 것이다. 순천의 자연 경관이나 강릉, 통영, 여수의 해변, 보성의 녹차 밭, 안동의 전통하회마을과 같은 곳들이다. 생각해보니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은 한국에서 친구들과 보낸 시간들이라고 했다.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봄이나 가을에 소풍 가는 것들이 너무 재미있었단다.



성균관대학교 학생이 된것은  2016년 9월이다. 전공 때문에 한국에 있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것이 항상 마음 속 1순위였다. 성균관대학교가 아니라면 어디서 유교철학을 공부해야 할까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공부하는 철학자들, 퇴계와 율곡. 그런 철학자가 오늘날까지 한국사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그분들의 초상화가 지폐에 있고, 서울의 중심가가 그분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특히 우리 학교에도 퇴계 인문관이 있지 않은가. 동양의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성균관대학교를 선택한 것은 이곳에 동양의 지적 역사가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옛 성균관 캠퍼스를 지나면서 오래된 은행나무를 볼 때마다 역사 철학이 이곳에 있다는 생각에 감동하곤 한다.


러시아 대학교에서 그의  전공은 철학이었다. 그 중에서도 중심은 서양철학이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중국어를 공부한 후 진학한 대학원에서는 많은 교수들이 중국 철학을 전공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대학원생으로서 그의 첫 전공은 존재론과 인지론이었다. 석사논문은 “시간”에 대한 것이었다. 서양과 중국 철학 사이 그것이 어떻게 해석되는 가에 대한 비교 의미론적인 것이었다. 그 이후로, "시간을 아는 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서양과 동양적 관점의 차이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한 것은 15살 때쯤인 것 같아요. 그때 읽은 첫 철학 관련 책이 그동안 봐왔던 다른 문학이나 기사들과는 완전히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거기다 철학이 다른 장르들의 장점들을 거의 하나로 합쳐놓은 것 같았거든요. 이후에 공부하며 알게 된 바와 같이, 다르거나 다르게 생각하는 것 그 자체, 역사 속에서 지적인 역동성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서양과 동양 사상의 전통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것이 언어, 개념의 역동적인 힘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유교는 윤리를 강조하면서도 형이상학적 측면을 빼놓지 않아요. 인간 생활의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차원뿐만 아니라, 도교나 불교 같은 다른 전통에 대한 많은 사상과 직관을 통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제가 공부하는 것은 유교 그 자체라기보다는 시간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런데도 유교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그것이 시간을 더 깊고 심오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에요. 물론, "시간 해석학"과 같은 전공이 있었다면, 바로 그걸 선택했겠지만요."


학문적으로는 박사학위를 마무리 짓는 것이 주된 목표다. 현재 자신의 생각들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단계에 있다. 재미있으면서도 힘든 단계다. 더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의 깊은 의미를 드러내고, 독자들의 관심과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가 깊게 뿌리박혀 있는 성균관대학교의 학생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물론, 이과 학생들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다를 수 있겠지만요. 어쨌든 깊은 역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장점입니다. 여러분 또한 그 역사에 참여하는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이미 일어난 역사를 소중히 여기세요. 언젠가는 역사가 될 현재에 대해서도 잘 인식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늘날 여러분들이 행하는 매 순간의 선택이 미래에 그 진가를 발휘한다는 것을 명심하세요."